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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계15

[1952-10] 목차 우리의 원시민주제와 그 변천---------이병도 가족과 윤리------------------------김두헌 실천철학서론-----------------------김기석 유교와 경제------------------------배성룡 좌담회 : 사상운동의 회고와 전망 독립정신과 사대사상----------------이선근 실존과 철학------------------------박상현 20세기의 문예사조------------------조 향 내가 본 공산주의-------------------아더 캐슬러 장편소설 '페스트'------------------알베르 카뮈 2011. 11. 3.
[1952-09] 앙드레 지드-그가 본 공산주의 [1952-09] 앙드레 지드-그가 본 공산주의 이 글을 쓴 에니드 스타키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리스어 학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가 영국의 지배에 있을 당시 아일랜드 교육위원이었다. 에니드는 더블린의 알렉센드라 대학과 옥스포드의 소머빌 대학을 다녔고,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도 교육을 받았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여 옥스포드의 최우등상, 파리 대학의 학위, 옥스포드의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문학에 대한 공적으로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저작으로는 랭보, 보들레르 기타 프랑스 작가 연구가 있고 그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 한림원상을 받았다. 1952년 현재 옥스포드 대학의 프랑스문학 강사 및 옥스포드, 소머빌 대학의 평의원이다. 앙드레 지드와 관련해서 위키백과의 링크를 참조하시길. h.. 2011. 11. 3.
[1952-09] 현대 미술의 형성과 동향 - 김병기 이 글을 쓴 김병기는 화가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2011년 현재 94살로, 미국에 살고 계셨다. ------------------------------------------------------ 한국 서양미술 1세대 마지막 산 증인 입력일자: 2011-05-04 (수) 94세에 신작전 준비 김병기 화백 “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옛날 얘기를 해달라고 하는데 난 오늘의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 ‘히어 앤 나우’(Here and Now)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등잔 밑이 어두워요. 중요한 사람은 바로 우리 곁에 있거든” “나도 중요한 사람이에요. 94세가 되도록 그림만 생각한 사람이니 그것만 해도 대단하지 않은가요?” “회고전을 열자고들 하는데 관심 없어요. 나는 회고전이 아니라 신작전을 .. 2011. 11. 3.
[1952-09] 20세기 문예사조 - 조향 이 글을 쓴 '조 향'은 당시 동아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다음과 같은 정보들이 있었다. 시인 조향은 1917년 경남 사천군 곤양면에서 태어나 진주고보를 나와 대구사범 강습과를 거쳐 일본대학 예술학원에서 수학했다. 1940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첫날 밤'이 입선되어 문단에 발을 디뎠다. 그는 일찍 동아대 국문과 교수와 문과대학장을 역임했으나 말년은 쓸쓸했다. 문단 쪽에서 그를 반기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해 서울로 온 뒤 그의 초현실주의 시학에 동조하는 모임이 있던 강릉 해변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67세, 1984년의 봄이었다. 문학과 일상의 행위가 모순되는 일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비록 그의 죽음은 릴케 같은 아름다운 모순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문학은 문학대로 평가해야 .. 2011. 11. 3.
[1952-09] 결혼과 이혼에 관한 연구 이 글을 쓴 엄효섭은 당시 서울사대와 연세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엄효섭에 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봤으나 '엄효섭'을 검색하면 탤런트와 프로게이머 이름만 나온다. 엄효섭 교수에 관한 자료가 있는 분의 도움을 바란다. 1952년에 '결혼과 이혼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랄만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에서 정리된 내용을 살펴보자. 가정의 사회적 기능은 1)자녀를 기르는 데 있다.즉, 후손을 남기는 것에 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2) 사회 습관, 생활의 기술, 신앙 등을 전달계승하는데 있다고 한다. 결혼, 장례 등의 풍속, 음식, 요리 방법, 가옥 건축 방법, 가정의 신앙 등은 중요한 사회적 기능의 하나라고 했다. 3) 성적 행위의 조절도 가정의 중요한 기.. 2011. 11. 3.
