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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116

파묘 - 역사와 정치의 알레고리 파묘 - 역사와 정치의 알레고리 이 영화가 친일매국노와 일본 침략의 역사를 다룬 내용이라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무덤을 팠더니 험한 것이 나왔다는 말은, 영화에서 두 개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제는 1천만 관객을 향하고 있으니 더 이상 스포일러라고 말하기 어려운데, 친일매국노의 영혼과 진짜 왜구의 '진령'이 그것이다. 이 영화를 '깔고 보는' 사람들은, 영화가 가져야 할 교과서적 내용에 집착한다. 시나리오, 미장센, 연출 의도, 서사의 흐름, 형식(오컬트)의 불일치 등등 지적할 내용은 끝도 없다. 심지어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에 별 2.5를 주었고, '매불쇼'에 나와서 영화를 이야기 하는 두 명의 영화평론가와 두 명의 영화 리뷰어는 '파묘'가 갖는 진짜 의미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파묘'를 보고 .. 2024. 3. 15.
조용한 가족 조용한 가족 시간이 흘러 다시 봐도, 가끔 다시 봐도 재미있는 영화, 잘 만든 영화다. 요즘 이런 웰메이드 코믹 잔혹극을 보기 어려운 건 왜 그럴까? 재능 있는 감독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극장 시스템, 영화 제작 시스템의 변화가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용한 가족' 만큼 잘 만든 가족 영화로는 '고령화 가족'이 있다. 두 영화는 장르가 다르지만, '가족'이 중심이고 주제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두 영화는 큰 웃음을 주는 재미가 있고, 연출, 연기 등 모든 면에서 고르게 훌륭하다. '조용한 가족'이 코믹 잔혹극이라면, '고령화 가족'은 코믹 막장극이다. 두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는 겹치지 않지만, 출연 배우들 면면히 한국 최고 배우들이어서, 그들의 연기를 보는 .. 2024. 1. 30.
선산 선산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 연상호 감독이 웹툰 원작에도 참여하고, 영화에도 참여한 작품으로 웹툰보다 진지한 면은 장점이다. 연출은 연상호 감독 작품에서 조감독을 했던 민홍남 조감독의 감독 데뷔작이다. 웹툰과 영화 제작진이 같아서 큰틀에서 분위기와 전개 방식은 비슷한데, 웹툰에서는 가벼운 농담과 코믹한 장면을 넣었으나, 그런 가벼움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6부작이어도, 편집을 하고, 극의 흐름을 조금 빨리 한다면 극장용 영화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본다. 처음 시작과 전개는 긴장을 고조하는 효과가 있었는데, 뒤로 갈수록 인물들의 연결이 느슨해지면서 아쉬운 점이 남는다. 드라마는 그동안 연상호 감독의 작품에서 본 듯한 분위기와 공포, 스릴러 영화가 갖는 클리셰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2024. 1. 30.
노량 - 죽음의 바다 노량 - 죽음의 바다 역사에서도 앞선 명량, 한산 전투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치열한 전투였던 노량 전투였고, 이 전투 과정에서 이순신 장군이 서거하면서, 여러 의미에서 전쟁은 끝났다. 기막힌 역사의 우연이지만, 위대한 영웅 서사에서 영웅의 마지막은 극적인 죽음으로 완성한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 침략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해군을 지휘하며 연전연승으로 일본의 조선 진출을 막았을 뿐아니라, 일본군의 패퇴로 인한 일본 막부의 분열과 내부 갈등으로 일본 역사의 급변에도 직접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일본 해군이 이순신 장군을 두려워하고, 결국 일본에서 이순신 장군을 '신'으로 추앙하기 시작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출간했는데, 메이지 시대인 1892.. 2023. 12. 21.
잠 - 일상이 공포가 될 때 잠 - 일상이 공포가 될 때 갑자기 수면장애가 생긴 현수의 수면 행동을 보게 된 수진은 무섭고 걱정이 많아진다. 수진은 출산이 가까운 임산부라는 핸디캡이 있고, 다른 어느 때보다 몸과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오히려 불안과 걱정이 늘어나면서 이 영화가 공포 속으로 들어갈 여건을 제공한다. 현수가 수면장애를 앓게 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배우로 활동하지만 단역에 불과한 배우로, 늘 불안한 상태로 일하는 조건과 낮은 임금에서 오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고, 가정을 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아내가 임신해 곧 아기를 낳으면, 아이를 키워야 하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어려움이 뻔히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어서 현수는 마음이 불안하다. 불안하기는 수진도 마찬가지. 남편 현수를 사랑하.. 2023. 12. 17.
