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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출판/자유로운글

비행기 좌석의 계급성

by 똥이아빠 2017. 10. 5.
비행기 좌석의 계급성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비행기 좌석처럼 천민자본주의의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현상도 드물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런 노골적이고 전면적인 차별은 많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돈의 많고 적음이 곧 계급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누군가 벤츠를 타고, 누군가 마티즈를 탄다고 했을 때, 그 차이는 오로지 돈 한 가지 뿐이다. 거기에서 그 사람의 지식, 인격, 품성, 도덕성, 양심 등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같은 이유에서 아파트 평수가 그렇고, 유명 메이커의 소비가 그렇고, 문화의 향유가 그렇다. 물론 돈이 많다고 해서 자신의 무식과 천박함까지 세련되게 바꿀 수는 없다. 자본가와 부르주아는 대개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세련된 문화를 익혀 오기 때문에 그들은 '돈도 많은 것들이 착하기까지 하다'는 말을 듣는다. 게다가 교양 있고, 품위까지 있어 보이니 자본가와 부르주아는 사회를 이끌 '지도층'이 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경우, 자본가와 부르주아들은 천박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그들이 발딛고 서 있는 바탕이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성과 교양과 철학을 바탕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라면 이런 이야기는 할 이유가 없겠지만, 그들이 '돈'을 바탕으로 서 있다는 전제와 역사적 배경에는 민중의 피를 빨아서 만든 부의 탑이 있다. 그것을 경제용어로 '착취'와 '이윤'이라고 말하고, 마르크스는 자본가의 부의 원천을 '잉여노동'으로 봤다. 어떤 표현이든 자본가는 민중의 고혈을 짜내 그것으로 더 큰 집과 더 좋은 차와 더 좋은 사치품을 소유하고, 그 돈으로 권력을 사거나, 권력을 향유한다.

