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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1214

파고 Fargo 파고 Fargo 코엔 형제 작품. 코엔 형제의 작품들은 한 번도 안 볼 수는 있지만, 한 번만 보게 되지 않는다. 잘 만든, 재미있는 영화의 특징이 그렇듯,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면 볼수록 새로운 장면,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가 '명작', '명화', '걸작'이라고 말하는 영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영화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 작품의 알레고리를 한 번만 보고는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 영화를 여러 번 볼수록 새롭게 해석할 가능성이 많은 작품이 그런 경우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요소는 훌륭한 작품에 모두 들어 있기 마련이다. 코엔 형제의 작품은 '명작', '걸작'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서, 시간을 두고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이상 다시 보게 된다. 데뷔작인 '블러드 .. 2021. 9. 26.
시리어스 맨 시리어스 맨 코엔 형제 작품.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설파했던 것은 지혜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은, 멀리서 바라보는 산과 자연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숲으로 들어가면 온갖 벌레와 동물들이 우글대는 위험한 곳이라는 말과도 같다. 즉, 미시적으로 접근할수록 보이는 것이 많아지고, 복잡해지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어느 정도 굴곡은 있을 지라도, 대체로 무난한 삶을 살았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제3자가 보기에 드라마틱하고 우여곡절이 심한 삶이란 어떤 경우에서도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작품의 인트로는 아주 짧은 우화를 보여준다.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받아들여라'는 .. 2021. 9. 25.
안티 크라이스트 안티 크라이스트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작품.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작품들은 서사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서사에 내재되어 있는 알레고리를 해석하는 것이 그의 작품을 보는 이유인데, 그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 서사보다는 알레고리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1) 아기의 죽음, 2) 에덴의 숲, 3) 아내가 연구하던 주제인 중세의 마녀, 4) 남편을 폭행하는 아내, 5) 사슴, 여우, 까마귀의 등장, 6) 클리토리스, 7) 아내를 살해하는 남편, 8) 산딸기 같은 키워드로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논란이 되는 장면은 아내가 스스로 자기의 클리토리스를 가위로 자르는 장면이다. 이 작품에서 부부의 정사 장면이 많은 것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는데, 인트로에서 눈이 내리는 바깥 풍.. 2021. 9. 24.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영화가 시작되고 절반 가까이 지나서야 야첵이 살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야첵과 택시운전수 레콥스키가 만날 때까지, 그리고 야첵을 변호하는 변호사 포트르가 그의 첫번째 수임 사건이자, 자신과 인과 관계가 있다고 믿게 된 상황까지, 세 명의 개인이 우연의 인과를 거쳐 만나게 된다. 야첵이 택시운전수 레콥스키를 살해하기까지의 과정은 방황과 우울로 표현할 수 있다. 그는 가방에 끈과 몽둥이를 준비하고 있다. 즉, 누군가를 살해하겠다는 '의지'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뫼르소가 '우연히' 해수욕장에서 아랍인과 만나 시비가 붙게 되고, 칼날에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자 가지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상황과 연결된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2021. 9. 22.
마카엘 하네케 - 하얀리본 마카엘 하네케 - 하얀리본 의사가 탄 말이 줄에 걸려 넘어지고, 의사는 쇄골이 부러져 큰 병원으로 후송된다. 쓰러진 말도 일어나지 못해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영화는 나레이터인 학교 선생의 시각을 따라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준다. 20세기 초, 독일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유럽의 정세에 관해 잘 모르고 있지만, 유럽은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불안한 상황이다. 이 작은 마을을 운영하는 건 '남작'이고, 그는 마을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을 직간접으로 고용하거나 부리고 있다. 남작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마을에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소작농 펜더의 아내가 제재소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펜더 부부에게는 여덟 명의 자식이 있는데, 20대 청년부터 네.. 2021. 9. 22.
