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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연구소12

안철수 대표, 정치는 오기로 해서는 안 됩니다 안철수 대표, 정치는 오기로 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로 나선 안철수 당대표께, 시민의 한 사람으로 충고합니다. 정치는 자기의 자존심을 살리려고 오기를 부리며 하는 게 아닙니다. 이제라도 정치를 깨끗하게 포기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시 찾아보길 바랍니다. 저는 지난 몇 년 사이 안철수 대표에게 보내는 글 세 편을 썼습니다. 2015년에 쓴 글 (https://brunch.co.kr/@marupress/142)에서 정치를 시작하는 안철수 대표에 대해 안쓰런 마음과 함께, 정치인 안철수의 행보에 의문을 갖는다는 글을 썼습니다. 안철수 대표의 진정어린 마음은 믿지만, 함께 정치하는 사람들 속에서 안철수 정치의 본질을 잊은 것은 아닌지, 진보적 테제와 개혁의.. 2021. 1. 15.
안철수 의원께 안철수 의원께날마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안철수 의원을 보면서, 언론의 포화상태가 이제는 도를 넘어서고 있고, 그로 인해 여론도 양적 변화에서 질적 변화로 이어지는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 지금까지 안철수 의원을 지켜보면서 갖게 된 제 생각을 정리하고, 안철수 의원께 한 두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제가 알던 예전의 안철수 대표와 지금의 안철수 의원은 사뭇 다른 사람입니다. 물론 예전과 지금의 역할, 입지, 철학 등이 같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됨'입니다. 그 사람의 ‘기본'과 ‘철학'이 바뀌게 되면, 말과 행동이 바뀌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제가 심각하게 오해를 하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좋겠다는 .. 2015. 12. 8.
2004년-워크샵 2004년 8월 말. 회사에서는 이런 저런 직원교육을 마련했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회사에서 준비하는 워크샵은 때론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돈과 시간 낭비가 많다. 물론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조금 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회사에 있을 때, 수 십 번의 교육에 참가하고, 워크샵이며 팀 빌딩 훈련 등에 참가해서 얻은 것이 별로 없었다. 회사에서는 나름 직원들을 위해 애를 쓰는 듯 하지만, 문제는,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인사, 총무팀의 역량이다. 교육 시간에, 외부에서 초빙된 강사들 수준이 낮아서 교육 효과가 없고, 있다해도 그때 뿐이어서 교육을 받는 의미가 없게 된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투여하는 교육의 기회란, 노동자의 능력을 최대치.. 2012. 1. 18.
2004년-동료들 잘 나온 사진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어서, 흔들리는 사진을 올렸다. 지금도 회사에 잘 다니는 동료가 있고, 다른 회사로 옮긴 동료들도 있다. 팀 회식인 듯 한데, 빕스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를 했다. 내가 가져왔을 것으로 보여지는 훈제연어. 누군가의 접시에 담겨 있던 연어구이. 역시 누군가의 접시에 담겨 있던 스테이크. 동료들과 함께 한 직장생활은 즐거웠다. 2012. 1. 10.
2004년-게파티 2004년 3월 초. 직장에서 게파티가 벌어졌다. 흔치 않은 일이다. 아마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걸로 기억한다. 우리팀의 직원 고향이 영덕이어서 비싸고 먹기 힘들다는 대게를 수십 박스 구할 수 있었다. 잡아서 곧바로 게를 쪄서 포장한 다음 발송한 것을 회사에서 받아, 파티를 했는데,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대게를 이렇게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회사에서 직원들과 다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친교를 쌓을 수 있었던 추억이 더 좋았다. 2012. 1. 8.
2001년-레프팅 2001년 7월. 회사 직원 전체가 강원도 동강으로 레프팅을 하러 갔다. 교육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진을 보니,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모두들 재미있게 레프팅을 했던 기억이 난다. 2011. 12. 9.
