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집짓기를 말하다_004_땅 매입과 건축설계

by 똥이아빠 2022. 11. 20.
728x90

집짓기를 말하다_004_땅 매입과 건축설계

 

우리가 처음 땅을 보러 왔던 곳은 정배리였는데, 그 뒤로 서종면의 여러 곳에 있는 땅을 보러 다녔다.

나는 10년쯤 전에 처음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결혼하면서 아내와 함께 아파트를 샀지만 땅을 사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하는 일이었다. 물론 시골로 이주하는 것도, 집을 짓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우리는 가능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사기를 당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겠지만, 부동산 문제는 늘 골치아프고 속을 썩이기 마련이라고 주위 사람들이 충고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땅의 위치는 아이가 학교를 걸어다닐 수 있고, 어머니가 마을 노인들과 어울릴 수 있는 정도로, 마을에서 너무 동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마을에 학교가 있어야 하고, 기존의 마을이 있는 언저리여야 했다.

서종면에는 초등학교가 모두 세 군데 있었는데, 면소재지에 서종초등학교, 수입리 쪽에 있는 수입초등학교 그리고 서종초등학교의 분교인 정배분교가 있었다. 부동산에서 보여주는 땅은 대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우연하지만 신기한 인연이 또 하나 있었다. 그무렵 인터넷의 커뮤니티 가운데 진공관 동호회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곳에서 어떤 분이 시골에 집을 짓는 이야기를 올리고 있었다.

내게도 곧 닥칠 일이어서 관심을 갖고 읽어보았는데, 글을 올리는 분이 정배리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올린 분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우리가 정배리에 갔던 어느 날, 불쑥 그 댁을 찾아갔다. 그야말로 무대뽀였다.

그 글을 쓰던 분과는 선배님으로 부르며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인연이란 우연과 필연이 만나면서 생기는 것이 분명하다. 선배님은 이미 우리가 산 땅이 어떤 땅인지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우리땅 바로 위쪽에서 몇 년을 사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금의 집을 지어서 이사하셨는데, 우리가 땅을 산 곳은 정배2리, 선배님이 사는 곳은 정배1리였다. 지금 집을 지은 땅을 살 때까지도 신기한 일은 계속 일어났다. 우리는 정배리 이장을 알게 되었는데, 중간에 잠시 그만 두었다가 현재도 이장을 하고 있다.

이장이 나와 동갑이었다. 그러니 시골 이장으로는 비교적 젊은 나이였다. 마을의 토박이고 이 마을이 고령 박씨의 집성촌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부동산에서 보여 준 여러 부지 가운데서 정배학교 뒤쪽에 있는 땅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나마 우리가 봤던 땅 가운데 가장 괜찮은 땅이었다. 봄비가 나리던 주말,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마을을 둘러보고 오겠다고 했다.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을을 둘러보면서 마지막으로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우리는 이장을 만났고, 이장에게 지금 막 땅을 계약하기 직전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이장이 마을에 땅이 있는데 구경이나 하라고 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처음 보았다.

 

다른 많은 땅을 보러 다닐 때는 한 번만 보고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땅은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우리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이 땅은 아직 부동산에도 매물로 나오지 않았고, 땅주인이 이장에게만 말을 해 둔 상태였다.

우리는 부동산중개소에서 소개한 땅과 이 땅을 비교하면서 하루를 보냈고, 마침내 이장이 보여 준 땅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시골 마을에서 이장은 막강한 권력과 함께 그만한 이권도 갖는 자리다. 이장은 주민들이 선출하지만 면사무소와 농협에서도 활동비를 받는다. 즉, 마을, 면, 농협에서 각각 활동비를 받는 것이다.

이장은 마을을 대표해서 일을 하고 있지만, 마을 개발사업이나 건물 신축, 마을 지원사업 등에 관한 정보를 가장 먼저 알게 되고, 외지에서 땅을 구하러 들어오는 사람과 긴밀하게 연락을 하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도 땅을 팔 때는 부동산에도 내놓지만 이장에게도 소개를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이장은 부동산과 관련하여 소개비도 받고, 싸게 나온 땅을 직접 매입해서 외지 사람에게 비싸게 팔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이권을 행사하게 된다. 시골에서 이장을 하면 도시의 월급장이 못지 않은 수입을 올릴 수도 있고, 재산을 축적할 수도 있다. 

