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당갈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최근 한국에 공개되는 인도영화는 모두 재미있다. 인도영화가 세계영화사에서 부각하고 있는 이유는, 인도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사회적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 아미르 칸이 나오는데, 아미르 칸은 '3명의 멍청이', 'PK' 같은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이 영화들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모든 인도영화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가 본 인도영화들은 계몽적이라는 공통의 특징이 있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인도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제시하고, 그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이 올바른지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는 듯 하다. '3명의 멍청이'들은 인도 교육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냈고, PK는 인도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신'과 '종교'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영화는 관객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주면서, 영화를 보고 나서는 한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는 분명 예술작품이고 오락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 이렇게 훌륭한 교육도구로도 사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 혁명의 도구로도 활용한다.
이 영화는 인도의 여자레스러를 키워낸 아버지와 딸에 관한 이야기로 실화지만, 이면에는 인도의 여성들이 살아가는 삶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아마추어 레스링 선수였던 아버지는 아들을 낳아 레스링 선수로 키워서 조국 인도에 금메달을 바치고 싶어하는 애국자인데, 어찌된 일인지 낳는 아이는 모두 딸이었다.
딸을 훈련시켜 레슬링 대회에 내보기로 작정한 아버지는 딸을 아들처럼 훈련시키기 시작한다. 계급사회-인도 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는 모두 계급사회라는 걸 상기하자-인 인도에서 여자가 레슬링 선수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이목은 무시하고, 자신이 계획한대로 딸들을 훈련시키고, 지역의 작은 대회에 출전하고, 경험을 쌓게 만든다.
어느날 뜬금없이 레슬러가 된 딸들은 황당하고,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고된 훈련에 짜증나지만, 14살에 결혼하는 친구의 말을 듣고나서 깨닫게 된다. 인도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들의 노리개나 부속물에 지나지 않고, 평생을 가사노동이나 육아에 소모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한다는 비극적 현실이라는 것을. 인도사회는 여전히 인류의 보편적 인권 수준에 못미치는 열악하고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도 뿐아니라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이라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성들이 겪는 질곡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방법적인 문제는 있지만, 딸들을 레슬러로 훈련시키는 아버지의 마음은, 사랑하는 딸들이 모르는 남자에게 팔리듯 시집가서 노리개가 되거나 아이나 낳고 기르는 무지하고 종속된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딸들을 주체적인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다행히 딸들은 아버지의 재능을 닮아서 레스링을 잘 하게 되고, 지역 경기에서 우승하고, 전국대회에서도 우승한다. 유명한 선수가 되면, 남자에게 팔려가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는 남자를 고를 수 있다는-이것도 좀 웃기지만-아버지의 말은, 인도사회의 가부장제도를 비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도의 여성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여전히 주인공의 아내이자 딸들의 엄마는 수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오로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을 받들어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인도여성의 미덕으로만 그려지는 장면이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이 영화가 갖는 계몽성에 비춘다면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는 레스링 영화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레슬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어린 소녀들이 점차 레슬러가 되어 가는 과정, 시합에 나가서 선수로 뛰는 장면은 진짜 선수들이 움직이는 것처럼-물론 진짜 선수들이 보면 웃겠지만-자연스럽고 훌륭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큰딸 기타가 상대선수와 싸우는 장면은 그 자체로 훌륭한 연기이자 레슬링 경기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인도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스포츠선수로서의 활약이 인도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남자에게 돈에 팔려가는 어린 여성들이 줄어들고,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사회가 머지 않았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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