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북유럽의 정서는 '요 네스뵈'의 장편소설과 같다고 생각하는 내게, 스웨덴의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은 낯설다. 그의 소설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해학적이며 해피엔딩이다. 요 네스뵈와 요나스 요나손의 거리는 마치 에베레스트와 동네 뒷산처럼 멀다. 높은 산을 오를 때는 폭풍우와 생명의 위협을 감수해야 하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쁨은 남다르다. 동네 뒷산은 언제나 편하게 오를 수 있지만, 몇 번 오르면 지겨워진다. 그런 차이가 이들 사이에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이 질리지 않는 이유는, 작가의 상상력을 독자가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오를 수 없는 산을 바라보는 것은 늘 경외감을 갖게 한다. 요 네스뵈도 비슷하다. 하지만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은 이미 두 권-'창문 너머...'와 이 책-을 읽었을 뿐인데 벌써 익숙해진다. 이와 매우 유사한 감정을 갖게 된 작가가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다. 그러고 보니 이름과 성이 같은 작가는 비슷한 점이 있나 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경우, 한국에 번역된 그의 첫번째 작품 '개미'를 읽고 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 나온 소설을 읽고는 중간에 포기하고 이후 쳐다보지도 않는다. 식상하기 때문이다. 너무 뻔한 주제와 소재로, 뻔한 결말을 도출하는 이야기에 독자들-특히 한국독자들-이 열광한다는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그 정도 작품에 열광하는 독자라면 그 수준이 어떨지 알만했다. 출판사의 마케팅이 뛰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은 명작도, 걸작도, 꼭 읽어야 할 올해의 소설도, 기억에 남을 소설도 아니다. 그냥 시간이 남는 사람이 가볍게 읽어치울 정도의 가벼운 소설이다. 대단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얻을 만한 내용도 없다. 독자들의 수준이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두려워하고, 미하일 숄로호프의 대하소설을 찾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또스또예프스키의 소설들을 제목만 들어봤기 때문에 그나마 소설이라고 읽는 것이 이런 소설들-영화로 널리 알려진 작가의 작품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퍽 불행한 일이다.

카프카의 소설을 읽고, 이상의 시를 읽고, 강경애의 소설을 읽고, 그보다 더 많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것이 오히려 재미있는 소설을 더 많이 발견할 확률이 높다. 요나스 요나손보다 훨씬 풍자와 해학이 뛰어난 작가가 바로 김유정이다. 이렇게 말을 해도, 어떻든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읽지 않는 사람보다는 훨씬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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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똥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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