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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출판/자유로운글

30년대, 70년대, 2천년대의 백수

by 똥이아빠 2017.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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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 70년대, 2천년대의 백수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 보면 시대를 뛰어 넘어 비슷한 정서, 공감대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 역사, 정치, 경제의 환경은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개인에게는 시간을 뛰어 넘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도 가난한 예술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또 어떤 면이 비슷한지 작품과 가사를 통해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1930년대를 살았던 작가 이상이 쓴 수필 가운데 '권태'의 한 부분이다. 이 수필을 쓸 때의 이상은 폐병으로 평안도의 배천(백천)온천으로 요양을 온 상황이다. 그는 몸과 마음을 편하게 쉬어야 하고, 병을 다스려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몹시 권태로운 나날을 보내면서 온천 주변의 풍경과 자신의 처지를 찬찬히 들여다 보게 된다.
방을 얻어 살고 있는 배천온천 마을은 한적한 시골이어서 외부의 소식을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마을 주민들은 농사를 짓는 농부들로 대개 무지한 민중이다. 지식인인 이상은 날마다 읽던 신문이나 잡지도 읽지 못하고, 라디오도 듣지 못해 마치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일 것이다.

권태-이상

나는 아침을 먹었다. 할 일이 없다. 그러나 무작정 넓다란 백지같은 '오늘'이라는 것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면서 무슨 기사라도 좋으니 강요한다.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연구해야 된다. 그럼-나는 최서방네 집 사랑 툇마루로 장기나 두러 갈까. 그것 좋다.
최서방은 들에 나갔다. 최서방네 사랑에는 아무도 없나 보다. 최서방의조카가 낮잠을 잔다. 아하-내가 아침을 먹은 것은 열시나 지난 후니까 최서방의 조카로서는 낮잠 잘 시간에 틀림없다.
나는 최서방의 조카를 깨워가지고 장기를 한 판 벌이기로 한다. 최서방의 조카와 열 번 두면 열 번 내가 이긴다. 최서방의 조카로서는 그러니까 나와 장기 둔다는 것 그것부터가 권태다.
나는 개울 가로 간다. 가물로 하여 너무나 빈약한 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 뼈처럼 앙상한 물줄기가 왜 소리를 치지 않나? 너무 더웁다. 나뭇잎들이 다 축 늘어져서 허덕허덕 하도록 더웁다. 이렇게 더우니 시내물인들 서늘한 소리를 내어보는 재간도 없으리다.
나는 물가에 앉는다. 앉아서 자-무슨 제목으로 나는 사색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물론 아무런 제목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생각 말기로 하자. 그저 한량없이 넓은 초록색 벌판 지평선, 아무리 변화하여 보았댔자 결국 유치한 곡예의 역을 벗어나지 않는 구름, 이런 것을 건너다 본다.
지구 표면적의 백분의 구십구가 이 공포의 초록색이리라. 그렇다면 지구야말로 너무나 단조무미한 채색이다. 도회에는 초록이 드물다. 나는 처음 여기 표착하였을 때 이 신선한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 그러나 닷새가 못 되어서 이 일망무제의 초록색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 내일도 오늘 하던 계속의 일을 해야지 이 끝없는 권태의 내일은 왜 이렇게 끝없이 있나?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생각할 줄 모른다. 간혹 그런 의혹이 전광과 같이 그들의 포리를 스치는 일이 있어도 다음 순간 하루의 노역으로 말미암아 잠이 오고 만다. 그러니 농민은 참 불행하도다. 그럼-이 흉악한 권태를 자각할 줄 아는 나는 얼마나 행복된가.


작가 이상의 시대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무능한 상태를 드러낸 것이라면, 그 이후 격렬한 정치 상황-해방, 분단, 한국전쟁, 군사쿠데타-이 지나고, 군부독재가 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청년의 삶은 어떤가를 천재 싱어송라이터 한대수는 자신의 삶-어마어마한 집안이지만 불행했던 가족사-과 시대를 관통하는 삶을 관조하는 가사를 써서 노래한다.
군부독재는 청년의 꿈을 짓밟고, 분단 상황을 악용하면서 병영국가를 유지하고자 온갖 폭력을 휘두른다. 획일화된 잣대로 청년의 창의성과 가능성을 억압하고, 규격된 틀에 넣어 군부독재를 찬양하도록 쇄뇌시킨다. 그런 독재 상황에서도 예술가는 의미 없는 노래를 부르는 듯 하면서 독재정권을 비웃는다.


하루아침-한대수

1. 하루아침 눈뜨니 기분이 이상해서
시간은 11시 반 아 ! 피곤하구나 ?
소주나 한잔마시고 소주나 두잔마시고
소주나 석잔마시고 일어났다.
2. 할말도 하나없이 갈데도 없어서
뒤에 있는 언덕을 아 ! 올라가면서
소리를 한번지르고 노래를 한번 부르니
옆에 있는 나무가 사라지더라
3. 배는 조금 고프고 눈은 본것 없어서
광복동에 들어가 아! 국수나 한그릇 마시고
빠문 앞에 기대에 치마 구경하다가
하품 네번 하고서 집으로 왔다
4. 방문을 열고보니 반겨주는 개미셋
안녕하세요 한선생 하고 인사를 하네
소주나 한잔마시고 소주나 두잔마시고
소주나 석잔마시고 잠을 잤다


독재자가 총에 맞아 죽고, 또 다른 독재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일정한 수준의 민주주의 공간이 확보된 시기인 2천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은 군부독재의 억압에서는 벗어났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군부독재의 억압과 탄압은 분명하게 눈에 보이지만, 자본의 착취와 억업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취업하기가 어렵고, 최저임금을 받아서는 생활할 수 없고, 월세는 비싸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청년 실업자들이 늘어나는 시대에 백수로 살아가는 청년의 삶은 장기하가 노래하는 것처럼 비참하다. 이 시대가 국민소득이 2만불이 넘어서 3만불을 향해 가는 시대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싸구려 커피-장기하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본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쉬기가 쉽질 않다
수만 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근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뭐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있는 물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어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 보며는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비가 그쳐도 히끄무르죽죽한
저게 하늘이라고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건지
저거는 뭔가 하늘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낮게
머리카락에 거의 닿게
조금만 뛰어도 정수리를 꿍하고
찧을 것 같은데
벽장 속 제습제는
벌써 꽉 차 있으나 마나
모기 때려잡다 번진 피가 묻은
거울을 볼 때마다
어우 약간 놀라
제멋대로 구부러진
칫솔 갖다 이빨을 닦다 보며는
잇몸에 피가 나게 닦아도
당최 치석은 빠져나올 줄을 몰라
언제 땄는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가 한 모금
아뿔싸 담배꽁초가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본다
아직 덜 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쉬기가 쉽질 않다
수만 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근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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