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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보통사람

by 똥이아빠 2017.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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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통사람

영화로 보는 이 시기-1987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촌스럽고 먼 옛날처럼 보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안기부 차장은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는 어떤 늙은이를 떠올린다. 권력을 가진 자가 소시오패스일 때, 한 나라가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영화 속 배경의 시기에 나는 20대 후반으로 접어들고 있었고, 구로공단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84년 10월에 징병의무를 마치고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다 공장에 들어갔는데,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이 무렵에 내 친구는 주안에 있는 한 공장에서 일을 하며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조위원장이 되었다. 나는 집에 있던 책 가운데 약 500권 정도를 그 친구의 노동조합 사무실에 가져다 주었고, 노동운동이 활화산처럼 폭발할 거라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실제로 1987-1988 대투쟁 시기에 노동조합은 하루에도 수백 개씩 생겼고, 특히 '넥타이 부대'라고 해서 전두환 정권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한 '호헌철폐' 투쟁-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에서 사무직 노동자들은 큰몫을 했다.
나의 노동조합 결성 작업은 실패했지만, 명동과 을지로, 서울역 등에서 최루탄을 마시며 가투(가두투쟁)를 벌이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두꺼운 방어복을 입은 전경(전투경찰)들과 대치하면서 물러서거나 진격할 때 우리는 20대의 피끓는 기운으로 늘 앞에서 돌과 화염병을 던졌다.
전두환 일당은 광주민중을 학살한 학살주범이자 군부쿠데타를 일으킨 반역자들이어서 우리는 결코 용서할 수 없었고, 전두환 일당과 타협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 영화에서 학생과 시민의 가두투쟁과 전경들의 최루탄 발사 장면은 보이지 않지만, 감옥에서 사람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장면은 등장한다. 고문은 일상이었으며, 고문으로 죽은 학생들도 많았지만 살인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시민들의 저항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전두환은 장기집권에 대한 설계를 접고 자기 친구인 노태우에게 권력을 넘기려는 수작을 부렸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라고 했던 노태우 정권이었다. 80년대는 60년대의 연속이었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것이 1961년이었고, 나는 쿠데타와 함께 태어난 세대에 속한다.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고, 전두환이 다시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노태우가 편하게 대통령을 해먹고, 드디어 김영삼이 '문민정부'를 선언할 때까지 무려 30여년이 군사독재 정권이었다.
그리고 최근 박근혜가 탄핵당하고 감옥에 갇힌 것까지, 박정희의 긴 그림자는 무려 56년의 세월 동안 한국을 뒤덮고 있었다. 친일매국노, 군사쿠데타, 폭력, 탄압, 사대주의, 부정부패, 음모와 암살, 부정한 재산의 축적 등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악한 짓들을 벌린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박근혜까지 한국사회는 더러운 권력을 쥔 자들의 범죄로 얼룩져 있다.
그런 사회에서도 시민들은 조금씩 달라졌고, 민주주의는 힘겹게 뿌리를 내려왔다. 시민의식이 성장하고, 인권과 개인의 권리를 확장하는 과정이 몹시 더디고 힘겨웠지만, 그래도 한발짝씩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고, 흔들리는 촛불을 들고 어둠을 밝혀왔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더러운 권력을 용납해서는 안 되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썩은 권력을 몰아내는 촛불시민의 힘을 스스로 발견했고, 우리는 성큼 한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과거에 살았던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다. 권력에 의해 살해당한 수많은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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