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 윌 비 블러드
데어 윌 비 블러드 10년 전,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어제 다시 보면서, 처음 보는 영화처럼 낯설었고, 세부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150분 넘는 긴 영화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주인공인 대니얼 플레인뷰를 연기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모든 장면에서 분위기를 압도했다. 거의 모든 영화는 한 번 보고 다시 볼 마음이 들지 않거나,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지만, 소수의 영화는 두 번 이상 보게 되거나, 볼 수밖에 없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도 한 번 봐서는 작품의 진가를 느끼기 어렵다. 이건 영화를 보고, 느끼고, 읽는 게 서툰 나 같은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이번에 다시 보면서, 처음 봤을 때 몰랐던, 보이지 않던, 느끼지 못했던 ..
2022. 6. 6.
캐시 트럭
캐시 트럭 가이 리치 감독 작품인 걸 알고 봤어도 믿기 어려운 영화. 가이 리치 특유의 빠르고 복잡한 플롯은 보이지 않고, 누가 만들어도 비슷한 평범한 영화다. 그럴 것이, 이 영화는 2004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를 리메이크한 영화로, 시나리오를 가이 리치가 쓰지 않은 것이 핵심이다. 가이 리치 영화의 특징은 빠르고 현란한 편집, 복잡한 시나리오, 수 많은 등장인물, 등장인물의 복잡한 동선과 관련성, 복선과 반전의 탁월함, 심각한 폭력 상황에서 나오는 유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가이 리치의 이런 특징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어쩌면 그걸 의도한 연출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기 없는, 진지하고 심각한 하드보일드 분위기다. 단순한 서사를 지루하지 않게 만든건 편집의 힘이다..
2022. 6. 3.
만화로 보는 좌파의 역사
만화로 보는 좌파의 역사 이미 오래 전부터 '좌파'는 상품성이 없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좌파' 따위에 관심이나 가질까. 한국에서는 80년대 후반을 절정으로 좌파는 사라지고, 약간의 학생운동과 약간의 노동운동, 약간의 '진보적' 정당만이 자신을 '좌파'라고 주장하거나, 수구 집단에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레토릭으로 '좌파'를 써먹을 뿐이다. '좌파'는 한국에서 '빨갱이', '공산당', '친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추종자', '노동조합', '노동운동'의 대명사로 쓰이며, 수구 집단의 공격 무기로 전지전능한 흉기로 작동하고 있다. 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 체제에서 민주주의 운동을 할 때도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NL, PD 같은 그룹으로 나뉘어 사상투쟁을 벌였다. 그래서 좌파는 분열로 망하고, 우파는..
2022. 3. 11.
사이드 이펙트
사이드 이펙트 스티븐 소더버그 작품. 네번 째 보다. 가끔, 마음이 답답할 때, 기분을 좀 바꾸고 싶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을 때, 시원하고 통쾌한 결말을 즐기고 싶을 때면 이 영화가 떠오른다. 화려하고 통쾌한 액션도 아니고, 거대한 스케일의 전쟁 영화도 아닌, 평범한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일 뿐인데, 그래서 오히려 감정이 쉽게 전이되고, 마치 내게 벌어진 일처럼 실감한다. [복수는 나의 것]의 결말처럼 허무하지도 않고, [친절한 금자씨]처럼 잔혹함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해피엔드]의 서민기처럼, 정신과 의사 뱅크스는 자신에게 닥치 상황을 냉정하게 돌아보기 시작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작은 창문이 많은 단조로운 빌딩으로 다가간다. 음악은 어둡고 우울하다. 카메라..
2022. 1. 6.
돈 룩 업(Don,t look up)
돈 룩 업(Don,t look up) 인류가 맞닥뜨린 어쩔 수 없는 절멸 상황을 다룬 영화는 여러 편이다. 특히 우주에서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다가오면서, 충돌하기까지 지구에 사는 인류의 대응을 담은 내용은 액션, 공포, 코미디 등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거대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가설은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개연성 높은 이론이며, 낮은 확률이긴 해도 혜성이 실제 지구와 충돌하면, 지구가 상당 부분 파괴되거나 거의 대부분의 생물종이 멸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인류의 멸종을 두고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있다. 내부적으로는 인류가 초래한 심각한 환경문제와 핵전쟁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혜성 충돌이다. 어느 쪽이 더 빠르게 다가올 지는 알 수 없지만, 두 가지 변수가 없..
2021. 12. 26.
파고 Fargo
파고 Fargo 코엔 형제 작품. 코엔 형제의 작품들은 한 번도 안 볼 수는 있지만, 한 번만 보게 되지 않는다. 잘 만든, 재미있는 영화의 특징이 그렇듯,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면 볼수록 새로운 장면,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가 '명작', '명화', '걸작'이라고 말하는 영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영화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 작품의 알레고리를 한 번만 보고는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 영화를 여러 번 볼수록 새롭게 해석할 가능성이 많은 작품이 그런 경우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요소는 훌륭한 작품에 모두 들어 있기 마련이다. 코엔 형제의 작품은 '명작', '걸작'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서, 시간을 두고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이상 다시 보게 된다. 데뷔작인 '블러드 ..
2021. 9. 26.
다시, 미나리
다시, 미나리 '미나리'를 두 번 봤다. 처음 볼 때보다 감동이 더 크다. 처음에는 줄거리, 서사의 의미, 인물들의 관계와 생각, 풍경, 음악 등이 눈에 들어왔다면, 두 번째는 그 모든 요소들 가운데서 특히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은 세계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꼽힌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이 영화는 지루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난해하고 느린 영화지만, 한국에서는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는데, 이 난해한 영화를 본 관객이 10만 명이 넘었다는 것이 외국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으니, 한국 관객의 수준이 꽤 높다는 걸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희생'에서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 안드레이는 자기의 집을 불태운다. 그가 자기의 집에 불을 지르는 ..
2021.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