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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26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
개척시대의 이야기들


코엔 형제의 영화다. 영화를 보다보면 내가 진짜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인가를 알게 될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딱 하나를 고른다면 코엔 형제의 영화들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클린트 이스트우드, 에밀 쿠스타리차, 켄 로치, 페데리코 펠리니, 비토리오 데 시카, 프리츠 랑 같은 멋진 감독들의 작품도 물론 매우 좋아한다. 우열을 가리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만큼 코엔 형제의 작품과 내 성향이 잘 맞는다고 본다.
많은 영화는 한번 보고 다시 찾아보는 경우가 드물다. 오락으로의 영화들은 볼 때는 재미있어도 일부러 찾아서 다시 보게 되는 영화는 거의 없는데, 어떤 영화는 일부러 두번, 세번 그 이상 찾아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게는 코엔의 영화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가 그렇다. 특히 코엔의 영화는 대부분 서너번 이상 보게 되는데, 볼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으며, 색다른 장면과 내용을 확인하게 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도 여러 번 봤는데, 흑백영화의 아름답고 우아한 미장센과 아이러니가 코엔 영화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 코엔 영화의 특징은 놀랍도록 세련한 미장센과 아이러니다. 코엔의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 두 가지 특징은 영화의 교본이자 잘 만든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도 코엔 영화의 특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섯 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로, 간단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버스트 스크럭스
노래하는 카우보이-현상금 걸린 무법자. 총잡이를 죽이며 서부를 돌아다니다 결국 자신도 총을 맞고 죽는다.

은행털이범
황량한 벌판에 있는 은행을 털려던 은행털이범이 은행원에게 잡혀 교수형을 당할 찰라, 인디언들이 나타나 그를 살려주는데, 벌판을 지나가던 목동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은행털이범은 이번에 소를 훔친 혐의로 교수대에 오른다.

유랑극단
마차를 몰고 다니며 유랑극단을 하는 노인과 팔, 다리가 없는 청년. 청년은 의자 위에 앉아 이야기를 한다. 날씨가 추워지고, 사람들은 모이지 않는다. 그러다 사람이 많이 모여 환호하는 곳을 발견하고 가보니 닭이 숫자를 맞추고 있었다. 노인은 그 닭을 비싼 값에 산다. 그리고 팔, 다리가 없는 청년은 마차에서 사라진다.

금 캐는 노인
금을 찾아다니는 노인이 개울 옆에서 금맥을 찾는다. 하지만 뒤따라온 총잡이가 노인을 쏘고, 죽은 듯 하던 노인은 총잡이를 죽이고 캔 금을 가지고 떠난다.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낭패한 처자
오빠의 사업 파트너와 결혼할 생각을 하면서 남매는 사람들과 함께 서부를 가로질러 먼 길을 떠난다. 하지만 그의 오빠는 급성콜레라로 죽고 길잡이에게 줄 돈은 오빠의 조끼주머니에 넣고 묻어버린 뒤였다. 행렬의 리더가 그 처자에게 청혼을 하고 처자는 승락한다. 
강아지를 찾아 행렬을 벗어난 처자를 찾아 또 다른 리더가 찾아나서고, 갑자기 인디언의 습격을 받는다. 리더는 인디언의 공격을 막아내지만, 처자는 리더가 죽은 줄 알고 스스로 총을 쏴 죽는다.

시체
마차 안의 다섯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고, 먼 길을 가는 동안 대화를 나눈다. 대화는 격렬해지고, 노부인이 발작을 일으키지만 마차는 멈추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짐칸에서 시체를 내리는 두 사람. 세 사람은 망설이며 그 뒤를 따라 들어간다. 그들은 모두 시체였다.

