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은 부르주아의 전유물인가

이 문장이 뜬금없이 머리에서 떠올랐다. '우아하다'와 '부르주아'가 동시에 떠올랐다는 건, 내 잠재의식 속에 부르주아의 세계는 우아하다고 입력되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는 봉건사회를 뒤엎고 자본주의 사회를 열어재낀 시대의 선구자였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주인이자 지배계급이다. 부르주아 내부에 자본가가 있으며, 자본가는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에 속한다.

봉건 왕조를 폐기할 때의 부르주아는 진보적 집단이었으나, 자신이 사회의 주인, 지배계급으로 등극한 이후로는 급격히 보수화되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이 되었다.

부르주아의 '우아함'은 경제적 풍요로움에서 나온다.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경제는 노동자를 착취해서 잉여 생산물을 이윤으로 만드는 구조적 기술에서 나온다. 즉, 부르주아의 '우아함'은 노동자 계급의 피로 그린 명작인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의 '우아함'이 진정한 '우아함'인가에 대해 깊은 회의를 해야 한다.

중세에도 피렌체의 귀족 메디치 가문처럼, 금융과 제조업으로 돈을 번 귀족이 문화, 예술 분야에 집중 투자해 중세에서 르네상스의 번영을 일으킨 역할을 했던 경우도 있지만, 계급의 시각에서 보면 어느 시대나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착취해서 부와 권력을 누렸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귀족들이 만든 문화, 예술도 마찬가지다. 문화, 예술을 발전시킨 것이 노예와 농노를 착취해서 그 잉여의 부로 만든 것임을 알게 되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노예, 농노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를 착취한 부르주아가 시대를 앞서가는 문화와 예술을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몹시 회의적이다. 과거의 계급 시대에 노예, 농노를 지배했던 귀족의 문화가 기록되고 알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피지배계급의 문화와 예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절대 다수였던 피지배계급의 문화와 예술이 더 널리, 더 오래 전통적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계급, 민중의 문화와 예술의 생명력이 훨씬 오래 이어져 오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에서 중세에 주로 귀족을 위해 만들었던 음악을 현대에서는 '클래식'이라는 장르로 듣고 있다. 어느 지방이든 그 지방에 살고 있는 민중에게는 일과 놀이에서 빠지지 않는 노래와 음악과 춤이 있다. 귀족을 위해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했던 작곡가, 연주가들 역시 그들의 출신은 노동자, 농민, 장인의 집안이었기에 음악적 영감은 민중의 음악에서 시작되었다.

귀족과 부르주아의 우아함이란, 물질 문명의 발전과 뗄 수 없다. 지배자들은 권력과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방식으로 화려한 의상, 장신구, 거대한 건물, 복잡하고 까다로운 의례 등을 만들었다. 솜씨가 좋은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하고, 조각상을 만들며, 권력자 자신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시를 지어 낭송하도록 했다. 이런 행위의 근간에는 권력자와 왕족, 귀족, 부르주아들이 평민, 서민, 농노, 노예 즉 피지배계급과 차별화 하고, 뚜렷하게 구분 짓기 위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이런 차별화를 통해 자신들이 피지배계급의 야만성에서 벗어나 자신들은 우아하고 고귀하다는 자기만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중세까지는 귀족, 지배계급은 적어도 자기가 속한 집단, 지배계급의 우월함과 차별화를 위해 문화, 예술에 투자하고 고급지고 세련한 창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그것이 피지배계급을 착취한 결과였다 해도.

자본주의 시대의 자본가와 부르주아는 지배계급인 자신들과 피지배계급인 노동계급과의 차별성, 차이,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문화, 예술적인 투자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자본(가)은 초기 자본의 축적 시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의 확대에 집중했다. 그 결과는 어린이 노동(심지어 4살짜리도 탄광에서 일했다), 여성노동은 물론 하루 16시간-18시간 노동이 일상이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영국에서 18세기, 19세기 초반의 노동자 평균수명은 30세도 안 되었다는 사실을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는 자본가의 이윤을 위한 소모품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1달러일 때, 100달러짜리 지폐에 담배를 말아 피웠다. 겨우 한두 명의 자본가가 자신이 번 돈으로 미술품과 예술작품을 구입해 미술관, 박물관을 만들거나 정부에 기증해 미술관, 박물관을 설립하도록 도운 경우가 있다. 그것은 중세의 귀족들이 예술가들에게 직접 창작을 하도록 지원한 것과는 또 다른 경우이며, 그리 훌륭한 방식도 아니었다.

'우아함'이 단지 생활 방식, 양식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귀족과 부르주아들이 금식기, 은식기에 노동자나 민중은 평생 한번 구경도 못한 식재료로 음식을 먹고, 최고급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 넓고 화려한 집에서 살고, 수십억 원짜리 자동차를 타고, 전용 제트비행기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그들이 '우아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어떤 자본가는 가죽장갑을 끼고, 야구방망이로 돈없고 힘없는 노동자를 구타하고, 어떤 자본가는 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욕설을 하며, 괴성을 지르고, 컵에 담긴 물을 끼얹기도 한다. 자본가나 부르주아의 인격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즉, 돈과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의 인격도 고매하다는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아니, 평균의 확률에 따라, 인간의 일정 비율로 사악한 인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자본가에게도 인간의 평균 비율에 맞는 사악한 인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자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돈과 권력을 갖게 되면, 그 사회적 힘을 휘두르게 된다. 자본과 권력은 개인에게 고유한 것이 결코 아님에도, 마치 돈과 권력과 자신(개인)을 동일하게 여기는 착각을 한다. 그것이 모든 권력적 비극의 근원이다.

'우아함'은 오히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노동자와 민중에게서 찾아보기 쉽다. 그들은 대부분 천박하고, 이기적으로 생각하며, 야비하고, 폭력적인 인간들이 많다. 그럼에도 민중의 문화와 예술이 오랜 시간을 이어오고, 민중의 예술이 세련하게 다듬어지며 오늘날 전통문화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보면, 개개인의 천박함과 야비함, 폭력성보다 집단의 지성이 큰 줄기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민족의 역사, 문화, 예술이든 그것을 만들고, 이어오는 것은 지배계급이 아니라 피지배계급, 노동자, 민중이었다. 음악, 춤, 노래, 그림, 공예, 도자기, 목공, 건축 등 모든 분야를 살펴보면, 그것을 있게 한 것은 결코 귀족이나 왕족이나 지배계급이 아니었다. 우리의 경우만 봐도 고려, 신라, 백제, 조선을 이어오며 만들고 다듬어 이어지는 전통은 매우 우아하고 단아하며 품격이 있다. '우아함'은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 귀족, 부르주아, 자본가들은 피지배계급을 착취해 빼앗은 잉여물로 자신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을지 몰라도, 면면히 이어오는 정신의 전통을 만들지는 못했다. 반면 민중은 지배계급에게 무수히 빼앗기면서도 자신들의 정신을 이어오는 문화, 예술의 전통을 만들고, 다듬으며 발전시켰다. 진정한 우아함이란 이런 것을 말한다. 

Posted by 똥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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