 

시골의 모든 이장이 그렇지는 않지만,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서 온갖 이권을 챙기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장이 되기 위해 마을 주민끼리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기도 하고, 마을에서 패를 갈라 반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가 땅을 산 정배리는 비교적 온건한 분위기였고, 이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으며, 대단히 큰 이권이 돌아오는 자리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든 이장의 소개로 우리는 땅을 구입했고, 이장에게 얼마간의 수수료를 지불했다.

시간이 지나고, 마을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우리가 산 땅은 마을에서도 노른자위에 속하는 곳이었다. 외지에서 들어오는 사람은 마을 안쪽의 땅을 구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마을에서 조금 벗어난 한적한 곳에 집을 짓게 마련인데, 우리는 오히려 마을 안으로 들어와 집을 짓는 최초의 외지인이 되었다.

이제, 땅을 구하려는 사람을 위한 몇 가지 도움말을 할까 한다. 시골에 내려와 집을 짓고 살기 위해서는 땅을 구해야 하는데, 어떤 땅을 골라야 하는가는 저마다 기준도 다르고, 생각하는 바도 다르므로 무엇이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하다. 우리는 그런 사실도 훨씬 나중에야 알았는데, 여러 가지로 우리의 처지가 운이 좋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 마을 내부나 외곽에 축사가 있는지 확인하라

* 마을에서 마시는 상수도는 어떤 것을 쓰고 있는지 확인하라

* 마을 하수도는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는지 확인하라

* 마을에 공장이나 공해를 유발하는 시설이 있는지 확인하라

* 마을 근처에 송전탑이 지나가고 있는지 확인하라

* 마을 앞쪽에 개울이 흐르고 있는지 확인하라

* 개울 상류에 오염원이 있는지 확인하라

* 마을 외곽에 펜션, 캠핑장 등이 생활을 방해할 정도가 되는지 확인하라

 

각각의 항목에 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마을마다 환경과 조건이 모두 다르므로 무엇이 좋다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우리 마을은 저런 항목들에서 비교적 자유롭거나 피해를 덜 입는 상황이어서 상당히 만족스럽다.

땅을 구할 때, 땅의 형질에 따라 집을 곧바로 지을 수 있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 땅은 대지, 전, 답, 임야 등으로 구분되는데, 땅이 놓여 있는 위치에 따라 '절대 농지'나 '관리지역'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어떻든 집을 짓기 위해서는 형질이 '대지'로 되어 있어야 한다. 전, 답, 임야 등을 '대지'로 만들 수 있는데,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땅값은 '대지'가 가장 비싸고, 전, 답, 임야 등으로 값이 싸지는데, 우리처럼 처음부터 '대지'를 사지 않고, 전, 답, 임야 등을 구한 다음, 집 지을 땅 일부만 '대지'로 형질 변경하는 방법도 있다.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이 모두 있지만 적어도 최악의 선택을 피할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단점

* 마을 주민들과 너무 가까운 곳에 살게 되어 프라이버시를 유지하기 어렵다.

* 마을 행사, 경조사, 부역 등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 마을 주민들과 사귀지 않으면 어색한 관계가 된다.

 

장점

* 마을에 적응하면 빠르게 주민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 마을의 크고 작은 일, 경조사 등에 참석하면 호감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 마을의 기존 기반시설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이미 수 백년 전에 형성된 시골 마을은 그 지역에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따라서 오래된 마을은 대개 남향이며, 산자락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지형은 오늘날에도 집을 짓고 살려는 사람에게 매우 유용한 지리적 조건이다. 시골에 살아 본 적이 없거나, 일부 몰지각한 건축업자들은 '요즘 건축기술이 발달해서 향(남향, 북향, 서향, 동향 등 방향)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건축기술이 발달해도, 해결할 수 없는 환경적, 지정학적 조건들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일부러 남향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남향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남향은 집을 짓는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지금은 시골에 내려와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는 것에 대해 글을 쓰고 있지만, 처음 시골에 내려왔을 때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남향집이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고, 위에 적은 모든 내용들은 살면서 경험으로 터득한 내용들이다.