데쓰 프루프 데쓰 프루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B급 정서가 화려하게 폭발한 영화.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과 함께 동시에 두 편의 영화를 만든다. 그들이 어려서 봤던, 극장에서 동시상영을 할 때 보던 바로 그 영화. 저예산으로 만들었고 화려하지만 어설픈 액션이 폭발하는 B급 영화.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플래닛 테러'를 만들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데쓰 프루프'를 만든다. 저예산으로 만들고, 형식은 세련하지 않지만, 과거 B급 영화가 보여주었던 흥이 폭발하는 정서를 담아보자는 것이 그들의 의도였다. 과거 B급 영화는 저예산으로 만들어 조악한 품질과 폭력, 섹스가 난무하면서 마초적이고 남성우월주의, 가부장 질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B급 영화의 정서와 형식을 그대로 가.. 2021. 9. 20.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가이 리치의 데뷰작. 이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광고업계에서 광고를 만드는 감독으로 이미 명성을 날리고, 돈도 많이 벌어서 그의 이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1998년, 이 영화로 데뷔하면서, 가이 리치 스타일을 관객에게 확실하게 각인하는 작품이 되었다. 가이 리치 영화의 특징은 매우 복잡하게 뒤얽힌 스토리라인, 끊임없이 쏟아지는 수다, 화려한 액션과 독특한 슬로우모션, 최소한 두 번 이상의 복선과 반전 등이며 연출이 깔끔하다. 데뷔작을 이렇게 잘, 훌륭하게 만들었다는 건, 이미 내공이 상당하다는 증거이며, 이 작품 이후 그의 여러 영화들 가운데 더러 처지는 작품이 있긴 하지만, 대중성으로는 흥행이 보장된 감독이기도 하다. 이 영화 제목 'Lock, Stock An.. 2021. 8. 21.
재키 브라운 재키 브라운 Jackie Brown 영화는 한 여성의 옆모습을 롱테이크로 보여준다. 인물이 움직이지 않고, 배경이 움직이도록 하면서 인물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관객은 그의 옆모습만 보게 되는 이 장면은 관객이 주인공을 강렬하게 인식하는 시간이다. '재키' 역을 맡은 팸 그리어는 '미스 콜로라도'로 선출된 공인된 미인이었으며, 70년대 헐리우드에서 여러 영화에 출연해 흑인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한때 잘 나가던 배우였지만 그뒤로는 인기가 시들해졌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팸 그리어의 연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녀가 자기 영화에 출연할 수 있을 만한 시나리오를 썼다. 이 작품 '재키 브라운'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창작이 아닌, 엘모어 레너드의 원작 소설 '럼 펀치'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 2021. 8. 20.
세이빙 미스터 우 세이빙 미스터 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2004년 영화배우 오약보가 납치범에게 납치된다. 오약보는 이 영화 '세이빙 미스터 우'에서 형사 조강 역으로 출연하기도 하는데, 자신의 납치 사건을 다룬 영화에 주인공이 아닌, 범인을 쫓는 형사로 등장한 것이다. 영화는 시간을 앞뒤로 복잡하게 배치하면서, 납치범과 인질, 경찰 사이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려 한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핸드헬드 카메라는 계속 흔들리며 인물을 따라가고, 상황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해 날짜와 시간을 화면에 보여준다. 즉, 사건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과 짧은 시간에 범인을 체포하기까지 경찰의 긴박하면서도 현명한 대응을 실감하게 되는 영화다. 영화는 사건이 발생한 시간 순서를 복잡하게 뒤섞어서 관객이 편하게 관람.. 2021. 8. 17.
모가디슈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작품.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모티프만 가져왔을 뿐, 창작이나 다름 없는 영화다. 이전에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로 '베를린'이 있었으니 이 작품은 남북관계를 다룬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다. '한국형 액션'을 만들어낸 류승완 감독의 작품은 데뷔작부터 '모가디슈'까지 류승완 스타일은 핵심을 유지하면서 보다 세련해지고,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기존의 류승완 작품들과 비교해서도 몇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그 특징을 중심으로 영화를 살펴보자. 기시감, 낯익은 장면들 영화는 아프리카 소말리아가 배경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마음이 울컥할 때가 있었다. 소말리아 민중이 독재 정권에 맞서 시위할 때, 몽둥이를 든 경찰과 군인들이 소말리아 시민을 마.. 2021. 8. 14.