보호자 보호자 정우성 배우의 감독 데뷔 작품.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정우성 배우가 감독을 맡게 된 것도 신인감독이 어떤 이유로 연출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감독을 겸업하게 되었는데, 애당초 시나리오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은 작품인 걸로 보인다. 짧은 시간에 주인공 수혁에게 서사를 부여하려니 그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고, 감옥에서 10년 복역하는 동안 자기의 딸을 낳아 키웠다는 설정을 했다. 딸은 아버지의 존재를 모르고 있고, 수혁이 나타났을 때, '아저씨'라고 부른다. 영화 '아저씨'에서 소미가 이웃집 전당포 아저씨를 마치 '아버지'처럼 여기는 것과 다른 장면이다.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아저씨'와 비교하게 된다. 두 작품의 주인공은 어린 아이를 보호하려 하고, 아이의 생명이 위험해.. 2023. 11. 26.
고령화 가족 고령화 가족 가족의 기원은 인류의 진화와 함께 한다. 200만년 전, 인류가 숲에서 초원으로 나와 두 발로 걷기 시작하기 전부터, 가족은 있었다. 거의 모든 동물은 새끼를 낳고 기른다. 하지만 모든 동물이 자기 새끼를 돌보는 건 아니다. 포유류가 등장하고, 미숙한 상태로 새끼를 낳은 경우, 암컷은 미숙한 새끼를 일정 기간 돌보도록 진화했다. 진화 과정에서 거의 모든 동물은 새끼가 어미 배에서 나와 얼마 지나지 않아 걷기 시작하는데, 그건 생존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간 아기가 매우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는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숙한 상태로 아기를 낳지만, 엄마가 출산하는 과정에서 사망할 확률을 줄이고, 부모가 아이를 집중해서 돌보므로 아기의 사망률도 낮출 수 있다. 여기에 포유류는 엄마 젖을 먹이.. 2023. 9. 4.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 묵직한 블랙코미디.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일까, 영화는 기대보다 훨씬 훌륭했다. 좋은 영화는 극장에 불이 들어오고, 영화관 문을 나서면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또한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할 여지가 많고, 함께 보러 간 사람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거나, 글을 쓸 이야기가 풍성하다.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좋은 영화다. 이미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밀수'도 신선한 소재와 액션, 복고의 재해석, 좋은 시나리오로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염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참신한 아이디어와 시나리오, 다층적 해석이 필요한 깊이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올해 개봉하는 한국 영화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다. 아직 보기 전이지만, '비공식작전', '보호자'도 평균.. 2023. 8. 14.
밀수 - 2회차 관람 밀수 - 2회차 관람 영화를 보고, 불과 사흘만에 다시 봤다. 오늘은 하남 스타필드 메가박스 MX에서 봤고, 처음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이 있었다. 영화를 반복해서 볼 정도라면 꽤 재미있어야 하는데, '밀수'는 그런 요소를 충분히 갖췄다. 나는 코엔 형제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데, 볼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고, 흥미롭다. 드물지만, 소설이나 그래픽노블(만화)도 두 번, 세 번 이상 읽거나 오래도록 기억하는 명작이 있기 마련이다. 영화는 이미지를 기억하기 때문에 활자보다 더 오래, 또렷하게 기억하는 장점이 있다. 이미지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인류가 훨씬 빠르게 적응하고, 활용했다. 수만 년 전에 동굴 벽화에 이미지를 남긴 것도 초기 인류의 원시적 신앙.. 2023. 8. 3.
