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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국내여행을 하다

화천, 30년 전의 기억들

by 똥이아빠 2016.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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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30년 전의 기억들


오늘, 머지않아 성년이 될 아들과 함께 드라이브를 했다. 단 둘이 하루종일 드라이브를 하는 것도 처음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 9시쯤 집에서 출발했다. 우리집도 시골이다보니 처음부터 지방도로로 시작해 지방도로만 다니게 되었다. 집에서 조금 올라가면 중미산 휴양림이 나오고, 중미산 정상에서 유명산 쪽으로 내려간 다음 춘천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설악IC에서 춘천고속도로를 달렸다.

평일이어서 차가 많지 않아 꾸준히 100km를 유지하면서 춘천고속도로 끝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다시 중앙고속도로와 연결되어 화천 방향으로 옮겼다. 


불과 2시간 거리에 있는 화천을 30년도 훨씬 지나서야 가봤다. 30여년 동안 국내 여러 곳과 외국도 다녀봤지만 유독 화천 일대는 갈 기회가 없었다. 작정하고 갈 수는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럴 기회도, 마음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현역 복무를 한 사람이라면 자기가 있던 부대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군대의 기억은 그리 즐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20대 초반의 미숙한 청년들이 모인 집단에서 온갖 폭력이 난무하고, 군국주의적 억압과 폭력만이 군대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누구라도 기분 좋을 리 없을 것이다.

우리는 30개월을 그런 전근대적, 군국주의적 폭력 아래서 참고 견뎌야 했고, 그나마 무사히 살아남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모른다. 3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래 전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가는 그 길은 낯설고 조금은 긴장되었다.



구글지도에서 확인한 오늘의 경로. 오른쪽 진한 선이 출발한 방향이고, 왼쪽 파란선이 돌아온 방향이다. 전체 거리는 약 170km 정도.

지도에서 북쪽의 일부는 '다음지도'에서는 표기조차 안 되는 곳이다. 구글지도에는 다 나오는데, 다음지도에서만 가리는 건 정말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지도에 식사한 곳까지 정확하게 표시되었다. 춘천휴게소와 왼쪽의 횟집까지. 어디에서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까지 정확하게 기록되고 있다. 분명 편리함이 있지만, 구글이 개인들의 데이터를 모아 빅 데이터로 활용할 것은 분명한데, 내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쓰일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어서 불안함이 없지 않다.



가는 길에 마침 춘천휴게소가 있어 간단하게 김치우동으로 요기를 했다. 휴게소에서는 역시 우동이 제격이다.



가는 길에 영화 '곡성'을 또 보자는 아들의 말에 동의하고, 화천에 있는 극장을 찾아봤더니 '작은영화관'이 나왔다. 공식 명칭은 '산천어시네마'였다. 영화 시간도 맞아서 우리는 표를 산 다음, 조금 시간이 있어 화천 읍내를 한바퀴 걸어다녔다.

이 영화관으로 말하면, 정부에서 지방의 문화예술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시설로 보조금을 주어 지은 것이라는데, 시설도 깨끗하고, 극장 요금도 저렴했다. 나와 아들 두 사람이 9천원이었으니, 서울에서 한 사람 요금 정도에 불과했다.

강원도의 여러 읍 단위에 이런 작은 극장이 들어서고 있다는데, 양평에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화천 읍내는 30년 전보다 많이 발전한 것은 틀림없지만, 상대적으로 낙후한 것 역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서울 근교의 중소도시들이 30년 동안 비약적인 개발이 있었다면-그것이 꼭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화천은 그나마 개발의 때가 덜 묻었다는 뜻에서는 좋은 환경이다.