[1952-09] 주체성과 전환기의 윤리사상 - 김석목 이 글을 쓴 김석목은 서울대 사대 교수로 오래 재직한 분이다. 위키백과에는 아직 등재되지 않았는데, 인터넷을 검색하면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경동교회는 일종의 특수교회라는 인상을 주는 교회였다. 김재준 목사님의 설교는 강의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고들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 목사님은 주일설교 외에 특수강의 형식의 집회를 추진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신학자, 역사학자, 윤리학자 등을 소개하는 모임들은 그 교회 교인들뿐 아니라 많은 외부인사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이런 스타일의 목회는 당회원들을 비롯한 교인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회원은 김능근, 김석목, 박세훈, .. 2011. 11. 3.
[1952-09] 한민족의 경제사상 - 배성룡 한민족의 경제사상 -동양식 정체성과 빈락경제관 이 글을 쓴 배성룡은 경제학자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등록되어 있는 배성룡에 관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裵成龍 1896 경북 성주~1964. 사회주의 운동가, 경제평론가. 8·15해방 후에는 중도파로서 좌우익의 편향노선을 비판했다. 본관은 성산(星山). 필명은 수성(秀星)·성산학인(星山學人)·성산생(星山生)·성산인(星山人)·별뫼. 아버지는 운홍(運鴻)이며, 어머니는 유윤이(柳允伊)이다. 1917년 결혼을 전후해 일본의 니혼대학에 유학해 1923년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사하고 1924년 11월 화요회(火曜會)에 가입했다. 가입 후 사회주의 운동에 관련된 여러 편의 논저를 발표해 김경재(金璟載)와 함께 화요파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 2011. 11. 3.
[1952-09] 중국정치사로 본 천(하늘)의 의의 - 김상기 필자 김상기는 서울대 문리대학교 학장일 때 이 글을 썼다. 최근 '데일리 전북'에 실린 기사를 발견했다. ----------------------------------------------------------------------- 정통사학의 개척자 김상기(金庠基) 2009년 11월 07일 (토) 19:03:13 데일리전북 dailyjeonbuk.com 시대 : 현대 출생지 : 전북 김제시 백산면 출생일 : 1901년 11월 사망일 : 1977년 호 : 동빈(東濱) 정보제공 : 김제시 문화관광과 063-540-3172 소개 한국 근세 정통사학의 개척자요 태두로 일컬어지는 동빈(東濱) 김상기(金庠基). 그는 가장 한국적인 선비로서, 우리나라 역사학 연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특히 사학을 전공하는 후학.. 2011. 11. 3.
[1952-09] 종교와 철학 - 김재준 김재준 목사님에 관해서는 위키백과를 참조하시길. http://ko.wikipedia.org/wiki/%EA%B9%80%EC%9E%AC%EC%A4%80_(%EB%AA%A9%ED%9A%8C%EC%9E%90) 기독교(개신교)에서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분이 퍽 드문데, 김재준, 문익환, 함석헌 선생님 등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내용을 읽어보면,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이 인간역사 안에 찾아와 그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는 운동인 것이다. 창세기의 소박한 표징적인 계시에서 벌써 우리는 그런 것을 발견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중에 인간을 지으셨다. 그리고 그는 '대단히 좋다'고 긍정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하신 '인간'에게 '자연'을 맡겼다. 그리하여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가 되.. 2011. 11. 3.
[1952-09] 역사와 철학 - 김기석 이 글을 쓴 김기석은 당시 서울사범대학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김정문 알로에 회장의 회고문에 보면, YMCA 등에서 공개 강연회를 할 때, 여러 유명한 연사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이때 김기석도 강사의 한 사람으로 강연을 했던 것으로 보아, 당시 사회 활동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 '역사와 철학'은 지금 읽어도 훌륭한 내용이다. 앞부분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역사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활동 및 그 경과에 대한 탐구요 서술이다. 인간 아닌 자연에 대해서도 그 자신의 역사가 탐구 또 서술 될 수 있는 것이니 천체사, 지구사, 동식물사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역사가 인간적-윤리적인 세계의 역사로 서술되어 온 것은 그것이 의연히 고대의 인간중심의 세계관에 의하여 이끌리고 있는 때문일 것.. 2011. 11. 3.