밀수 - 류승완 감독 작품 밀수 - 류승완 감독 작품 70년대, 무법의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의 버드 무비 류승완의 영화는 경쾌하고 빠르다.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연출이 돋보이는데, 그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보여준 뛰어난 연출 특히 액션은 류승완 영화의 특징이다. '밀수'에서도 짧지만 강렬한 액션 장면이 두 부분으로 나오는데, 권필삼과 장도리 패거리가 싸우는 장면은 좁은 공간에서 치밀한 계산을 통해 만들어 낸 멋진 장면이다. 물속으로 들어간 해녀들을 죽이러 장도리 부하들이 들어가는데, 바닷속에서 벌어지는 해녀들과 산소통을 매고 무기까지든 조폭들과의 결투는 한국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물속 액션으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장면이다. 영화의 무대인 '군천'은 '군산'을 상징하는 걸로 보인다. '군산'과 '순천'이.. 2023. 7. 27.
범죄도시3 범죄도시 3 영화제작자나 감독이 처음 영화를 만들 때 기대했던 결과와 사뭇 다른 결과가 나타날 때가 있다. 대개는 흥행에 성공할 거라 예상한 영화가 참담하게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거두며 후속 영화를 만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분노의 질주'는 벌써 열번째 작품을 개봉하고 열한번째 작품을 준비할 정도로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시리즈 영화의 특징은 첫 영화가 적은 예산으로, 소박하게 만들되 흥행에 도움이 되는 오락성과 관객이 흥미롭게 반응하는 소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분노의 질주'는 3천800만 달러를 들여 2억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니 대단한 성공이었다. '범죄도시'는 제작비 70억 원으로 영화관 매출만 56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렇게 놀라운 성과를 올리면, .. 2023. 6. 6.
장화, 홍련 장화, 홍련 다시 봤다. 공포의 뿌리에는 깊은 슬픔이 고여 있다. 이 작품에서 슬픔의 근원은 돌이킬 수 없는 고통-엄마와 동생의 죽음-이고, 그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아버지다. 여기서 아버지는 가족 관계를 파탄낸 주범이자, 남성 가부장제의 전형으로, 자기 욕망을 위해 아내와 자식(딸들이다. 아들이었다면 과연 버렸을까)을 버렸다. 이 작품의 비극은 수미의 트라우마를 표현하고 있지만, 정작 아내와 막내딸을 죽게 하고, 큰딸을 미치게 만든 아버지는 멀쩡한 데 있다. 가해자는 멀쩡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도 않고, 오히려 젊은 여자-제자이자 간호사-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피해자인 수미는 죽음보다 더 큰 공포와 괴로움과 슬픔에 갇혀 질식하고 있다. 이건 잔혹한 부조리극이고, 비틀린 관계와 공간에서 앞으.. 2023. 5. 17.
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이 그동안 결코 보기 쉽지 않은 영화인건 분명하고,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다양한 메타포로 드러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번 영화는 더욱 인물의 심리, 감정의 복합성,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비언어적 상태, 드러내고 싶지만 억눌러야 하는 감정, 그러면서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절제해야 하는 비극성을 드라마틱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영화는 형사(해준)와 피의자로 의심받는 피해자의 아내(서래)가 사건으로 우연히 만나면서 발행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마음이 끌리는 걸 느끼지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일시적 욕망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서래의 남편 기도수가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은 사건을 자살 사건으로 종결한 이후, 해준은.. 2022. 7. 3.
꽃 피는 봄이 오면 꽃 피는 봄이 오면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로 놀라운 연기를 보였던 최민식 배우가 1년 뒤에 출연한 영화. 50만 명이 봤으니 흥행에 성공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따뜻하고 뭉클한 웰 메이드 영화인데, 나도 이 영화를 이제서야 봤다. 현우는 관악기(트럼펫) 연주자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오디션을 봐도 합격하지 않는데, 심사위원들은 그의 외모(옷차림)도 트집을 잡는다. 오디션을 보는 현우의 마음은 어떨까. 그는 진심으로 합격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오디션이라도 봐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까. 현우는 함께 음악공부를 한 친구가 피아노 학원을 하면서, 밤에는 유흥업소에 출연해 악기를 연주해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알고는 화를 낸다. 현우가 배운 음악은 술집에서 싸구려로 굴러다니는 음악이 아니고, .. 2022. 6. 27.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영화에서 '수학'을 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수학자의 삶을 다룬 '뷰티풀 마인드', '이미테이션 게임', '무한대를 본 남자' 같은 영화도 있지만 영화에서 '수학'이 주제이거나, 중심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학은 99%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어서, 과학이면서 신비로운 영역이라 소재로 쓰이기에 좋다. 다만, 수학 자체를 말하는 건 관객이 이해하기 어려워 서사를 풀어가는 도구로 쓰이게 된다. 이 영화에서도 수학은 소통을 위한 도구이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배경이 된다. 따라서 수학이 중요하거나 의미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도 수학과 관련해 파이 값으로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나 오일러 공식을 학성이 설명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아버지와 아.. 2022. 6. 26.
