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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영화] 로건

by 똥이아빠 2017.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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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건

마블 코믹스로 만든 영화들은 지금까지 유치해서 안봤다. 만화의 세계관이라는 것이 시작부터 황당하고, 유치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서,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해도 나는 재미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존의 마블 코믹스 영화들과는 사뭇 다르다. 진지하고 암울한 미래를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배트맨의 외전이라고 할 수 있는 '다크나이트'처럼 울버린의 외전이라고 봐도 좋은 영화다. 지금까지 나온 배트맨 영화 가운데 '다크나이트'가 작품의 완성도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은 것처럼, 울버린 시리즈 가운데 이 영화가 최고의 평가를 받을 듯 하다. 울버린의 휴 잭맨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 예상은 거의 확실하지 않을까.

마블 코믹스의 수 많은 영웅들 가운데 울버린은 비교적 '인간적'인 영웅에 속한다. 그는 영생의 유전자를 가진 돌연변이로 태어나 죽지 않는 인물로 그려졌지만, 이 영화에서 마침내 영원한 안식을 얻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인간적인 감정'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되고, 상상하지 못했던 자신의 딸까지 얻는다. 비록 그가 이성과의 사랑을 통해 얻은 자식은 아니지만,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분명한 혈육이라고 할 수 있다.

로건은 감정이 거의 없거나, 감정을 느끼는 뇌의 부위가 퇴화되었거나 손상되었거나, 선천적으로 미약했을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그가 보여주는 반응은 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것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인간 관계를 망치는 것임은 분명하다.
로건의 태도는 많은 남성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마초적인 태도이고, 가부장적이며, 남성우월주의에 찌든 모습이기도 하다. 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그런 환경에서 자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든 매우 부정적인 모습인 것은 당연하다.
로건이 죽기 전에 남긴 말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그는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며 살았고, 그렇기에 죽음의 공포나 죽음의 고통에 무딘 상태였다. 죽음과 같은 감정은 고통, 슬픔, 연민, 사랑, 두려움 등 모든 감정을 응축한 것일텐데, 그가 자신의 딸 로라를 대하는 태도 역시 감정이 거의 보이지 않는 무뚝뚝함이었다가 죽음을 앞두고 변화가 일어난다.

로건이 죽을 수 있었던 것은 알칼라이 트랜시젠이라는 기업의 실험실에서 아다만티움 약물을 주입당한 이후부터였다. 그 약물의 주입으로 더욱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조금씩 노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 영화는 점차 노화가 눈에 띄게 진행되는 울버린, 로건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그의 마지막을 진지하고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 영화의 배경으로 중요한 것은, 다국적 곡물회사들이 유전자변형식물을 키워 그것을 세계에 수출하고, 그 식물을 먹은 사람들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과 어린이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키운 다음, 돌연변이로 만들고, 그들의 능력을 군사적 무기로 쓰려는 실험을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반인륜적 행위지만, 기업의 이윤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확하게 자본주의의 악행을 고발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 영화에서 자본주의나 기업의 부도덕함을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영화의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라를 살려 준 간호사는 은밀하게 벌어지는 기업의 생체실험을 고발하려다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만다.

실험실에서 키워지는 돌연변이들은 인간이 아닌 물건 취급을 받는다. 그들은 분명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인류가 맞닥뜨릴 미래의 심각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여기서 조금 더 미래를 보여준 것이 바로 '매트릭스'다. 매트릭스는 인간이 기계의 동력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진짜 인간'의 존재 의미를 철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돌연변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차벌받는 소수자들을 상징한다. 여성, 어린이, 장애인, 흑인 등 어느 집단에서든 소수이고, 약한 존재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 없이 주류 집단에 의해 폭력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영화 속에서 실험실에서 물건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어린이라는 것은, 어린이들이 실제로 현실 사회에서 '물건'처럼 취급받고 있는 것을 봤을 때 결코 과장된 장면이 아니다. 

로건이 간호사의 부탁으로 돈을 받고 로라를 로라의 친구들이 있는 노스타코타의 외진 곳으로 데리고 가는 설정이지만, 이와 비슷한 설정으로 '레옹'과 '칠드런 오브 맨'을 떠올리게 된다. 로드무비이자 가족을 찾는 영화로, 고대부터 내려 온 영웅 설화의 흔적이 보인다.
영화에서는 그동안 존재했던 엑스맨들도 이전에 모두 죽은 것으로 암시된다. 따라서 로건의 죽음은 기존의 돌연변이들이 모두 사라졌음을 뜻하고, 로라를 비롯해 국경을 넘어 도망한 몇몇의 어린이들이 로건의 뒤를 잇는 돌연변이로 존재하게 되는데, 이들은 로건처럼 영생의 삶을 살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도 모두 아다만티움을 주입당했기 때문에, 능력은 높아져도 노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주류의 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아왔던 돌연변이들의 삶은 소수자들의 삶처럼 고통스러웠고, 단지 그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종종 잊고 지내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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