 

마침내 '우리땅'이 생겼다. '우리땅'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확실하게 보이자, 집짓기는 탄력을 받았다.

이미 시골로 내려와 집을 짓겠다는 생각을 한 다음부터, 우리는 인터넷에서 우리가 원하는 주택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의 취향은 다행이 비슷해서 주택 디자인을 두고 다툴 일은 없었다.

다양한 형태의 단독주택이 있다. 목조주택, 통나무주택, 벽돌주택, 황토벽돌주택, ALC블록주택, 경량철골주택, 콘크리트주택 등 어떤 재료를 써서 만들었는가에 따라서도 주택의 모양은 다르지만, 재료보다 더 우리에게 중요한 건 '디자인'이었다.

 

어떤 재료를 쓰느냐와 주택 디자인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전형적인 뾰족지붕 형태의 집은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모양의 집을 원하는가를 알기 위해 인터넷에서 검색한 다양한 형태의 주택 가운데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 디자인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방식으로 선택 범위를 좁혀 나갔다.

 

목조주택은 가장 끝까지 남은 후보였지만, 통나무주택이나 벽돌주택 등은 일찌감치 배제되었다. 당시 알려지기 시작한 스틸하우스(경량철골주택)도 강력한 후보였지만 역시 마지막에 배제되었다.

벽돌주택은 꽤 매력이 있었지만, 너무 흔한 재료이고, 한국에는 벽돌로 지은 건물 가운데 훌륭한 디자인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 감점 요인이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노출콘크리트' 주택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노출콘크리트로 표현된 '단순함'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부부)는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이 같았다.

단순하면서 깔끔하고, '모던'한 디자인의 주택을 원하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주택 디자인에 관해 공부를 하다보니 지금과 같은 모던한 디자인의 주택은 이미 1950년대 미국에서 대단히 유행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보다 앞서서는 독일의 '바우하우스' 양식이 현대 건축은 물론 예술분야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데, 192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한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건축에서도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이 일본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특히 노출콘크리트의 경우는 전적으로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한국건축가들은 고백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노출콘크리트로 대표되는 모던한 건축 디자인은 안도 다다오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의 유명 건축가의 흉내를 내고 있다고 밖에는 보기 어렵다.

 

우리는 '모던한 주택'으로 짓기로 결정하고, 한국의 건축가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건축 역사와 경향, 건축가의 계열에 관해 약간의 상식을 얻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축 디자인을 확인한 다음에는 그런 건물을 디자인하는 건축가를 찾기만 하면 되었다. 개인주택을 지으면서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는 일은 여전히 드문 경우에 속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야 '건축가'에게 의뢰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우리처럼 평범한 월급쟁이 소시민이 '건축가'를 찾는 것은 누가 봐도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의 건축가 그룹은 1세대, 2세대, 3세대 등으로 구분하는데,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건축가들이 주로 3세대와 4세대를 형성하고, 한국에서 토박이로 건축을 공부한-물론 외국에서도 공부를 했지만-나이 든 건축가들이 주로 2세대와 3세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2세대에 속하는, 나이가 조금 있는 건축가를 주목했다. 그가 설계한 단독주택 디자인을 보면서, 우리가 원하는 디자인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건축가가 요구하는 설계비가 꽤 높다는 말을 들어서, 건축 설계를 의뢰해도 설계비 때문에 거부당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 일단 부닥쳐보자는 마음으로 건축사무소에 전화를 했고, 만날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10년 전에는 단독주택의 설계를 건축가에게 맡긴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생각은 우리가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기를 퍽 잘했다는 것이다. 차라리 건축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마을에도 집이 많이 들어서고 있는데, 이 가운데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긴 주택은 거의 없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설계도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설계사무소'에서 그린 것으로, 건축가가 설계한 것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그렇다고 내가 건축가를 마냥 존경하거나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10년 전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의 건축가들 가운데 많은 숫자는 그들의 실력이나 '건축가'라는 사회적 레벨이 부풀려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건축가 수준이 세상의 통념보다는 낮다고 생각하지만, '건축가'라는 직업이나 사회적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훌륭한 건축가 한 명이 건축을 통해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건축가라도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돈을 많이 가진 자의 의도에 맞는 건축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공공건축' 분야를 강화하고, 개인의 건축이라도 사회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개인주택이라고 해서 자기가 짓고 싶은대로 짓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건축가들이 마련한 일정한 기준에 따라 심사를 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이미 유럽에서는 그런 건축 기준을 바탕으로 마을과 도시를 디자인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건축가를 만나기 전에, 우리가 짓고 싶은 집이 어떤 집인지 메모했다. 그리고 건축가에게 그 메모를 보여주었다.