범죄도시 2 범죄도시 2 '범죄도시'를 보고 리뷰를 쓴 것이 2017년이었으니 벌써 5년이 지났다. 배우 마동석의 캐릭터를 뚜렷하게 각인한 영화로, 조선족 범죄자 '장첸'의 이미지도 기존 한국 범죄영화의 악역 배우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캐릭터 영화'였다. '범죄도시'는 '마동석 장르'가 탄생한 영화여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배우 마동석이 2004년 단역으로 데뷔한 이후 2017년 '범죄도시'로 확고한 주연의 위치, 자기 캐릭터의 완성, 장르로서의 마동석으로 탄생하기까지 약 40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고, 이 영화 가운데 몇 편에서 주연도 했지만, '범죄도시'의 강력한 캐릭터와 비슷하게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는 '비스티 보이즈'와 '부산행', '성난 황소' 등이 있었다... 2022. 5. 20.
내 안의 그놈 내 안의 그놈 가끔 아무 생각없이 웃기는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코미디, 판타지 영화의 유용성은 분명하다. 잠시 현실을 잊고 고민, 걱정, 근심, 불안 따위의 부정적 감정을 외면하고 싶을 때, 이런 영화는 좋은 수단이 된다. 이 영화는 비평가들에게 졸작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진부하고 클리셰 투성이어서 '그렇고 그런' 수 많은 '바디체인지', '영혼 바꾸기' 영화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평론가 서정환은 " 영혼이 바뀐다는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진부한 설정, 게다가 그 대상이 조폭과 고등학생이라니! 이 빤하디 빤한 설정의 코미디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은 그 속에서 최소한의 기본을 지키며 기대 이상의 웃음을 끌어낸다. 우선 진부하고 유치한 설정들을 그럴듯해 보이려고 포장하지 않.. 2022. 3. 10.
모가디슈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작품.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모티프만 가져왔을 뿐, 창작이나 다름 없는 영화다. 이전에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로 '베를린'이 있었으니 이 작품은 남북관계를 다룬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다. '한국형 액션'을 만들어낸 류승완 감독의 작품은 데뷔작부터 '모가디슈'까지 류승완 스타일은 핵심을 유지하면서 보다 세련해지고,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기존의 류승완 작품들과 비교해서도 몇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그 특징을 중심으로 영화를 살펴보자. 기시감, 낯익은 장면들 영화는 아프리카 소말리아가 배경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마음이 울컥할 때가 있었다. 소말리아 민중이 독재 정권에 맞서 시위할 때, 몽둥이를 든 경찰과 군인들이 소말리아 시민을 마.. 2021. 8. 14.
구타유발자들 구타유발자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블랙코미디로만 생각했고, 리뷰 쓸 생각을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서도 이 영화는 인상 깊게 남아 있었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였다. 마침 넷플릭스에 있어서 천천히 생각하며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작품으로는 상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bloody aria'다. 한글 제목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데, 오히려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각본을 쓰고 연출한 원신연 감독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일상에서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 지극히 평범한 공간, 가장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블랙코미디와.. 2021. 8. 12.
