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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367

파묘 - 역사와 정치의 알레고리 파묘 - 역사와 정치의 알레고리 이 영화가 친일매국노와 일본 침략의 역사를 다룬 내용이라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무덤을 팠더니 험한 것이 나왔다는 말은, 영화에서 두 개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제는 1천만 관객을 향하고 있으니 더 이상 스포일러라고 말하기 어려운데, 친일매국노의 영혼과 진짜 왜구의 '진령'이 그것이다. 이 영화를 '깔고 보는' 사람들은, 영화가 가져야 할 교과서적 내용에 집착한다. 시나리오, 미장센, 연출 의도, 서사의 흐름, 형식(오컬트)의 불일치 등등 지적할 내용은 끝도 없다. 심지어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에 별 2.5를 주었고, '매불쇼'에 나와서 영화를 이야기 하는 두 명의 영화평론가와 두 명의 영화 리뷰어는 '파묘'가 갖는 진짜 의미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파묘'를 보고 .. 2024. 3. 15.
조용한 가족 조용한 가족 시간이 흘러 다시 봐도, 가끔 다시 봐도 재미있는 영화, 잘 만든 영화다. 요즘 이런 웰메이드 코믹 잔혹극을 보기 어려운 건 왜 그럴까? 재능 있는 감독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극장 시스템, 영화 제작 시스템의 변화가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용한 가족' 만큼 잘 만든 가족 영화로는 '고령화 가족'이 있다. 두 영화는 장르가 다르지만, '가족'이 중심이고 주제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두 영화는 큰 웃음을 주는 재미가 있고, 연출, 연기 등 모든 면에서 고르게 훌륭하다. '조용한 가족'이 코믹 잔혹극이라면, '고령화 가족'은 코믹 막장극이다. 두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는 겹치지 않지만, 출연 배우들 면면히 한국 최고 배우들이어서, 그들의 연기를 보는 .. 2024. 1. 30.
선산 선산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 연상호 감독이 웹툰 원작에도 참여하고, 영화에도 참여한 작품으로 웹툰보다 진지한 면은 장점이다. 연출은 연상호 감독 작품에서 조감독을 했던 민홍남 조감독의 감독 데뷔작이다. 웹툰과 영화 제작진이 같아서 큰틀에서 분위기와 전개 방식은 비슷한데, 웹툰에서는 가벼운 농담과 코믹한 장면을 넣었으나, 그런 가벼움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6부작이어도, 편집을 하고, 극의 흐름을 조금 빨리 한다면 극장용 영화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본다. 처음 시작과 전개는 긴장을 고조하는 효과가 있었는데, 뒤로 갈수록 인물들의 연결이 느슨해지면서 아쉬운 점이 남는다. 드라마는 그동안 연상호 감독의 작품에서 본 듯한 분위기와 공포, 스릴러 영화가 갖는 클리셰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2024. 1. 30.
노량 - 죽음의 바다 노량 - 죽음의 바다 역사에서도 앞선 명량, 한산 전투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치열한 전투였던 노량 전투였고, 이 전투 과정에서 이순신 장군이 서거하면서, 여러 의미에서 전쟁은 끝났다. 기막힌 역사의 우연이지만, 위대한 영웅 서사에서 영웅의 마지막은 극적인 죽음으로 완성한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 침략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해군을 지휘하며 연전연승으로 일본의 조선 진출을 막았을 뿐아니라, 일본군의 패퇴로 인한 일본 막부의 분열과 내부 갈등으로 일본 역사의 급변에도 직접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일본 해군이 이순신 장군을 두려워하고, 결국 일본에서 이순신 장군을 '신'으로 추앙하기 시작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출간했는데, 메이지 시대인 1892.. 2023. 12. 21.
잠 - 일상이 공포가 될 때 잠 - 일상이 공포가 될 때 갑자기 수면장애가 생긴 현수의 수면 행동을 보게 된 수진은 무섭고 걱정이 많아진다. 수진은 출산이 가까운 임산부라는 핸디캡이 있고, 다른 어느 때보다 몸과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오히려 불안과 걱정이 늘어나면서 이 영화가 공포 속으로 들어갈 여건을 제공한다. 현수가 수면장애를 앓게 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배우로 활동하지만 단역에 불과한 배우로, 늘 불안한 상태로 일하는 조건과 낮은 임금에서 오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고, 가정을 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아내가 임신해 곧 아기를 낳으면, 아이를 키워야 하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어려움이 뻔히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어서 현수는 마음이 불안하다. 불안하기는 수진도 마찬가지. 남편 현수를 사랑하.. 2023. 12. 17.