구타유발자들 구타유발자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블랙코미디로만 생각했고, 리뷰 쓸 생각을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서도 이 영화는 인상 깊게 남아 있었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였다. 마침 넷플릭스에 있어서 천천히 생각하며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흥행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작품으로는 상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bloody aria'다. 한글 제목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데, 오히려 영화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각본을 쓰고 연출한 원신연 감독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일상에서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 지극히 평범한 공간, 가장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블랙코미디와.. 2021. 8. 12.
세 자매 세 자매 훌륭한 작품. 저마다 기구한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여기 세 자매의 삶도 만만찮다. 세 자매는 서로 사뭇 다른 삶을 살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감정은 '억울함'이다. 그것도 가벼운 억울함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이들 세 자매의 영혼 깊은 곳에 꾹꾹 눌리며 쌓인 트라우마가 이들의 삶을 서서히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의 시공간은 이들 세 자매가 눌려 있던 트라우마를 폭발하는 과정을 핍진하게 그리고 있다. 절제된 대사와 행동이 인물들 사이의 긴장을 증폭하고 관객에게 뜻밖의 공포를 느끼게 한다. 그 공포는 비틀린 시간이 만든 것으로, 그 시간을 견뎌온 세 자매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그 시공간을 통과하면서 기형적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자기 모습을 마.. 2021. 7. 15.
소리도 없이 소리도 없이 태인은 말을 하지 못(안)한다. 창복은 다리를 전다. 두 사람은 달걀 장사를 하면서 부업을 하는데,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다. 조폭들이 납치해 고문, 살해한 사람을 산에 암매장하는 일을 하면서 약간의 돈을 받는다. 트럭에 달걀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고, 조폭이 일을 맡기면 그때마다 부업을 하는 루틴을 철저하게 지키는 두 사람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산다. 창복은 교회에도 열심으로 다니는데, 태인에게도 찬송가와 설교 테이프를 열심히 들으라고 말한다. 창복은 다리를 저는 장애 때문이기도 하고, 어쩌면 태인처럼 처음부터 고아였을 수도 있다. 가족도 없고,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창복은 중늙은이가 될 때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어린 태인을 만나게 되는데, 태인을 데려와 .. 2021. 5. 19.
그리고 내일은 온 세상이 그리고 내일은 온 세상이 모처럼 독일 현대영화. 독일영화는 뉴 저먼시네마 시기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다양한 독일영화를 보기 어렵다. 오래 전, '프리츠 랑'의 작품 'M'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지금도 '세계영화 100'에 반드시 꼽히는 영화들이 독일영화에는 여러 편 있다. 빔 벤더스의 작품 '파리, 텍사스'는 세 번쯤 봤는데, 처음 볼 때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받았다. 아무래도 젊었을 때, 영화언어를 잘 모르고 봤을 때와 시간이 흘러 나 역시 조금은 배운 게 있어서 영화를 다르게 본 영향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 영화는 현대 독일의 사회 상황을 그리고 있다. 독일은 현대사에서 알 수 있듯, 1차,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다. 두 번의 세계 전쟁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 2021. 5. 9.
힐빌리의 노래 힐빌리의 노래 성공한 사업가의 불우한 과거 이야기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 영화의 원저인 회고록의 성공이 영화를 만든 것이고, 영화는 다시 책의 흥행에 도움을 주며, 이는 주인공의 존재를 돋보이게 만든다. J.D 밴스는 예일대 법대에 다니는 재원이다. 그는 지금 인생에서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대형 로펌에서 면접을 봐야 하고, 장학금으로 부족해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 면접 시간도 빠듯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J.D 밴스의 상황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다. 엄마는 약물중독으로 입원해야 하는데, 고집을 부리고, 가난한 누나는 밴스에게 의지한다. 백인 하층민의 가족인 밴스의 가족은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대를 이어 가난하게 살아간다. 가난.. 2021. 5. 6.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PD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은 찬실은 새로운 영화 제작을 앞두고 감독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난감한 신세가 된다. 수입이 끊기자 산동네 단칸방으로 이사하고, 친하게 지내는 여배우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기도 한다. 여배우의 집으로 찾아오는 영어 과외 선생 김영을 만나면서 찬실은 그에게 이성의 끌림을 느끼지만, 김영은 찬실을 누나로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할머니 혼자 산다는 집에는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장국영이 있고, 그는 찬실이 눈에만 보이는 귀신인데, 엄청 착한 귀신이다. 왜 찬실의 눈에만 보이는 장국영 귀신이 나타날까. 장국영은 찬실에게 마음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전부 버리고,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한다. 찬실은 그동안 영화를 만드는 일에 자신을 내던지고 살아왔.. 2021. 5. 5.
