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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일본영화

[영화] 두더지

by 똥이아빠 2017.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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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더지

소노 시온 감독 작품. 여타의 소노 시온 영화보다는 덜 잔혹하지만 한 사람의 삶을 끝까지 밀어부치고 막장의 인간상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극단적 성향을 보이는 그의 영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일본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목되는 몇 가지 현상들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우리에게도 흥미롭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는 2011년인데, 이 해에 일본은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사건에 휘말리는데, '동일본지진' 또는 3.11사태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자연재해다. 일본은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나라여서 어지간한 지진에는 둔감하지만 '동일본대지진'은 그동안 겪었던 지진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한 지진으로 일본 동부지역을 완전히 파괴했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와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은 일본 동부지역 뿐 아니라 수도인 도쿄 지역 전체에 방사능오염을 일으켰다. 이런 일본의 상황이 이 영화에서는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작은 저수지 옆에 살면서 보트를 빌려주는 집에는 부모와 한 소년(스미다)이 살고 있는데, 아버지라는 자는 일찌감치 양아치로 살아왔던 인간쓰레기다. 그는 아내와 아이를 폭행하고 야쿠자에게 사채를 빌려 도박을 하는 인간이다. 돌이켜보면 그도 그의 부모 모두 또는 하나가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을 것이고, 성장 과정과 환경이 형편없었을 것이다. 더러운 환경에서 구더기가 자라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스미다의 아버지가 개차반 인간이라면 어머니는 그런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다른 남자를 만나 집을 떠난다. 아들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살았던 삶이 너무 지긋지긋하고 남편이라는 악마에게서 당하고 살아가기가 끔찍해서 아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스미다 역시 그런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보트 가게 주변에는 지진으로 난민이 된 사람들이 모여들어 함께 사는데, 그들은 지진으로 모두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이들 역시 지진 트라우마를 겪고 있지만 어울려 살아가기 때문에 슬픔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견뎌나가고 있다. 중학생인 주인공 스미다는 학교에 다녀야 할 이유도 없고, 자신의 삶에 희망적인 미래가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아직 십대 소년이지만 그는 이미 늙은 노인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런 스미다를 옆에서 지켜보며 좋아하는 같은 반 차자와는 스미다와는 다르게 부잣집 딸이었다. 하지만 스미다나 차자와 모두 부모에게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처지가 '버려진 아이'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미다의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스미다가 죽기를 바란다. 보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차자와의 엄마도 딸인 차자와가 자살하도록 집안에 자살도구를 만든다. '아이 살해'는 고대로부터 주로 종교적 제의로 발생했는데, 기독교에서 신에게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 아이들은 부모의 학대와 노골적인 살해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하고, 폭력적인 가정과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야쿠자에게 돈을 빌려간 건 아버지지만 돈을 갚으라고 폭력을 휘두르는 야쿠자에 맞서는 건 아들 스미다다. 결국 스미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거듭 태어난다. 
3.11 사태와 함께 이 영화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는 것은 이른바 '묻지마 살인'이다. 스미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살도, 자수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저녁이면 쇼핑백에 칼을 넣고 시내를 활보하는 모습은 '묻지마 살인'을 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스미다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은 '생물학적 아버지'와 '사회적 아버지' 모두에 해당한다. 즉 인류의 모든 자식 세대는 아버지를 살해함으로써 성장하는 것이다. 인간쓰레기인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는 비난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스미다의 입장에서는 필연이다. 쓰레기는 누군가 치워야 하고, 누군가의 손은 더러워지게 되어 있다. 불우한 환경에서도 바르게 살아가려는 스미다가 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존재론적 한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그는 불행한 삶의 상황에 놓여 있고, 그 자리에서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 그가 인간이 아닌, 두더지로 살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보다 차라리 두더지가 더 살아가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스미다가 자살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는 것과 차자와가 옆에 있기 때문이다. 스미다나 차자와나 그들이 각각 혼자였다면 그들은 모두 비극적 상황에 놓였을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갈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는 고통스럽지만 비극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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