서울의 봄 서울의 봄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권력을 장악하려는 전두광 일당의 폭력보다, 행주대교에 홀로 서서 반란군과 맞서는 이태신 장군의 태산같은 장엄한 모습과 동시에 외로운 뒷모습을 보며, 그 날, 그 밤에 정의롭고 올바른 군인이 이렇게 없었던가를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하다. 12월 12일이 발생하기 18년 전, 똑같은 이유로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 쿠데타가 성공하길 바라는 전두환 대위는 육사생도를 이끌고 도시를 행진했다. 그렇게 박정희 군부와 박정희가 키운 장교들은 기회만 되면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생각을 당연하게 여기고, 전두환이 일으킨 쿠데타 이후 2017년, 박근혜 정권에서 기무사령관 조현천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민주당이 군부의 비밀을 먼저 알고 공개하는 바람에.. 2023. 11. 28.
보호자 보호자 정우성 배우의 감독 데뷔 작품.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정우성 배우가 감독을 맡게 된 것도 신인감독이 어떤 이유로 연출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감독을 겸업하게 되었는데, 애당초 시나리오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은 작품인 걸로 보인다. 짧은 시간에 주인공 수혁에게 서사를 부여하려니 그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감옥에서 10년 복역하는 동안 자기의 딸을 낳아 키웠다는 설정을 했다. 딸은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고 있고, 수혁이 나타났을 때, '아저씨'라고 부른다. 영화 '아저씨'에서 소미가 이웃집 전당포 아저씨를 마치 '아버지'처럼 여기는 것과 다른 장면이다.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아저씨'와 비교하게 된다. 두 작품의 주인공은 어린 아이를 보호하려 하고, 아이의 생명이 위험해.. 2023. 11. 26.
고령화 가족 고령화 가족 가족의 기원은 인류의 진화와 함께 한다. 200만년 전, 인류가 숲에서 초원으로 나와 두 발로 걷기 시작하기 전부터, 가족은 있었다. 거의 모든 동물은 새끼를 낳고 기른다. 하지만 모든 동물이 자기 새끼를 돌보는 건 아니다. 포유류가 등장하고, 미숙한 상태로 새끼를 낳은 경우, 암컷은 미숙한 새끼를 일정 기간 돌보도록 진화했다. 진화 과정에서 거의 모든 동물은 새끼가 어미 배에서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걷기 시작하는데, 그건 생존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간 아기가 매우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는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숙한 상태로 아기를 낳지만, 엄마가 출산하는 과정에서 사망할 확률을 줄이고, 부모가 아이를 집중해서 돌보므로 아기의 사망률도 낮출 수 있다. 여기에 포유류는 엄마 젖을 먹이.. 2023. 9. 4.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 묵직한 블랙코미디.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일까, 영화는 기대보다 훨씬 훌륭했다. 좋은 영화는 극장에 불이 들어오고, 영화관 문을 나서면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또한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할 여지가 많고, 함께 보러 간 사람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거나, 글을 쓸 이야기가 풍성하다.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좋은 영화다. 이미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밀수'도 신선한 소재와 액션, 복고의 재해석, 좋은 시나리오로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염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참신한 아이디어와 시나리오, 다층적 해석이 필요한 깊이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올해 개봉하는 한국 영화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다. 아직 보기 전이지만, '비공식작전', '보호자'도 평균.. 2023. 8. 14.