젠틀맨 젠틀맨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 신선한 연출과 감각적인 시나리오에 반했다. 그의 데뷔작인 '락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후속작 '스내치'를 보면서, '놀라운 감독'의 출현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가이 리치의 작품들은 기복이 심해졌고,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재능이 빛을 잃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초기 작품의 빛나는 연출을 보기 어려웠고, 그는 자기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작품들만 만들고 있었다. 가이 리치 영화의 특징은 복잡한 시나리오와 화려한 연출에 있는데, 초기작을 제외하고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영화가 드물다. 물론 '셜록 홈즈'로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다시 스타 감독으로 인정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작품에서 최고로 꼽을 수.. 2021. 5. 1.
낙원의 밤 낙원의 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방법 '너 혼자 있기 싫다며'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특별한 상황에 놓인 경우, 그 죽음의 의미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죽음'은 모두 시한부 삶으로 나타난다. 태구의 누나도 태구가 '이식'을 해주고 싶지만, 아버지가 다른 남매라서 가능하지 않았고, 그마져도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는다. 태구가 제주도에서 만난 재연도 시한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수술해도 살 수 있는 확률이 10%에 불과한 불치병을 앓고 있는 재연은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지금의 삶에 미련이 없다. 태구 역시 누나와 조카를 죽인 북성파 도회장을 살해하고 조직 두목인 양사장의 지시로 제주도로 몸을 숨기면서, 자신의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한다. 줄거리.. 2021. 4. 10.
고잉 인 스타일 고잉 인 스타일 세 명의 노인이 은행을 턴다는 이야기로, 코미디 영화다. 가볍게 볼 수 있고, 해피엔딩이어서 보는 내내 즐겁고 마음이 편하지만, 이 영화는 겉으로 드러난 코미디 서사의 이면에 무시무시한 미국 사회의 공포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조, 윌리, 앨 세 노인은 오랜 친구다. 이들은 철강공장에서 40년을 노동자로 함께 일하며 우정을 쌓았고, 퇴직한 지금도 이웃에 살며 날마다 만나서 어울린다. 이들은 가족이 없거나(앨), 멀리 떨어져 있거나(윌리) 이혼한 딸과 손녀를 돌보며 살아야 하는(조) 노인이다. 사건의 발단은 조의 집과 관련한 모기지 대출 이자의 급등이다. 저금리 대출이자의 만기가 끝나자 곧바로 고금리 대출이자 상품으로 연동되면서 조의 모기지 대출 이자가 몇 배로 뛰자 조는 졸지에 앉아서 집.. 2021. 3. 20.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로만 폴란스키 감독 작품. 폴란드 유대인 슈필만의 생존기를 다룬 영화이면서 독일군이 유대인을 얼마나 잔인하게 학살했는가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 있던 유대인의 수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혹독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들 가운데 수십만 명이 독일군이 운영하는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사건 또한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지금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일본의 이익을 위해 거짓 논문을 써내는 램지어 같은 인간과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유대인 학살 문제는 매우 신중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역사적 사건으로, 비유대인 유럽인들은 독일의 만행에 대한 공분과 함께 비유대인으로서의 도의적 책임감을 느끼는 태도를 보인다. 즉, 자기들(독일인이 아닌 비유대.. 2021. 3. 15.