 

설계에 반영하기를 원하는 내용

- 현재 밭의 높이는 옆 도로보다 낮으므로 땅 높이를 높인다.(약 30센티미터 정도)

- 현재도 평지이므로 경사도는 약 3도 정도로 아주 완만하게 정리한다.

- 집의 위치는 위쪽에 자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설계안을 두 가지로 한다. 1층일 경우(50평), 2층일 경우(1층 40평, 2층 10평)

- 2층일 경우, 2층 방은 화장실 포함 10평 크기, 2층 데크도 약 10평 정도

- 2층일 경우, 계단 밑 공간을 수납장과 책장으로 활용한다.

- 대지 173평, 건물은 남향으로

- 건물의 개념은, ‘단순한 선과 면, 소박한 외관과 구조’

- 심야전기보일러 또는 심야전기온돌, 심야전기온수기, 심야전기에어컨

- 전면으로 데크를 설치한다.(건물과 어울리는 넓이로 가능한 넓게)

- 거실 위주의 생활이 될 것 같기에, 거실을 가능한 넓게 한다.

- 거실에 홈씨어터(100인치 스크린, 오디오 세트)를 설치한다.

- 책 2,000권, DVD 300장, 비디오테이프 400개 등의 수납 공간 필요

- 수납 공간을 최대한 많이 만든다.

- 모든 방에는 붙박이장을 설치한다.

- 모든 문(현관, 중문, 방문, 화장실 등)은 미닫이문으로 한다.

- 모든 문은 원목으로 한다.

- 부부 침실은 붙박이장, 침대만 들어갈 정도로 짓는다.

- 부부 침실에 붙은 화장실(욕조 제외)과 작은 파우더룸을 만든다.

- 드레스룸을 만든다.

- 조명은 모두 매입형으로(할로겐 조명)

- 전기용품의 사용이 많으므로 전기는 충분히 공급할 것

- 전기 콘센트와 네트워크 연결은 각 방마다 충분히

- 모든 방바닥, 거실은 원목마루

- 어머니 방은 넉넉하게, 붙박이장, 텔레비전, 전화

- 똥이 방도 넉넉하게, 붙박이장, 책상, 수납장, 

- 똥이 침대(침대를 2층 높이로 하고 아래쪽 공간을 책상이나 수납장으로 활용)

- 손님 방에도 붙박이장과 화장실(욕조 없음) 포함 약 10평 정도

- 화장실 변기에는 비데를 설치한다.

- 거실에 있는 화장실에는 월풀 욕조를 설치한다.

- 욕조의 윗면이 욕실 바닥보다 약간 높게 한다. 즉, 욕조를 파묻는 형태.

- 세면기, 변기, 욕조는 모두 흰색으로 한다.

- 화장실 바닥에도 난방을 할 수 있으면 좋다.

- 현관은 이중문으로 한다. 현관문-공간-중간문

- 현관의 공간에는 신발장과 우산 등을 넣을 수 있는 붙박이장을 설치한다.

- 현관이 앞문, 주방 옆에 다용도실을 만들어 뒷문을 만든다.

- 창호는 시스템 창호를 사용한다.(모든 창호에 모기장 필수)

- 주택 옆으로 주차장 겸 작업장을 만든다.

- 주차장은 차 2대가 들어가고 주차장에서 곧바로 데크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한다.

- 잡다한 물건을 넣을 수 있는 창고가 필요하다.

- 보일러실이 따로 필요할 수도 있다.

- 다용도실에는 세탁기, 김치냉장고 등이 들어간다.

