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퀴엠 포 어 드림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을 보니 '레슬러'와 '블랙 스완'을 연출한 바로 그 감독 대련 애러노프스키였다. 스토리는 비교적 평범하고 단순하지만 그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연출의 힘은 대단하다. 짧고 강렬한 이미지 컷을 빠르게 보여주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마약중독과 약물중독으로 피폐하게 변하는 과정을 격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라는 해리의 엄마이고, 해리와 매리언은 연인이며, 해리와 타이론은 친구다. 이들의 공통점은 서서히 약물에 중독되어 가는 것이고, 그 과정이 매우 섬뜩하게 그려지고 있다. 사라는 남편이 죽고 아들 해리와 함께 살아가지만 해리는 제대로 된 삶을 살지 않고 있다. 사라는 TV 중독이고 자신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할 거라는 환상에 빠지면서 살을 빼기 위해 약물 요법을 시작하고, 이 약물이 결국 사라를 파멸하게 된다. 해리는 친구 타이론과 함께 마약을 하다 마약판매에 손을 대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면서 결국 연인인 매리언까지 타락하도록 만든다.
매리언 역시 마약을 하면서 삶이 타락의 길로 추락한다. 주인공들이 마약에 빠지는 과정을 충격적으로 보여주고는 있지만, 왜 마약을 하는가에 관한 내용은 드러나지 않는다. 사라의 경우 지독한 외로움이 원인일 수 있다. 그는 남편이 죽고, 아들 해리가 떠나고 혼자 (아마도 연금으로 생활하겠지만) 가난한 삶을 살아간다. 친구들이 있지만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삶에 기쁨도 없고, 의지하는 것은 오로지 TV 프로그램 뿐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노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지 않을까. 노인들 특히 가난한 노인들이 더 외롭고 쓸쓸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구조적인 것과 개인적인 부분으로 나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외로움을 더 느끼는 사람이 있고, 혼자서도 재미있게 노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마약을 하는 것도 많은 부분 개인의 성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그보다는 구조적 문제가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해리나 타이론, 매리언의 경우를 보면 이들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없다. 마약을 통해 얻는 것은 일시적인 쾌락이고, 쾌락의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마약에 더 의존하게 된다. 해리와 타이론은 가난한 청년들이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 가난해도 마약을 팔아 돈을 벌 생각은 하지만 합법적인 노동을 통해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적극적으로 가난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즉 '하류지향'을 하는 세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매리언의 경우, 부모가 상당한 재력가임에도 매리언은 자기의 삶을 방기하는데, 그녀 역시 '하류지향'의 세대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더 배우지 않고, 더 소비하지 않으며, 생산적인 활동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는 것으로 사회체제에 저항한다. 그로 인해 입는 모든 손해와 불이익과 충격은 자신들의 삶으로 받아들이면서. 이것은 이전의 세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다. 우치다 타츠루가 말하는 '하류지향 세대'는 자본주의가 극대화된 사회에서 출몰하는 것으로 보인다. 계층간 이동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공고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젊은 세대는 아무리 노력해도 신분이나 계층의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빈부의 격차와 개인의 성취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약물 중독으로 추락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인간성의 상실과 타락의 주요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에서 인간은 왜 자신의 삶을 더 훌륭하게 살지 못하게 되는지,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착취와 경쟁이 핵심이 구조 속에서 인간의 타락은 필연적인 것인지도 묻게 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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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똥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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