에린 브로코비치 에린 브로코비치 몇 번을 본 영화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주인공인 에린 브로코비치의 삶과 개인적 매력을 발견하는 데 집중하다가 차츰 주변의 인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에린은 '미스 위치타' 출신으로 큰 키에 날씬한 몸매의 미인이다. 그는 자신의 미모를 돋보이는 방법을 알고 있어서, 몸매가 잘 드러나는 옷을 입고 다닌다. 애기를 돌봐야 하는 젊은 엄마로서 힘들지만 꿋꿋하게 일자리를 찾고, 자기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줄 아는 자의식 강하고 똑똑한 여성이다. 그와 살던 남자는 떠났는데, 떠난 이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가난한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살기에는 환경과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고, 더 이상 추락할 수 없을 정도로 밑바닥 삶을 살고 있었다. 그때 교통사고를 당하.. 2021. 3. 14.
다시, 미나리 다시, 미나리 '미나리'를 두 번 봤다. 처음 볼 때보다 감동이 더 크다. 처음에는 줄거리, 서사의 의미, 인물들의 관계와 생각, 풍경, 음악 등이 눈에 들어왔다면, 두 번째는 그 모든 요소들 가운데서 특히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은 세계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꼽힌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이 영화는 지루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난해하고 느린 영화지만, 한국에서는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는데, 이 난해한 영화를 본 관객이 10만 명이 넘었다는 것이 외국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으니, 한국 관객의 수준이 꽤 높다는 걸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희생'에서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 안드레이는 자기의 집을 불태운다. 그가 자기의 집에 불을 지르는 .. 2021. 3. 14.
미나리 미나리 미국 영화계는 왜 '미나리'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걸까. '미나리'는 이미 수십 개의 영화상을 받았고,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다. '미나리 현상'은 미국 영화계는 물론, 한국에서 미국의 한인 이민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잘 드러낸다. 말하자면, 낯익은 서사를 신선한 영화언어로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 있는 영화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젊은 부부는 병아리 감별사 자격증을 갖고 미국으로 이민 온다.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가족은 중남부에 있는 아칸소주로 이주한다. 남편 제이콥이 이끈 땅은 비옥하고, 땅값이 싼 곳이어서 넓은 땅을 매입할 수 있었다. 아내 모니카는 이주가 달갑지 않지만, 아들 데이빗의 건강을 위해 동의한다. 캘리포니아의 대도시.. 2021. 3. 12.
죄 많은 소녀 죄 많은 소녀 충격적인 영화다. 주제, 배우의 연기, 감독의 연출 모두 예사롭지 않을 뿐 아니라 탁월하다. 저예산 독립영화의 작품 수준이 이 정도라면, 한국영화는 가능성과 희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해도 좋겠다. 여자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한 여학생의 자살 사건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살해하는가'에 관한 핍진한 관찰 기록이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관객의 심리를 건드린다. 그것은 배우들의 연기 뿐 아니라 음악, 음향, 인물들이 놓여 있는 극단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도록 한다. 경민이 실종되고, 담임 선생과 형사들은 전날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를 불러 경민의 실종에 관해 묻는다. 학교에 오지 않은 경민의 부재.. 2021. 3. 7.
위로공단 위로공단 한국에서 노동자의 삶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예술 작품은 1990년대 이후로 찾아보기 어렵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독재정권이 폭력을 휘두르던 시기와 노동운동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의 노동자는 1960년대 이후 박정희 독재정권이 만든 '산업화' 전략의 결과물이다. 그 전까지 농업국이던 한국이 경공업 제조를 시작으로 '수출입국'을 국가의 경제전략으로 채택한 이후, 독재정부와 자본가는 값싼 노동력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이 절실해졌다. 독재국가가 주도하는 경제 정책은 구체적으로 개인의 삶에 직접 타격을 가한다. 박정권은 농민의 삶에 기본이 되는 쌀값을 '저곡가 정책'으로 유지하면서, 농촌의 청년들이 도시와 공업단지의 노동자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든다. '저곡가 정.. 2021. 2. 20.