밀수 - 2회차 관람 밀수 - 2회차 관람 영화를 보고, 불과 사흘만에 다시 봤다. 오늘은 하남 스타필드 메가박스 MX에서 봤고, 처음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이 있었다. 영화를 반복해서 볼 정도라면 꽤 재미있어야 하는데, '밀수'는 그런 요소를 충분히 갖췄다. 나는 코엔 형제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데, 볼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고, 흥미롭다. 드물지만, 소설이나 그래픽노블(만화)도 두 번, 세 번 이상 읽거나 오래도록 기억하는 명작이 있기 마련이다. 영화는 이미지를 기억하기 때문에 활자보다 더 오래, 또렷하게 기억하는 장점이 있다. 이미지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인류가 훨씬 빠르게 적응하고, 활용했다. 수만 년 전에 동굴 벽화에 이미지를 남긴 것도 초기 인류의 원시적 신앙.. 2023. 8. 3.
밀수 - 류승완 감독 작품 밀수 - 류승완 감독 작품 70년대, 무법의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의 버드 무비 류승완의 영화는 경쾌하고 빠르다.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연출이 돋보이는데, 그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보여준 뛰어난 연출 특히 액션은 류승완 영화의 특징이다. '밀수'에서도 짧지만 강렬한 액션 장면이 두 부분으로 나오는데, 권필삼과 장도리 패거리가 싸우는 장면은 좁은 공간에서 치밀한 계산을 통해 만들어 낸 멋진 장면이다. 물속으로 들어간 해녀들을 죽이러 장도리 부하들이 들어가는데, 바닷속에서 벌어지는 해녀들과 산소통을 매고 무기까지든 조폭들과의 결투는 한국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물속 액션으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장면이다. 영화의 무대인 '군천'은 '군산'을 상징하는 걸로 보인다. '군산'과 '순천'이.. 2023. 7. 27.
범죄도시3 범죄도시 3 영화제작자나 감독이 처음 영화를 만들 때 기대했던 결과와 사뭇 다른 결과가 나타날 때가 있다. 대개는 흥행에 성공할 거라 예상한 영화가 참담하게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거두며 후속 영화를 만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분노의 질주'는 벌써 열번째 작품을 개봉하고 열한번째 작품을 준비할 정도로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시리즈 영화의 특징은 첫 영화가 적은 예산으로, 소박하게 만들되 흥행에 도움이 되는 오락성과 관객이 흥미롭게 반응하는 소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분노의 질주'는 3천800만 달러를 들여 2억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니 대단한 성공이었다. '범죄도시'는 제작비 70억 원으로 영화관 매출만 56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렇게 놀라운 성과를 올리면, .. 2023. 6. 6.
장화, 홍련 장화, 홍련 다시 봤다. 공포의 뿌리에는 깊은 슬픔이 고여 있다. 이 작품에서 슬픔의 근원은 돌이킬 수 없는 고통-엄마와 동생의 죽음-이고, 그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아버지다. 여기서 아버지는 가족 관계를 파탄낸 주범이자, 남성 가부장제의 전형으로, 자기 욕망을 위해 아내와 자식(딸들이다. 아들이었다면 과연 버렸을까)을 버렸다. 이 작품의 비극은 수미의 트라우마를 표현하고 있지만, 정작 아내와 막내딸을 죽게 하고, 큰딸을 미치게 만든 아버지는 멀쩡한 데 있다. 가해자는 멀쩡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도 않고, 오히려 젊은 여자-제자이자 간호사-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피해자인 수미는 죽음보다 더 큰 공포와 괴로움과 슬픔에 갇혀 질식하고 있다. 이건 잔혹한 부조리극이고, 비틀린 관계와 공간에서 앞으.. 2023. 5. 17.
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이 그동안 결코 보기 쉽지 않은 영화인건 분명하고,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다양한 메타포로 드러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번 영화는 더욱 인물의 심리, 감정의 복합성,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비언어적 상태, 드러내고 싶지만 억눌러야 하는 감정, 그러면서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절제해야 하는 비극성을 드라마틱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영화는 형사(해준)와 피의자로 의심받는 피해자의 아내(서래)가 사건으로 우연히 만나면서 발행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마음이 끌리는 걸 느끼지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일시적 욕망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서래의 남편 기도수가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은 사건을 자살 사건으로 종결한 이후, 해준은.. 2022. 7. 3.