2001년-회사에서 토요일에 회사를 찾아온 가족. 우리 회사의 좋은 점이, 이렇게 주말 근무를 할 때, 가족이 회사를 방문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나보다. 결국 이런 행동이 '근무태만'으로 찍혀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었는데, 소위 '관리자'라는 사람이, 자신도 가족이 있으면서, 말도 안 되는 야비한 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 내가 '안철수연구소'에 다니는 것이 모멸스러웠다. 물론, 거의 모든 동료들은 좋은 사람들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좋은 사람들로 만나고 있지만, '관리자'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문제는 '안철수연구소' 뿐만 아니라, 어느 회사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떤 기업이든,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 자부심을 갖고, 가족을 회사로 불러 구경을 시켜.. 2011. 12. 9.
2001년-회사 6월 초의 사무실 책상 위. 무미건조한 사물들의 집합이지만, 이곳에서 7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고,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조직에서 어떤 사람은 나를 싫어했고, 어떤 사람은 나를 좋게 보았지만, 나 역시 그릇이 크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도, 상당히 자유로운 조직의 성격 덕분에, 있는 동안에는 즐거운 직장생활을 했다. 2011. 12. 6.
2000년-워크샵 8월 말에 팀 워크샵을 다녀오다. 용인 에버랜드와 설악산 켄싱턴 호텔에서 워크샵과 팀 빌딩 과정을 했다. 회사 직원을 반씩 나누어 번갈아가면서 워크샵을 했고, 팀워크를 향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과연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진 것은 맞다. 회사에서 워크샵을 하는 건, 직원들에게 잠시 긴장의 시간을 풀어주고, 한숨 쉬어가는 '쉼표'를 만들어 준다는 뜻이겠다. 회사로서는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지 직원에 대한 '투자'의 성격이 강한데, 그런 만큼, 워크샵의 내용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는지 궁금하다. 2011. 11. 28.
2000년-안철수연구소 사진을 보니 역삼동에 있을 때이다. 해마다 연초에는 직원 모두가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2000년에는 직원이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개발자들이었고, 마케팅과 영업 쪽은 소수였다. 하나의 회사였지만, 개발 파트와 비개발 파트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서, 마케팅, 영업, 관리 쪽은 보통의 회사와 비슷한 분위기였지만, 개발 쪽 분위기는 낮과 밤, 일과 휴식의 경계가 거의 없었다. 지금도 저 사진 속 인물들의 대부분은 그대로 재직하고 있는 걸로 알지만, 또한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거나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사람의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2011. 11. 24.
2000년-직원들과 낚시 1999년 12월 말에 Y2K 문제로 긴장을 하다-안철수 소장님은 당연히 문제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언론의 호들갑때문에-별 일 없이 지나가고 팀원 모두 나들이를 다녀왔다. 당시 내가 있던 팀은 기존에 개발을 계속해 왔던 V3 시리즈가 아닌, 완전히 다른 보안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팀이었다. 이 팀에서는 '앤디'라는 제품을 출시까지 했지만, 그 제품과 팀은 나중에 해체되어 사라졌다. 가장 중요한 건 제품의 품질 때문이었지만, 그 이면에 다른 이야기도 좀 있다. 우리는 사이 좋고, 즐겁게 회사 생활을 했지만, 제품의 결과가 썩 좋지 못하다는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팀은 해체되고 함께 했던 동료들 몇이 퇴사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사회에서 자주 만날 기회는 없었다. 이렇게 즐거운 한 때를 보낸 시간으로.. 2011. 11. 24.
1999년-돐잔치 1999년 7월에 안철수연구소에 입사했다. 우리는 똥이가 태어나고 운이 틔었다고 생각했다. 당시 안철수연구소는 지금보다는 '인간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원도 적었지만, 그만큼 가족적인 분위기였고, 온정적 면이 있었다. 안철수 대표를 안 것은 훨씬 전이었지만, 내가 안철수연구소에서 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개발자도 아니었고, 컴퓨터는 어느 정도 했지만 이렇다할 경력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철수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었던 건 좋은 기회였고, 몇 년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돌잔치는 무역센터 건물에 있는 '바이킹뷔페'에서 했는데, 마침 회사하고 가까워서 안철수 대표와 직원들이 모두 참석해서 축하해주었다. 아들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영광이었다. 안철수연구소에서 일하던 기억은 즐겁고 행복했.. 2011.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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