상징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자본주의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비행기 좌석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지배, 피지배 계급의 존재임을 선명하게 인식하도록 만들고, 비싼 자리에 앉아 가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우월감과 지배계급의 여유를 갖도록 하고, 일반석에 앉은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무능력에 대한 자책을 느끼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돈 많은 사람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고 크고 넓은 좌석에 앉아 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은 덩지가 큰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함부로 때려도 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무지하고 멍청한 말이다. 즉, 눈으로 보이는 현상만을 두고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본질을 모르거나, 은폐하는 것이어서 어느 쪽이든 다 나쁘다. 한때 비행기를 타는 승객들 가운데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은 비행기 표 가격을 더 받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때 '첫번째 계급'과 '사업용 계급'의 좌석은 예외였다. 즉 가장 가난한 좌석인 '경제적 좌석'의 표를 사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몸무게 비용을 더 받겠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자본의 일반적 착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정책이었다.
비행기 좌석의 계급성은 똑같은 목적지를 가는 비행기 내부에 세 단계의 차별 공간을 두어, 좌석, 서비스, 음식 등을 차별하는 것이 문제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가장 낮은 단계의 서민용 좌석이 사람이 앉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다는 데 있다. 항공사는 어떻게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제적 좌석'의 숫자를 최대로 늘린다. 반면 이윤이 많이 발생하는 '첫번째 계급'의 좌석은 매우 넓고 쾌적하다. 이들이 지불하는 비용이 '경제적 좌석'에 비해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10에 이른다는 걸 계산할 때, 그들이 차지하는 공간 역시 그에 상응하는 것이 자본의 논리에 맞는다. 항공사로서는 '경제적 좌석'의 사람들이 많은 것보다 '첫번째 계급'의 좌석이나 '사업용 계급'의 좌석이 더 많이 팔리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결국 자본의 체제, 자본의 구조가 깨지지 않는다면, 이런 차별과 계급성의 적나라한 풍경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대형 비행기 안에 차별하는 좌석이 없이, 모든 좌석이 사람이 쾌적하게 여행할 수 있는 넓이로 만들어지고, 돈의 많고 적음과는 아무 상관없이, 하나의 목적지로 가는 모든 사람들이 우월감이나 수치심 없이 비행기에 앉아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여행할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은 결코 환상도,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비행기 좌석의 계급성을 사람들이 자각하고, 바로 그 '계급'을 소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는 일부터 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불합리한 제도와 차별과 불공평한 것들이 끊임없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영화 '설국열차'를 떠올려보자. 앞부분부터 꼬리까지 철저하게 계급으로 나뉘어 있는 생존열차에는 앞에서 말한 비행기와 똑같은 구조로 사람들이 계급에 따라 살고 있다. 그것을 '상상'이라고 말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생각을 조금만 비약한다면, 우리가 타고 다니는 전철에도 비행기 좌석과 같은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10개의 전철 차량에서 앞부분 1개는 가장 비싸고 고급한 전철비를 받는 대신, 온갖 최고급 음식과 술, 음료수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 승무원이 서비스를 한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여성비하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그리고 그 다음으로 2개의 객차는 비행기의 '비즈니스석'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한다고 가정하자. 나머지 7개의 객차는 '이코노미석'이라고 하자. 비행기는 왜 당연하고, 전철은 왜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전철이 너무나 서민적이어서? 아니면 전철은 너무 멀리 다니지 않고 도시 하나만 돌아다니니까? 그런 이유라면 충분한 반론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여전히 '자본'에 대해 잘 모르거나 순진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점들인데, '자본'은 이윤을 창출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어떤 사업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자본의 속성이 바로 이윤추구이기 때문이다.
전철을 돈에 따른 차별화 서비스로 만든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처음에는 웃긴다고 하겠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면 몹시 고통스러울 것이다. 정부(국가)는 돈이 되기만 하면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담배 산업도 '독점'으로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 들인다. 정부나 자본이 정의롭거나 지혜롭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들은 무수히 많다.
전철의 차별화 서비스가 마땅치 않고, 기괴하고,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비행기는 왜 그래야 하는가? 왜 비행기는 좌석을 차별화하고, 전철은 차별화하지 않으며, 극장의 좌석은 일률적이지만 공연장의 좌석은 왜 로얄석과 VIP석과 일반석으로 나뉘어 액수의 차이를 두어야 하는가. 공연장이 좌석의 위치에 따라 더 잘 보이는 이유 하나 만으로 차별을 두는 것이라면 극장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비행기가 서비스(전체)의 차이에 따라 항공요금에 차이가 있는 것이라면 전철도 같은 논리로 그렇게 만들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상식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자본'이 추구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사회윤리나 도덕성과는 커다란 괴리를 보인다. 그것은 자본이 작동하는 논리가 인간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비행기 좌석에 차별을 두어 돈을 다르게 받는 것은 항공사의 이윤 추구 행위 때문이다. 항공사에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모든 좌석을 똑같은 비율로 만들고, 항공료를 똑같이 받으면 항공사는 적자가 발생한다. 즉 '첫번째 계급'과 '사업용 계급' 좌석을 만들어 이들에게 많은 돈을 받고, '경제적 계급' 좌석의 비용을 낮추는 것이 오히려 서민들에게 이익이다,라고. 얼핏 들으면 맞는 소리로 들린다. 그것이 자본 시스템 속에서 굴러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하지만 이런 주장은 헛점이 많다. 비행기표를 구입할 때 제 값을 다 주고 구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좌석이든 할인을 한 가격으로 구입하게 되며, 항공사의 논리대로 좌석 차별과 항공료의 차별을 두지 않으면 항공사가 적자라는 논리는 쉽게 반박된다. 오히려 좌석을 넓히고, 차별 좌석을 없애고, 항공료를 합리적 가격으로 받으면 항공사는 적자를 면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들은 훨씬 쾌적하게 비행기를 타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 좌석의 차별과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의 비인간적인 대우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비행기를 타는 일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 훠스트 클라스를 타고 다녀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체제 내적 적응을 생각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논리에 늘 이용당하거나 자기 중심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비행기 좌석은 지금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비인간성, 계급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아이콘이다. 높은 계급의 좌석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불만이 없겠지만,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한줌도 안되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