꽃 피는 봄이 오면 꽃 피는 봄이 오면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로 놀라운 연기를 보였던 최민식 배우가 1년 뒤에 출연한 영화. 50만 명이 봤으니 흥행에 성공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따뜻하고 뭉클한 웰 메이드 영화인데, 나도 이 영화를 이제서야 봤다. 현우는 관악기(트럼펫) 연주자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오디션을 봐도 합격하지 않는데, 심사위원들은 그의 외모(옷차림)도 트집을 잡는다. 오디션을 보는 현우의 마음은 어떨까. 그는 진심으로 합격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오디션이라도 봐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까. 현우는 함께 음악공부를 한 친구가 피아노 학원을 하면서, 밤에는 유흥업소에 출연해 악기를 연주해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알고는 화를 낸다. 현우가 배운 음악은 술집에서 싸구려로 굴러다니는 음악이 아니고, .. 2022. 6. 27.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영화에서 '수학'을 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수학자의 삶을 다룬 '뷰티풀 마인드', '이미테이션 게임', '무한대를 본 남자' 같은 영화도 있지만 영화에서 '수학'이 주제이거나, 중심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학은 99%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어서, 과학이면서 신비로운 영역이라 소재로 쓰이기에 좋다. 다만, 수학 자체를 말하는 건 관객이 이해하기 어려워 서사를 풀어가는 도구로 쓰이게 된다. 이 영화에서도 수학은 소통을 위한 도구이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배경이 된다. 따라서 수학이 중요하거나 의미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도 수학과 관련해 파이 값으로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나 오일러 공식을 학성이 설명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아버지와 아.. 2022. 6. 26.
브로커 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대안 가족'에 천착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결핍 상태에 있으며, 온전하지 못한 시간을 살아왔다. 그들의 불완전한 상황은 현대인이 겪는 '불안'과 같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말처럼, 개인이 놓인 상황을 불안으로 내모는 건 개인의 의지가 아닌, 현대를 만든 인류의 집단 의지다. 개인은 이런 집단 의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사회'라는 틀 안에 종속되거나 지배당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런 사회의 구조를 보여주지 않고, 개인들의 삶을 통해 그들이 갇혀 있는, 억압의 틀을 보도록 한다. 소영의 경우, 그는 어린 나이에 '성'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소영의 가족 이야기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데, 소영에게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즉,.. 2022. 6. 12.
그대가 조국 그대가 조국 무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돌덩이가 가슴을 누르는 듯한 답답함으로 한숨을 수없이 쉬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희망이 보였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미리엘 주교가 떠올랐다. '레 미제라블'에서 장 발장이 훔친 은촛대가 자기가 선물로 준 거라며, 은식기는 왜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장 발장을 나무라던 주교. 미리엘 주교는 귀족 출신의 사제이자 디뉴의 주교로 명망 높은 인물이었지만 그는 주교관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주고 작은 집에서 여동생 바티스틴, 가정부 마글루아르와 단촐하게 산다. 미리엘의 가족이 정치 사건에 연루되어 몰살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화려한 귀족 생활을 했던 미리엘은 가족이 몰살당하는 공포와 슬픔, 분노의 감정을 안고 스페인으로 망명한다. 시간이 .. 2022. 5. 27.
아치의 노래, 정태춘 아치의 노래, 정태춘 1 정태춘은 시인이다. 노래하는 시인이다. 그는 노래하기 전에 먼저 시를 쓴다. 그가 시인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건, 그의 정체성을 말할 때, 노래하는 사람이 우선인지, 시를 쓰는 사람이 우선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에게 있어 노래보다 시가 더 존재의 근본에 가까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류는 진화하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고, 언어가 발달하자 가장 먼저 노래를 불렀다. 씨족 단위의 인류는 날이 밝으면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면서 생존을 영위했고, 해가 지면 동굴이나 움막에 모여 서로 끌어안고 맹수나 다른 씨족의 공격을 경계하며 깊은 잠을 들지 못했다.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불을 이용해 음식을 구워 먹거나 밤에 불을 밝히고, 추울 때 난방용으로 사용하면서 인류의 진화는 급격히 .. 2022. 5. 21.