다만 우리가 우연히 발견한 한 공원은 세금 낭비의 전형으로 보였다. 유료 입장 공원이었지만 지금은 매표소도 제 기능을 못하고, 공원은 방치되어 있었다. 지자체장과 공무원들은 이런 시설이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아무리봐도 터무니 없는 시설로 세금만 낭비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시멘트와 대리석 따위로 뒤덮은 작은 공원에 사람들이 돈을 내고 들어올 거라고 생각한 것부터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천읍내 역시 새로운 건물이 많이 들어서긴 했지만 주택가 골목은 30년 전에 본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곳도 많았다. 이곳에서는 여전히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영화 '곡성'을 두 번째 봤다. 며칠 전에 서울에서 보고 나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오늘 우연이지만 시간이 잘 맞아서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니 이해가 잘 됐고, 궁금했던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영화를 보고 화천에서 산양면, 속칭 사방거리로 향했다. 사방거리는 내가 군 복무를 했던 부대에서 가까운 마을이다. 부대의 하사관들도 이 마을에 집을 얻어 생활했고, 어떤 주임상사는 눌러 앉아 여관을 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화천과 그 일대의 마을들은 군인과 뗄 수 없는 관계여서, 지역 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군인을 위한 서비스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30년 전에도 이미 사방거리에는 수십 개의 다방이 있었고, 다방에는 차와 몸을 파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때는 화천에서 사방거리까지는 물론 우리 부대 앞도 모두 흙길이었다. 북한강을 끼고 춘천에서 화천을 가는 길도 지금은 두 개 차선으로 포장이 잘 된 길이었는데, 30년 전의 기억으로는 어느 구간에서 일방통행이었고, 버스가 한쪽에서 오면, 다른쪽이 가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북한강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게 되었다.

사방거리도 30년 전과는 분명 달라졌지만, 나는 한 눈에 그곳이 예전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30년 전과 똑같은 버스터미널 자리가 그렇고, 면회 신청을 하던 헌병초소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 앞에서 부대 가는 방향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또한 많은 것이 변하지 않았다.


휴가를 나오거나 출장을 나올 때, 부대에서 흙길을 따라 터덜터덜 걸어오던 그 길, 그때는 버스도, 군용차 외의 차는 거의 없었던 그 길이 이제는 아스팔트가 깔리고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부대는 그대로 있었다. 부대명도 그대로였고, 심지어 막사까지 그 위치에 있었다.

다만 정문초소에 둔중한 철문이 달렸고, 옛날보다 조금 현대화된 것처럼 보이는 시설이 있을 뿐, 기본은 바뀌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다.

30년의 세월 동안 바뀌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느끼는 건 좋은 걸까, 아니면 나쁜 걸까. 국가예산의 30%를 쓰면서도 군대의 시설이나 병사들의 복지가 '현대화'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본다면, 이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부대와 관련해서 어떤 사진도 찍을 수 없다는 초병의 말대로, 부대 앞에서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다시 북쪽으로 더 올라갔다. 내가 복무했던 부대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민통선이 나오는데, 30년 전과 달라진 것은 민통선을 통과하기가 예전보다는 쉽다는 것이다.

물론 무장한 군인이 지키고 있지만, 특별히 법에 어긋나는 짓만 하지 않으면 민통선 넘어 가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민통선 넘어의 산골짜기 좁은 길까지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어서 자동차로 다니기 편했다. 30년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근무하던 부대의 사단부대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는데, 하마터면 사단 정문으로 차를 몰고 갈 뻔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예전에 사단으로 출장을 왔던 기억이 났고, 그때와 달라진 것이 없어보이는 사단 정문을 보면서 30년 전의 군복을 입은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단부대 앞에서 왼쪽 길로 조금 가다보면 화악산으로 들어가는데, 화악산 입구에 송어양식장을 하는 식당이 있다. 이곳에서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었다. 송어회 1kg이면 두 사람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송어회는 큰 대접에 양배추와 콩가루를 함께 주는데, 여기에 송어회를 넣고 초고추장을 뿌려 비벼서 상추와 깻잎에 싸 먹으면 맛있다.

회를 다 먹으면 매운탕이 나온다.



매운탕에 밥 한 그릇을 먹으면 충분히 배가 부르고, 덩달아 기분도 좋아진다. 30년 전에는 먼 길이었지만, 지금은 자동차로 짧은 시간이면 이 지역을 모두 돌아볼 수 있다. 그만큼 여러 조건이나 환경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화악산을 가로 질러 내려오면 가평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도회지나 마찬가지여서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자동차로 한 바퀴 돌아본 것에 불과하지만, 도로며 시설, 환경 등이 3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고, 군이 민통선을 개방하는 것도 바람직 해 보였다.

그럼에도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무려 세 번이나 바뀌었지만, 평화와 통일을 향한 분위기나 지역이 낙후된 모습 등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안타깝고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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