[1952-09] 신라의 협동정신과 통일의 지도이념 - 이병도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이병도의 논문으로, 이미 발표된 [국사상에 나타난 우리의 지도이념]의 일부를 발췌 보충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병도에 관해서는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9D%B4%EB%B3%91%EB%8F%84 를 참조하면 좋겠다. 논문의 일부를 읽어보면, 반도 동남방에 편재하여 외적 교섭이 적던 신라는, 그 자연적 환경이 씨족사회의 발전을 가장 주주하게 하여 원만한 발전을 수하여온 나라이지만, 그만큼 씨족적 단결이 강고하고, 따라 상호협력의 공동체적 정신이 강렬하였다. 신라의 화랑도와 같은 특수조직의 협동단체도 이러한 자연적 사회적 환경에서 발생하였던 것이다. 신라의 귀족사회와 평민사회와의 사이에 교량적 관계를 가진 것도, 즉 이 화랑도란 특수조직의 .. 2011. 11. 3.
[1952-09] 축사 - 백낙준 당시 백낙준은 문교부 장관이었다. 그의 재임은 1950년부터 1952년 10월 29일까지였으므로, 문교부 장관을 그만둘 때까지는 불과 두 달쯤을 남겨두고 축사를 쓴 것이다. 축사의 마지막 부분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압축해 놓은 것이어서 그 부분만 읽어본다. (4) 사상 문제의 중요성은 장황한 논의를 요할 바 아니며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사상 계몽과 지도에 나서는 자 없음을 항상 개탄하였던 바 이제 사상사가 창립됨을 볼 때 우리의 동지 있음을 알게되어 기뻐마지 않습니다. 더욱이 사상사에서는 월간지 '사상'을 발간한다고 하니 만시지탄을 금하지 못하는 바이나, 이런 동지들이 이런 간행물을 내게 됨에 나는 만공의 사의와 축하를 드리는 바입니다. 바라건대 '사상'지는 우리 민족의 활로를 제시.. 2011. 11. 3.
[1952-09] 창간사 - 이교승 창간사를 쓴 이교승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다. 위키백과에 보면, 이교승(李敎承, 1899년 ~ 별세)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다. 교원양성소를 졸업하고 조선(朝鮮)ㆍ위천(渭川)ㆍ교동(喬桐)공립보통학교장 등 20년간 초등교육에 종사하였다. 경기도지방주사, 사회주사, 김포면장 등 10년간 농촌진흥운동에 투신하였다. 창간사를 쓴 사람이 위의 인물인가는 분명치 않다. 다만, 그가 제2대 국회의원이었고, 1950년에서 1954년까지 국회의원 직에 있던 상황이어서 문교부에서 창간하는 월간지에 창간사를 써 줄 수 있는 개연성은 매우 높다. 이교승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교육자로 활동했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이교승은 '사상'의 편집발행인 겸 인쇄인으로 되어 있다. '사상'이 문교부 산하 기관의 기관지였고,.. 2011. 11. 3.
[1952-09] '사상' 창간호 목차 월간 '사상계'는 1952년 9월에 처음 나온 월간 '사상'에서 시작한다. 월간 '사상'은 당시 이승만 정권의 문교부 장관이었던 백낙준의 영향이 매우 컸다. 백낙준은 1950년 5월부터 1952년 10월 말까지 문교부 장관을 지냈는데, 이때 장준하와 인연을맺게 된다. 백낙준이나 장준하나 고향이 평북이고 기독교 집안이어서 동향이라는 친분도 있었지만 장준하 역시 1950년부터 문교부에 근무하고 있어서 문교부 기관지인 '사상'의 창간을 주도할 수 있었다. 백낙준은 일제강점기에 친일을 한 경력이 뚜렷이 드러나고 있는 '친일파'지만, 장준하는 학도병으로 군대 끌려간 다음, 중국에서 탈출해 광복군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또한 해방 후에 김구 선생님의 비서실장으로도 일하는 등 한국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2011. 11. 3.
사상계 영인본을 구입하다 오래 찾고 기다리다 마침내 사상계 영인본을 구입했다. 우선 1차 영인본으로 창간호부터 1957년까지 24권으로 묶였다. 예전에는 몰랐던, 한국 지성사를 새로 배우는 마음으로 읽는다. 세로쓰기 조판, 본문의 70%가 넘는 한문, 조악한 활판 인쇄지만 장준하 선생님의 땀과 눈물이 배인 잡지이다. 시대는 변했어도, 지성의 정신은 변하지 않았고, 참담한 세월 속에서 올곧은 선비의 정신은 더욱 빛을 발한다. 기쁜 마음으로 사상계의 숲에 발을 디딘다. 2011.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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