여섯 편의 공통점은 서부 개척시대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코엔이 특히 서부시대를 좋아하는데, 그 시기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체제였기 때문이다. 즉 법보다 주먹이 앞서고, 사람의 죽음이 가볍게 여겨지며, 계급적 질서보다는-그것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개척 정신(이것은 전적으로 아메리카를 침략한 백인의 시각이지만)-이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던 때였다. 
여섯 편의 영화의 내용에서 공통점은 '아이러니'다. 공통점이 아이러니가 아니라, '아이러니'한 내용이 공통이라는 뜻인데, 우리가 '아이러니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인물, 상황이 분명 명확히 존재하지만, 그 존재나 이유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을 말한다. '역설적이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문학이나 영화, 연극 같은 창작물에서 '아이러니'는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독자나 관객이 작품의 인물이나 상황에 몰입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반전의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버스트 스크럭스는 서부를 방랑하는 총잡이인데, 말쑥하고 깔끔하며 깨끗한 옷을 입고 있다. 심지어 그가 입은 옷은 흰색에 가깝다. 그가 들르는 낡은 주막과 마을의 술집에 있는 사람들의 옷이 거의 모두 어두운 색이거나 낡은 옷을 입은 것을 보면, 버스트의 외모는 매우 도드라진다. 게다가 그는 노래를 잘 하는데, 알고보니 현상금이 걸린 수배자였다. 그는 걸리적거리는 총잡이들을 가차없이 죽이면서 자신만만하다. 자기만큼 총을 잘 쏘는 사람을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총을 맞고 죽는다. 주인공인줄 알았던 버스트가 죽는 장면이 곧 아이러니다. 무법천지인 서부에서 누구나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관객도 알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는 버스트를 보면서 역설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황당하면서도 씁쓸하고, 웃기지만 슬프고,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은행털이범의 운명도 그렇다. 은행을 털러 들어갔지만 은행원에게 잡혀 교수형을 당할 상황에 놓인다. 목에 밧줄이 걸리고, 이제 말 한마디면 그는 죽는다. 그런데 갑자기 인디언들이 나타나 다른 백인들을 모두 죽이고 목에 밧줄을 건 은행털이범만 살려두고 떠난다. 그리고 저 멀리 소떼를 몰고가는 목동이 보이고, 목동이 그를 살려주면서 함께 소떼를 몰고 가자고 제안한다. 은행털이범은 감사할 노릇이다. 그런데, 여러 명의 총잡이가 나타나고, 목동은 도망갔으며, 은행털이범은 다시 잡힌다. 소떼를 훔쳐간 도둑으로 누명을 쓰고 다시 교수대에 올라 목에 밧줄이 감긴다. 어처구니 없고, 황당하며, 웃기지만 슬픈 상황이다.
유랑극단을 하는 노인은 영국에서 찾았다는(거짓말임이 분명하다) 팔과 다리가 없는 청년과 함께 마차를 몰고 다닌다. 청년은 말로 옛날 이야기를 하며 관객을 웃고 울리는 재주가 있는데, 관객의 숫자가 자꾸 줄어들고 덩달아 수입도 줄어든다. 노인은 숫자를 맞추는 닭을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을 보고 그 닭을 비싼 값에 산다. 그리고 팔 다리가 없는 청년을 다리에서 강물에 던진다.(이 장면은 단지 유추할 따름이다) 자신을 위해 연기를 하는 팔 다리가 없는 청년을 버리고 숫자를 맞추는 닭을 선택하는 상황과 노인의 행동은 아이러니하다. 비정하고,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범죄를 저지르는 노인이지만, 서부시대라는 배경이 이런 상황을 합리화한다. 모두 아이러니한 것이다.
금을 캐는 노인은 금을 찾고, 강도에게 총을 맞아도 살아남아 금을 가득 싣고 떠나지만, 노인은 아마 머지않아 죽게 될 것이다. 이미 거의 죽을 나이가 된 노인이 금광을 찾는다는 현실 자체가 아이러니다. 그것이 노인의 탐욕 때문인지, 집념인지, 오기인지 알 수 없지만, 노인은 아무리 많은 금을 캐도 결국 그 돈을 쓰지 못하고 죽는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서부를 가로지르는 행렬에서 오빠와 함께 길을 떠난 처자는 오빠의 사업 파트너와 결혼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빠는 급성콜레라로 죽고, 자신을 안내하는 안내인은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한다. 곤란한 처지에 놓인 처자를 돕는 사람은 행렬의 리더 가운데 한 사람인데, 그는 처자와 결혼해서 정착하고 싶어한다.
처자는 오빠가 기르던 강아지를 찾으러 행렬을 벗어나고, 행렬의 다른 리더가 그 처자를 찾으러 갔다가 인디언의 습격을 받는다. 리더는 자기가 죽으면 처자도 험한 꼴을 당하니 자살하라고 말하며 총을 쥐어준다. 리더는 인디언을 잘 막아내지만 잠깐 죽을 고비를 넘긴다. 리더가 인디언의 몽둥이에 쓰러지는 걸 보고 처자는 자살하지만, 리더는 멀쩡하게 살아남는다. 처자는 왜 조금 더 기다리질 못한 걸까. 황당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마차 안에 다섯 명의 서로 모르는 사람이 타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내용이 조금 이상하다. 어슴프레하고 푸른 빛이 도는 불빛과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달리는 마차. 마차 위 짐칸에는 시체가 있다는 이야기.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러 간다는 늙은 여인의 이상한 말, 늙은 여인이 발작을 일으켜도 멈추지 않는 마차. 그들이 도착한 곳에서 내려지는 시체. 문앞에서 망설이는 세 사람은 결국 문을 열고 들어가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과연 살아 있는 사람일까. 
코엔의 영화는 여러 번 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설령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도 미장센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영화를 두번, 세번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의 제작비를 받아 만든 것으로, 넷플릭스에서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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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똥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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