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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일본영화

[영화] 아주 긴 변명

by 똥이아빠 2017.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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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주 긴 변명

사람이 변한다, 바뀐다, 달라진다는 말을 듣는 건 퍽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서른 살 쯤 되면 그 이후에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외모는 바뀌고, 삶의 형태도 바뀔 수 있지만 '사람'은 바뀌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이건 경험에 근거한다. 사람이 바뀌려면 크게 두 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는 외부의 충격이고 하나는 내부의 충격이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면 더욱 빠르게 변화가 생길 것은 분명하다.
사치오는 작가로 성공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감도 없고, 자괴감에 시달리는 인물로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초반에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나중에 그 이유가 밝혀진다. 출판사와의 미팅에서 출판사 직원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사치오가 아주 잠깐 반짝 유명했지만 지금의 상황은 좋은 작품도 쓰지 못하고, 기존의 작품도 수준이 낮은 별 볼일 없는 작가라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렇기에 사치오는 자신의 아내-20년을 살아 온 나츠코-를 그리 사랑하지 않는 듯 보인다. 나츠코는 대학 때 만났지만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먹고 살기 위해 학교를 그만 두고 미용사가 된다. 시간이 흐르고, 사치오가 작가가 되기 위해 고생할 무렵 우연히 미용실에 들렀다 나츠코를 만난다. 두 사람은 결혼하고 나츠코는 사치오가 작가가 될 수 있도록 온힘을 다해 돕는다. 그 덕으로 사치오는 유명 작가가 된다.
일단 유명작가가 된 이후에는 아내말고 다른 여자를 만나며 불륜을 저지른다. 그러면서도 죄책감도 갖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나츠코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없는 이유는 알려지지 않지만 부부의 틈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사치오에게 있음을 관객은 느낀다.

그러다 나츠코가 친구와 온천으로 놀러가다 버스 사고로 죽는다. 유명 작가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은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되고, 사치오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한다. 아내가 죽었는데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는 남자라면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치오라는 인물은 그런 인물이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며 비열한 인간. 그리고 그런 인간이 아내의 죽음 이후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보여준다.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도 사고로 죽고, 그의 남편과 두 아이가 남는데, 아내의 친구 남편은 장거리 트럭운전을 하는 사람이어서 두 아이-초등학생과 여섯 살의 어린이-를 돌볼 여력이 없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사치오는 자신이 두 아이를 어느 정도 돌봐주겠노라고 먼저 제안한다. 아이가 없던 사치오는 두 아이를 보는 과정에서 아내와의 결혼 생활을 떠올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에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겠지만, 아내의 죽음이 그리 슬프지도 않았던 사치오는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아내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아내의 친구 남편의 태도를 보면서 돌이켜 본다. 친구 남편은 아내를 잃은 슬픔에 복받쳐 자기의 삶이 망가질 정도로 슬프고 괴로워 하고 있었고, 그것이 오히려 두 아이를 방기할 정도로 생활을 지배하게 되자, 냉정한 사치오의 태도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진심으로 슬퍼하고 괴로워 하는 친구 남편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 경멸스럽기만 하다. 슬프고 괴로운 일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니고, 괴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사치오는 자신이 아내가 죽는 순간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죄의식이 더해져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스스로도 몰랐던 것이다.

사치오는 방송국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죽은 아내보다 살아 있는 자신이 더 괴롭고 슬프다는 것을 아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말한다. 사실이 그렇다. 죽은 사람은 과정이야 어떻든 죽은 것이고, 살아 있는 사람이 그 모든 감정을 떠안고 있으니 슬프고 괴로운 것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인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런 솔직한 사치오의 토로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한 예우를 위해 슬픔을 포장하거나 과장한다. 그런 점에서 사치오의 태도는 '반사회적'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그가 아무도 보지 않는 기차에서 진심으로 흘리는 눈물이 그의 진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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