범죄도시 2 범죄도시 2 '범죄도시'를 보고 리뷰를 쓴 것이 2017년이었으니 벌써 5년이 지났다. 배우 마동석의 캐릭터를 뚜렷하게 각인한 영화로, 조선족 범죄자 '장첸'의 이미지도 기존 한국 범죄영화의 악역 배우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캐릭터 영화'였다. '범죄도시'는 '마동석 장르'가 탄생한 영화여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배우 마동석이 2004년 단역으로 데뷔한 이후 2017년 '범죄도시'로 확고한 주연의 위치, 자기 캐릭터의 완성, 장르로서의 마동석으로 탄생하기까지 약 40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고, 이 영화 가운데 몇 편에서 주연도 했지만, '범죄도시'의 강력한 캐릭터와 비슷하게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는 '비스티 보이즈'와 '부산행', '성난 황소' 등이 있었다... 2022. 5. 20.
야차 야차 넷플릭스. 첩보 액션 영화라면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이다. 두 영화에서 공통점은 '국정원', '남한 첩보원', '북한 첩보원'이 등장한다는 것이고, 이들이 움직이는 도시는 '베를린'과 '중국'이다. '야차'에서는 일본 첩보원이 등장하는 대신 미국 정보부(CIA)는 등장하지 않고, '베를린'에서는 그 반대다. 두 영화 모두 '첩보 액션'인데, '베를린'은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야차'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제작비나 연출의 문제를 말할 수도 있고, 시나리오의 문제를 지적할 수도 있다. 핵심은 리얼리티의 핍진성, 리얼리티의 완결성이다. 온갖 더러운 일을 맡아 해결하는 '블랙팀'이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 과거 미국 CIA에서 다른 나라 정치에 개입할 때, 미국의 .. 2022. 4. 11.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 세번 봤다. 처음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감독판으로 한번, 어제 다시 넷플릭스에서 한번. 지금 다시 보니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었다. 영화는 환타지고, 현실은 시궁창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영화의 결말이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다. 언론, 자본, 권력의 삼위일체가 어떻게 기득권을 유지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는가를 보여주는데,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 '환타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언론 권력을 가진 자가 깡패에게 상납받고, 언론 권력이 정치 권력을 만들고, 자본 권력은 돈으로 정치 권력을 후원하면서 자본의 이익을 최대로 만드는 법안을 만들도록 한다. 이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이며, 서로 '더럽.. 2022. 4. 10.
내 안의 그놈 내 안의 그놈 가끔 아무 생각없이 웃기는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코미디, 판타지 영화의 유용성은 분명하다. 잠시 현실을 잊고 고민, 걱정, 근심, 불안 따위의 부정적 감정을 외면하고 싶을 때, 이런 영화는 좋은 수단이 된다. 이 영화는 비평가들에게 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진부하고 클리셰 투성이어서 '그렇고 그런' 수 많은 '바디체인지', '영혼 바꾸기' 영화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평론가 서정환은 " 영혼이 바뀐다는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진부한 설정, 게다가 그 대상이 조폭과 고등학생이라니! 이 빤하디 빤한 설정의 코미디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은 그 속에서 최소한의 기본을 지키며 기대 이상의 웃음을 끌어낸다. 우선 진부하고 유치한 설정들을 그럴듯해 보이려고 포장하지 않.. 2022. 3. 10.
세이빙 미스터 우 세이빙 미스터 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2004년 영화배우 오약보가 납치범에게 납치된다. 오약보는 이 영화 '세이빙 미스터 우'에서 형사 조강 역으로 출연하기도 하는데, 자신의 납치 사건을 다룬 영화에 주인공이 아닌, 범인을 쫓는 형사로 등장한 것이다. 영화는 시간을 앞뒤로 복잡하게 배치하면서, 납치범과 인질, 경찰 사이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려 한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핸드헬드 카메라는 계속 흔들리며 인물을 따라가고, 상황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해 날짜와 시간을 화면에 보여준다. 즉, 사건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과 짧은 시간에 범인을 체포하기까지 경찰의 긴박하면서도 현명한 대응을 실감하게 되는 영화다. 영화는 사건이 발생한 시간 순서를 복잡하게 뒤섞어서 관객이 편하게 관람.. 2021. 8. 17.