뉴스 오브 더 월드 뉴스 오브 더 월드 남북 전쟁이 끝나고 5년이 지난 1870년, 키드 대위는 텍사스주 일대를 돌아다니며 마을 주민들에게 돈을 받고 신문을 읽어주는 일을 한다. 키드 대위는 남군 출신이어서 전쟁에 진 남부를 통제하고 있는 북군의 검문에 공손하게 대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군의 총에 맞아 죽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북군은 점령군으로 남부에 진출했고, 전쟁에 참여했다 패한 남부의 여러 주를 '미합중국'의 연방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남부의 인민들은 북부가 주도하는 연방제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키드 대위가 남부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신문을 읽어주며 돈을 벌 수 있었던 건, 당시 인민 대부분이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신문을 매번 사 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 2021. 2. 20.
언니 언니 주제도, 내용도 훌륭한데 시나리오와 연출이 아쉽다. 이 정도 내용이라면 정통 액션 스릴러로 충분하겠다. 이시영의 액션도 좋고, 여성 주인공이 악한 짓을 저지른 남성들을 응징하는 내용이라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작품 '데쓰프루프'의 여성 주인공들이 벌이는 멋진 활약이나 '킬 빌'에서 우마 서먼이 보여주는 뛰어난 액션 등을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인데, 어중간한 액션으로 끝난 것이 퍽 아쉽다. 인애는 무술로 단련된 경호원이다.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 은혜는 발달장애인이지만 일반 고등학교에 다닌다. 은혜는 학교에서 일진 양아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성매매 도구로 그들의 돈벌이에 쓰였으며, 동네에서 가게를 하는 중년의 남성들에게 성폭행당한뒤 인신매매 조직에 팔린다. 납치 당한 동생을 찾는 인애는 최초의.. 2021. 2. 5.
발칸 라인 발칸라인 전쟁 액션 영화로만 볼 수 없는 영화. 이 영화는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시각으로 만든 영화라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뜻이다. 어느 쪽으로 편향되었어도 충분히 정의롭고 올바른 시각인 경우도 많다. 우리의 경우, 독립운동을 하면서 일본놈들을 처단하는 내용은 그 자체로 옳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있다면 매국노들이겠지. 독립군이 일본군이나 정치가를 암살하고, 사살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올바르고, 민족의 양심에 따라 당연한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장면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없는 멍청이일 뿐이다. 즉,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자는 한국인의 피를 가졌어도 민족반역자인 것이다. 이.. 2021. 1. 31.
매들린 매캔 실종사건 매들린 매캔 실종사건 2007년 4월 말, 영국의 의사 부부가 세 아이를 데리고 포르투갈로 여행을 떠난다. 휴양지 프라이아 다 루스에 도착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부부는 어느 날, 아이들을 재우고 숙소 근처의 야외 식당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다, 큰딸 매들린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부부는 곧바로 함께 있던 친구들과 경찰에 이 사실을 알리고, 호텔에 숙박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아이를 찾아나선다. 포르투갈의 오션 클럽은 영국인들의 여름 휴가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영국 휴양객이 많았고, 안전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잠을 자던 세 살 아이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은 지역 언론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고, 이 사건은 보통의 경우보다 훨씬 크고, 강력한 사건으로 세계 언론이 관심을 갖게 된다. 포르투갈 경찰은 매들린 실.. 2021. 1. 29.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심각한 사회 문제를 코믹하고 유쾌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에린 브로코비치'와 비슷하다. 영화는 학벌, 여성, 성차별, 유리천정, 성평등, 기업범죄, 환경오염, 기업의 사회적 책임, 내부자 고발, 여성들의 우정 등 매우 많은 요소를 버무려 만들었다. 현재의 기준으로 이런 영화가 나올 수는 없으니까 - 그랬다가는 여성운동, 페미니스트들의 강력한 펀치를 맞게 될 것이 뻔하므로 - 영리하게 시간을 1990년대 중반으로 돌렸다. 한국의 한 재벌기업인 삼전기업에서 일하는 자영, 보람, 유나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 회사에 취직했다. 첫 장면부터 학력이 낮은 여성이 회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보여준다. 직급이 높은 남성 노동자를 위해 커피를 타는 여성 노동자들은 특히 그들만 유니폼을 입었다. .. 2021.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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