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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영화]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

by 똥이아빠 2017.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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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작품. 1972년에 발표한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영화의 주제를 들여다보면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를 깨닫게 되는 순간 소름이 끼치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만 해석한다면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영화나 그렇듯 관객은 자신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영화를 해석한다. 이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그 층위는 매우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매우 단순하다. 좁은 아파트 내부가 공간의 전부다. 등장인물은 불과 몇 명. 특별한 장치도, 도구도 필요 없고 오로지 끊이지 않는 대사로만 영화가 이어진다. 따라서 이 영화는 연극무대와 모든 면에서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연극무대처럼 활용하는 것은 아주 적은 예산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페트라는 유명 디자이너다. 그의 방에 벌거벗은 마네킹이 여럿 보이는 것, 그 마네킹에 의상이 걸쳐져 있고, 한쪽에 있는 이젤에는 그의 비서인 마를레네가 스케치를 하고 있던 패션 디자인 그림이 보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페트라는 침대에서 눈을 뜨면서부터 비서이자 몸종처럼 부리는 마들레네에게 이러저러한 잡다한 요구와 명령을 내린다. 마들레네는 무표정한 얼굴로 페트라가 요구하거나 명령하는 것을 그대로 수행하며, 패션 디자인 스케치도 하고, 페트라가 불러주는대로 편지 타이핑도 하고, 자신이 스스로 긴 내용의 타자를 줄기차게 쳐내려간다. 
페트라의 아파트에 패션 모델로 활동하는 타라가 도착하고, 아름답고 촉망받는 타라는 페트라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알지만 도도하게 행동한다. 페트라는 타라에게 모델로서의 출세를 보장하면서 성적인 접근을 암시하지만 타라는 남편을 따라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마를레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타라에게 외면당한 페트라는 가까이에서 자신을 늘 돌봐주던 마들레네의 존재를 깨닫고, 그녀에게 보다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지만 그 순간 마들레네는 짐을 싸서 나간다.
여기까지가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뭔가 특별한 장치도, 의미도 없을 것만 같은 영화가 왜 대단한 걸까.
이 영화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발견되는 파시즘에 관한 것이다. 이 영화가 1972년에 발표되었고, 시기가 중요하다고 한 것은, 독일이 1945년 패전국이 되고, 독일에서 파시즘은 금기와 청산의 최우선 순위에 있었던 이데올로기였다. 
즉, 독일에서 파시즘에 의해 한 세대 이상이 오염되었으며 그 독을 씻어내는 작업 역시 한 세대 이상의 노력과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독일 국민들은 인식하고 있었다.
제도나 정치에서의 파시즘은 사라졌지만, 개인과 개인 사이에 남아 있는 파시즘은 어떤 형태를 띄며,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어떻게 상처를 남기는가를 파스빈더 감독은 날카롭게 관찰하고 있었다.
페트라는 그 자체로 권위를 가진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이 키운 촉망받는 모델 앞에서는 사랑을 갈구하는 수동적이고 피권위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페트라가 마들레네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한 권력자의 모습이며, 타라를 대하는 태도는 굴욕적이면서 굴종하는 이중의 모습으로 보인다.
마들레네는 페트라가 가진 권력과 권위에 복종하는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동경과 우상의 대상으로 즉 절대권력화된 존재로 비친다.
그런 우상이 한 신인모델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또한 자신에게까지 비굴해지는 것을 보면서 마들레네는 우상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국민이 히틀러로 상징되는 파시즘에 경도되었다가 시간이 흘러 이성을 찾았을 때 느꼈던 감정과 같다고 본다. 집단최면에 걸려 파시즘을 찬양하던 독일국민이 히틀러의 비참한 주검을 보게 되고, '위대한 독일'이 사기였음을 확인하면서 히틀러 체제에 대한 환멸이 몰려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단순하지만 독일사회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는 그래서 가볍게 보아넘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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