모가디슈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작품.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모티프만 가져왔을 뿐, 창작이나 다름 없는 영화다. 이전에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로 '베를린'이 있었으니 이 작품은 남북관계를 다룬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다. '한국형 액션'을 만들어낸 류승완 감독의 작품은 데뷔작부터 '모가디슈'까지 류승완 스타일은 핵심을 유지하면서 보다 세련해지고,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기존의 류승완 작품들과 비교해서도 몇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그 특징을 중심으로 영화를 살펴보자. 기시감, 낯익은 장면들 영화는 아프리카 소말리아가 배경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마음이 울컥할 때가 있었다. 소말리아 민중이 독재 정권에 맞서 시위할 때, 몽둥이를 든 경찰과 군인들이 소말리아 시민을 마.. 2021. 8. 14.
구타유발자들 구타유발자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블랙코미디로만 생각했고, 리뷰 쓸 생각을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서도 이 영화는 인상 깊게 남아 있었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였다. 마침 넷플릭스에 있어서 천천히 생각하며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작품으로는 상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bloody aria'다. 한글 제목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데, 오히려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각본을 쓰고 연출한 원신연 감독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일상에서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 지극히 평범한 공간, 가장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블랙코미디와.. 2021. 8. 12.
세 자매 세 자매 훌륭한 작품. 저마다 기구한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여기 세 자매의 삶도 만만찮다. 세 자매는 서로 사뭇 다른 삶을 살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감정은 '억울함'이다. 그것도 가벼운 억울함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이들 세 자매의 영혼 깊은 곳에 꾹꾹 눌리며 쌓인 트라우마가 이들의 삶을 서서히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의 시공간은 이들 세 자매가 눌려 있던 트라우마를 폭발하는 과정을 핍진하게 그리고 있다. 절제된 대사와 행동이 인물들 사이의 긴장을 증폭하고 관객에게 뜻밖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 공포는 비틀린 시간이 만든 것으로, 그 시간을 견뎌온 세 자매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그 시공간을 통과하면서 기형적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자기 모습을 마.. 2021. 7. 15.
소리도 없이 소리도 없이 태인은 말을 하지 못(안)한다. 창복은 다리를 전다. 두 사람은 달걀 장사를 하면서 부업을 하는데,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다. 조폭들이 납치해 고문, 살해한 사람을 산에 암매장하는 일을 하면서 약간의 돈을 받는다. 트럭에 달걀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고, 조폭이 일을 맡기면 그때마다 부업을 하는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는 두 사람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산다. 창복은 교회에도 열심으로 다니는데, 태인에게도 찬송가와 설교 테이프를 열심히 들으라고 말한다. 창복은 다리를 저는 장애 때문이기도 하고, 어쩌면 태인처럼 처음부터 고아였을 수도 있다. 가족도 없고,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창복은 중늙은이가 될 때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어린 태인을 만나게 되는데, 태인을 데려와 .. 2021. 5. 19.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PD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은 찬실은 새로운 영화 제작을 앞두고 감독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난감한 신세가 된다. 수입이 끊기자 산동네 단칸방으로 이사하고, 친하게 지내는 여배우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기도 한다. 여배우의 집으로 찾아오는 영어 과외 선생 김영을 만나면서 찬실은 그에게 이성의 끌림을 느끼지만, 김영은 찬실을 누나로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할머니 혼자 산다는 집에는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장국영이 있고, 그는 찬실이 눈에만 보이는 귀신인데, 엄청 착한 귀신이다. 왜 찬실의 눈에만 보이는 장국영 귀신이 나타날까. 장국영은 찬실에게 마음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전부 버리고,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한다. 찬실은 그동안 영화를 만드는 일에 자신을 내던지고 살아왔.. 2021. 5. 5.
낙원의 밤 낙원의 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방법 '너 혼자 있기 싫다며'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특별한 상황에 놓인 경우, 그 죽음의 의미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죽음'은 모두 시한부 삶으로 나타난다. 태구의 누나도 태구가 '이식'을 해주고 싶지만, 아버지가 다른 남매라서 가능하지 않았고, 그마져도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는다. 태구가 제주도에서 만난 재연도 시한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수술해도 살 수 있는 확률이 10%에 불과한 불치병을 앓고 있는 재연은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지금의 삶에 미련이 없다. 태구 역시 누나와 조카를 죽인 북성파 도회장을 살해하고 조직 두목인 양사장의 지시로 제주도로 몸을 숨기면서, 자신의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한다. 줄거리.. 2021.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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