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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2012년

2012년-성북동을 걷다-2/2

by 똥이아빠 2012.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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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립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상허 이태준 가옥이다.


수연산방. 이태준 작품을 거의 다 가지고 있어서, 특히 관심이 많은 곳이었다.
그가 이곳에 꽤 많은 작품을 썼고, 오늘날에도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상허 이태준 가옥 안내판. 상허 이태준이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았던 곳이고 많은 작품을 쓴 곳이어서 한국 문학계에서는 보물로 여겨야 할 듯.


현관을 들어서면 보이는 비.


지금은 이 가옥이 찻집으로 바뀐 듯 하다. 집은 넓지 않으나 아기자기하고, 아늑하다.


수연산방 현판.


근대에 만든 편액. 이는 오랜 전통에 따라 만든 것으로 화려하진 않지만 건물을 기념하며 이름 있는 사람들이 시나 글을 짓고, 그 문장을 나무에 파서 건물 곳곳에 걸어 놓는다. 오래 된 조선 건물에 가면 이런 판들이 많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영세가.


문향루.


이렇게 앞으로 나와 있는 공간이 '문향루'이다. 조선 한옥에는 이런 '루' 또는 '누각'이 많았는데, 이곳은 주로 남성의 공간으로 사랑방, 서재, 공부방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성북동과 작가들의 인연을 적은 글.


구인회 공간.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인데, '구인회'라고 붙인 것은 상허 이태준과 그의 동무들이 '구인회'를 만들어 활동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구인회 동무들인  이종명, 김유영, 이효석, 이무영, 유치진, 조용만, 이태준, 김기림, 정지용 등을 말하고, 나중에 회원 구성이 바뀌어  이종명, 김유영, 이효석이 탈퇴하고 박태원, 이상, 박팔양이 입회한다. 1935년을 전후하여 유치진, 조용만이 탈퇴하게 되지만, 김유정, 김환태가 가입함으로써 구인회라는 명목에 걸맞게 9명의 회원수를 유지한다.(위키백과)


사철나무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태준 가옥을 나와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을 찾다 설렁탕집에 왔다. 근처에 음식점이 많았지만, 설렁탕 한 가지만 하는 이 집을 찾은 것은 퍽 잘 한 선택이었다.


점심을 먹고 가까운 곳에 있는 심우장을 찾았다. 만해 한용운이 거처했던 집. 생각보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는 불편하고 작은 집이었다. 만해 선생이 청렴하게 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심우장'의 '심우' 즉 '소를 찾는다'는 뜻은 불교에서 도를 찾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심우장 현판.


심우장은 작은 집이다. 부엌까지 해봐야 세 칸. 가히 청렴한 선비가 살만한 집이다.


심우장에서 발견한 고목.


심우장 건물. 이곳에서 만해 선생이 기거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만해 선생의 글씨를 나무에 새긴 작품. 만해 선생의 시 가운데 한 구절. 마작절위 : 조롱나무 손질하다 갈대처럼 죽어가네


만해 선생의 필체는 독특하고 아름답다.


내려 오는 길에 최순우 옛집에 다시 들렀다. 음식냄새는 여전히 역겨웠다.


터진 ㅁ자 집인데, ㄱ자와 ㄴ자를 위 아래로 그린 집이라고 보면 되겠다.
건물은 크지 않으나, 정갈하고 단아하다.


편액. '매심사' 매화의 마음과 같은 집이라는 뜻이겠다.


두문즉시심산, 문을 나서면 곧 깊은 산골이라는 뜻이 아닐까.


뒷마당 정원. 아늑하다.


우계당.


앞 뒤로 문이 트여 있어 여름에는 시원하겠다.


돌담.


마당과 우물. 
성북동을 걸으면서 느낀 것은, 옛날 집들이 그리 크지 않았던 것, 그러면서도 한옥이 아름답고, 감나무가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집을 짓게 되면 한옥으로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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