세 자매 세 자매 훌륭한 작품. 저마다 기구한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여기 세 자매의 삶도 만만찮다. 세 자매는 서로 사뭇 다른 삶을 살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감정은 '억울함'이다. 그것도 가벼운 억울함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이들 세 자매의 영혼 깊은 곳에 꾹꾹 눌리며 쌓인 트라우마가 이들의 삶을 서서히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의 시공간은 이들 세 자매가 눌려 있던 트라우마를 폭발하는 과정을 핍진하게 그리고 있다. 절제된 대사와 행동이 인물들 사이의 긴장을 증폭하고 관객에게 뜻밖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 공포는 비틀린 시간이 만든 것으로, 그 시간을 견뎌온 세 자매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그 시공간을 통과하면서 기형적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자기 모습을 마.. 2021. 7. 15.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PD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은 찬실은 새로운 영화 제작을 앞두고 감독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난감한 신세가 된다. 수입이 끊기자 산동네 단칸방으로 이사하고, 친하게 지내는 여배우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기도 한다. 여배우의 집으로 찾아오는 영어 과외 선생 김영을 만나면서 찬실은 그에게 이성의 끌림을 느끼지만, 김영은 찬실을 누나로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할머니 혼자 산다는 집에는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장국영이 있고, 그는 찬실이 눈에만 보이는 귀신인데, 엄청 착한 귀신이다. 왜 찬실의 눈에만 보이는 장국영 귀신이 나타날까. 장국영은 찬실에게 마음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전부 버리고,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한다. 찬실은 그동안 영화를 만드는 일에 자신을 내던지고 살아왔.. 2021. 5. 5.
죄 많은 소녀 죄 많은 소녀 충격적인 영화다. 주제, 배우의 연기, 감독의 연출 모두 예사롭지 않을 뿐 아니라 탁월하다. 저예산 독립영화의 작품 수준이 이 정도라면, 한국영화는 가능성과 희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해도 좋겠다. 여자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한 여학생의 자살 사건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살해하는가'에 관한 핍진한 관찰 기록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관객의 심리를 건드린다. 그것은 배우들의 연기 뿐 아니라 음악, 음향, 인물들이 놓여 있는 극단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도록 한다. 경민이 실종되고, 담임 선생과 형사들은 전날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를 불러 경민의 실종에 관해 묻는다. 학교에 오지 않은 경민의 부재.. 2021. 3. 7.
언니 언니 주제도, 내용도 훌륭한데 시나리오와 연출이 아쉽다. 이 정도 내용이라면 정통 액션 스릴러로 충분하겠다. 이시영의 액션도 좋고, 여성 주인공이 악한 짓을 저지른 남성들을 응징하는 내용이라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작품 '데쓰프루프'의 여성 주인공들이 벌이는 멋진 활약이나 '킬 빌'에서 우마 서먼이 보여주는 뛰어난 액션 등을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인데, 어중간한 액션으로 끝난 것이 퍽 아쉽다. 인애는 무술로 단련된 경호원이다.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은혜는 발달장애인이지만 일반 고등학교에 다닌다. 은혜는 학교에서 일진 양아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성매매 도구로 그들의 돈벌이에 쓰였으며, 동네에서 가게를 하는 중년의 남성들에게 성폭행당한뒤 인신매매 조직에 팔린다. 납치 당한 동생을 찾는 인애는 최초의.. 2021. 2. 5.
벌새 벌새 1994년에 나는 30대 초반이었다. 다행히 2년 전, 산본신도시에 작은 아파트를 분양 받아 입주한 것이 30년 동안 살아온 보람이자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산동네 빈민촌에서 월세, 전세를 전전하다 어렵게 집을 마련했으니 큰 짐은 덜었지만, 나는 여전히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프리랜서 활동을 하며 출판사, 잡지사와 계약을 맺고 이러저러한 책을 만들고 있었는데, 수입은 적었고, 그나마 불규칙하게 발생하는 수입으로 생활은 어려웠다. 마침 이 무렵 써 놓은 일기가 있어서 찾아봤더니, 이 영화에 나오는 사건들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 1994년 6월 18일 토요일 아침에 월드컵 축구 한국과 스페인의 경기가 있었다. 2대 2로 비긴 경기. 나.. 2020. 12. 27.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몇년 전, 이 영화를 보고 꽤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리뷰를 쓰지 않고 지나갔다. 엊그제 '다스뵈이다'에서 김어준 총수가 이 영화를 다시 언급했고,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분명 낮게 평가된 영화라서,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의 진가를 알아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복남...'은 김기영 영화 세계의 영역에 속한다. 이 영화를 만든 장철수 감독이 김기영 사단에서 조연출로 오래 일했고, '김복남..'으로 장편 데뷔를 했으니, 장철수 감독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영화이면서, 그가 배운 김기영 영화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김복남...'은 여성주의 영화, 여성영화,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근본으로 보면 이 영화는 '스팔타쿠스.. 2020. 10. 1.
