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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09] 주체성과 전환기의 윤리사상 - 김석목

by 똥이아빠 2011.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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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김석목은 서울대 사대 교수로 오래 재직한 분이다.

위키백과에는 아직 등재되지 않았는데, 인터넷을 검색하면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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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교회는 일종의 특수교회라는 인상을 주는 교회였다. 김재준 목사님의 설교는 강의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고들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 목사님은 주일설교 외에 특수강의 형식의 집회를 추진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신학자, 역사학자, 윤리학자 등을 소개하는 모임들은 그 교회 교인들뿐 아니라 많은 외부인사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이런 스타일의 목회는 당회원들을 비롯한 교인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회원은 김능근, 김석목, 박세훈, 김영규 등이었는데 다들 자기 분야에서 실력을 과시하는 분들이었다.


김능근 장로는 한문에 능통한 분이어서 숭실대학 한문학교수로 진출했고, 김석목 장로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윤리학을 강의하고 있었고, 김영규 장로는 일본에서 사회사업을 전공하고 조선신학교 사회사업과에서 강의하고 있었다. 그들의 자녀들은 해방 직후 나와 함께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기독학생운동도 함께 한 사람들이다.


- 이상철 목사 회고록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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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목은 서울대 교수이면서, 경동교회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던 기독교인이었다. 경동교회의 김재준 목사 역시 '사상계'에 투고하고 사회 활동을 하던 분이었으니, 이 분들이 서로 장준하 선생님과 두루 잘 알던 사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김석목은 1947년의 서울사범대학 교수 명단에 이미 있었고, 서울사대가 해방된 이듬해부터 존재했으니 서울사대의 창립멤버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또한 1979년에 고희기념 논문집이 출간된 것을 보면, 평생을 서울사대 교수로 재직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김석목은 일본 유학생으로, 독립운동을 한 분이기도 하다. 그 자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입교대학 학생이었던 평남 출신의 김석목(金錫穆)은 중국 광동에 있는 한국독립당 광동지부 간부 김붕준(金鵬濬)의 조카로서, 본년 8월 입대를 졸업하고 방금 귀국 중에 있는데 이상 대학 재학 중 동경시 삼곡구 대대목산곡(代代木山谷) 기독교 계통의 ‘일맥회(一麥會)’라는 단체에 가담하고 있어서, 본년 2월 중순경 동회 앞으로 김석목에게 보내는 숙부 김봉준으로부터 조선문 번역인 삼민주의(三民主義) 8책을 ‘동산혁신사(東山革新社)’명의로 밀송하였으므로, 김석목은 그중의 4책을 우인인 입교 대학생으로 평남 출신 임태정(林泰楨)에게 교부하고, 다시 임태정은 ‘일맥회’ 회원인 동향인 청산학원 학생 박종현(朴宗賢)·이덕성(李德成) 양명에게 배포하여 민족의식 앙양에 노력하면서 있었는데, 본년 4월 12일경 시청에서 특별 검색을 실시할 무렵 그러한 사실을 발견하고 곧 재경 중에 있는 전기 임태정 이하 3명을 즉일 검거하였다. 그리하여서 그들이 해외 불령자와 직접 연락관계에 있었던 것이 명료하나, 구체적 범죄 사실이 없다고 인증되므로써 박종현·이덕성 양명은 5월 5일, 임태정은 동월 14일 모두 설유한 다음 석방하였다.


위 내용을 보면, 김석목은 평남 출신이고, 기독교를 믿었던 바, 당시 평안도가 한국기독교의 부흥지였고, 해방 후에도 북한의 기독교도들이 남한에서 기독교 운동을 활발히 펼친 것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잡지에 실린 내용은 인간의 '주체성'을 탐구하고, 역사 속에서 '개인'과 '나'라는 존재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서울사범대학의 교수가 쓴 교양철학이라고 이해하기에는, 내가 생각하기에,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분명 어렵다고 느껴질 내용이다. 읽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그리 어려운 내용이 아님에도, 이 정도 수준의 공부를 요즘에도 하는지 의문이다. 2011년의 대학생 수준을 폄하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이 정도의 내용을 술술 읽고 이해하는 정도라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결국 학문의 깊이는 현대보다는, 과거가 더 충실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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