[영화] 악인전 [영화] 악인전 이 영화가 이미 무수히 제작되어 관객들이 싫증을 낼 정도가 된버린 ‘조폭' 영화와 다른 점은, 버디 무비라는 것과 조폭 두목과 형사의 콜라보레이션이다. 버디 무비라면 주로 형사 둘이 주인공이거나, 조폭 둘이 주인공이 많은데, 이 영화에서는 조폭 두목과 형사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협력은 하지만, 서로 끝까지 경계하고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상대를 경계한다. 영화 ‘신세계'처럼 비장함이 흐르지도 않고, 캐릭터의 행동에 중의적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제목이 적확하게 말하듯, 이 영화의 주인공 세 명은 모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인물이다. 조폭 두목인 장동수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인물이고, 범죄로 번 돈으로 호사한 생활을 누리며, 부하들을 엄격하게 다스리고, 자기 사업에 걸림.. 2019. 10. 8.
[영화] 강철비 [영화] 강철비 훌륭한 영화. 강력 추천. 다른 걸 다 떠나서 정우성의 잘 생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돈이 아깝지 않은데,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훌륭하다. 최근에 개봉한 한국영화들 가운데-아직 안 본 '1987'이나 '신과 함께'는 예외-가장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한국의 분단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정치적 변화 가운데 '북한 최고 지도자의 유고 상태'를 상정해 만든 액션드라마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면서, 현재 한국정부와 군부는 북한과의 다양한 변화를 시나리오로 만들어 매뉴얼을 준비하고 있는데, 북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 가운데 '북한 최고지도자의 유고'도 들어 있다. 북한 쿠데타 역시 대응 매뉴얼에 들어 있다. 그리고 북한의 내전, 천재.. 2017. 12. 23.
[영화] 하루 [영화] 하루 타임루프를 소재로 만든 영화. 제목 '하루'는 중의적 의미를 갖고 있다. 시간으로의 하루, 사람 이름으로의 하루가 그것이다. 주인공 준영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다. 그가 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내려 딸을 만나러 가는 과정부터 타임루프가 시작된다. 딸을 만나기 직전에 교통사고로 딸이 죽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다시 첫 장면인 공항에서 깨어나는 것인데, 준영은 딸을 살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똑같다. 타임루프가 발생하는 이유는, 지금의 현실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과거의 어떤 일이 비정상적인 사건으로 인해 시공간이 비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비정상적인 사건을 겪은 모든 사람들이 타임루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일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 2017. 10. 1.
[영화] 청년경찰 [영화] 청년경찰 경찰대학에 다니는 학생 둘이 우연히 사건을 발견하고 끝까지 추적해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 코미디 버디무비답게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함을 유지한다. 영화는 두 청년의 우정과 심각한 범죄조직 사이에서 진지함과 유쾌함의 절충점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비판부터 하자면, 극중에서 발생한 어린 여성들의 납치사건은 코미디의 소재로 쓰일 만한 상황은 아니다. 물론 어떤 범죄든 마찬가지지만 심각한 범죄가 코미디의 소재가 되는 건 보기에 불편하다. 웃고 즐기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는 범죄를 소비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반면 이제 스무살짜리 앳된 청년들이 정의와 열정으로 범죄를 몸으로 부딪치며 해결하는 과정은 청년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똑똑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 2017. 8. 20.
[영화] 군함도 [영화] 군함도 류승완 감독 작품. 믿고 보는 감독의 영화라서 개봉을 기다려 보러 갔다. 개봉하자마자 인터넷에는 이 영화에 관한 부정적인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와 비교해서 평가하는 내용도 많았는데, '덩케르크'는 훌륭하고, 이 영화는 실망스럽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과연 그런가. '덩케르크'는 영국군의 철수 작전을 그린 영화이고, 독일군에게 패퇴하는 상황이었지만, 분명 승리한 자의 기록이다. 영국인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자기 나라의 승리한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그렸다. 그래서 과장하지 않은 그의 영화가 오히려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했다는 평가가 대체로 옳다고 본다. 철저한 고증과 사실성(리얼리티)의 완성도가 높.. 2017.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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