- 주방은 넓게 한다. 북향이 아닌, 남향으로, 거실을 보면서 부엌일을 할 수 있게 한다.

- 주방은 가능한 편한 동선으로.

- 주방 가구는 빌트인 시스템으로

- 주방 수납장도 넉넉하게

- 울타리는 아주 낮게

- 대지의 경계를 표시하는 작은 울타리를 두른다.

- 마당 한쪽에는 똥이 놀이집(1.5평 정도)과 그네, 철봉을 만든다.

- 2층일 경우, 거실은 위를 터서 2층 높이가 되도록 한다.

- 단층이라도 거실의 천정 높이는 높게 한다.

- 밖의 데크는 땅 표면과 거의 같게 한다.

- 열려 있는 느낌의 집으로 만들고 싶다

- 마을 사람, 아이들이 늘 함께 할 수 있는 집(야외 영화상영, 수다놀이터 등)

- 뒤란에 툇마루(비오는 날 처마 끝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청승 떨 수 있는 공간, 툇마루 아래 공간의 어둠+신비감+공포)

- 열려 있으면서 구석구석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공간의 구성(아이들이 숨박꼭질 하기 좋은 집)

- 2층 데크의 뒤쪽으로 원목 벤치 설치(부부의 은밀한 대화, 싸우고 난 후의 열기 식히는 공간 등 다목적)

- 똥이 침대)침대를 2층 높이로 둘이 들어가도 충분한 넓이로 하고 아래쪽 공간을 책상이나 수납장으로 활용)

- 마당 한쪽에는 똥이 놀이집(1.5평 정도, 높이도 낮게, 아이들의 시선으로, 충분한 아이디어 요망)과 그네, 철봉, 미끄럼틀을 만든다.

- 집의 이름은 [똥이네]로 할 것입니다.

- 현판은 6살 아들이 삐뚤삐뚤 쓴 글씨를 걸 생각입니다.

- 마당에도 전기시설 충분하게...

- 가로등과 벌레 쫓는 기구 합쳐서 설치 요망

 

지금 다시 보니 퍽 낭만적인 내용들이다. 실제 집짓기에서는 위의 내용에서 많은 것들이 생략되었다. 건축주가 처음 집을 짓다보니 이상적인 요구를 하게 되는데, 현실의 집짓기는 이상적인 내용대로 짓기가 어렵다. 집을 다시 짓는다면, 위의 내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건축주가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메모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말로만 설명하는 것과, 건축가에게 메모 또는 스케치를 보여주는 것은 사뭇 다르므로 가능한 구체적인 요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건축가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그냥 지어주는대로 사는 것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건축주가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는 경우, 건축가는 자신만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든 장단점은 있고, 호불호가 있다. 건축주의 성향이나 건축가의 개성에 따라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결정되므로 처음부터 건축주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진행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건축가는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설계비도 깎아주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첫번째 설계도가 나왔다. 아래는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든 모형이다.

 

첫번째 설계도와 모형은 우리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실제 공사비용 견적을 내보니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웠다. 디자인은 좋았지만 건축비 때문에 첫번째 설계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가 처음에 50평 정도의 주택을 원했음에도 첫 번째 설계는 거의 두 배 가까이 넓은 면적이 나왔다. 건축가가 우리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우리가 요구한 모든 내용을 모두 반영하려 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넓은 평수의 집을 설계했을 수 있다. 

현재의 건축법으로는 실제 평수 60평이 넘으면 신고가 아니라 '허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60평은 호화주택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60평 이상의 주택이 되면 세금도 많이 나오고, 공사 절차도 복잡하고, 행정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따라서 그런 법규를 모를 리 없는 건축가가 설계비까지 깎아가면서 설계를 의뢰한 건축주의 사정을 모를 리 없을테고, 첫번째 설계는 일부러 못먹는 떡이 될 것을 알면서 제시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건축가의 의도를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건축주의 의뢰를 받아서 일을 하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긴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좋은 건축, 아름다운 건축의 꿈을 건축주의 돈을 빌려 구현하고 싶은 욕망이 당연히 있을 것이고, 그것이 조금 지나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첫번째 설계를 포기하고, 좀 더 단순하고 건축비가 적게 드는 설계를 다시 의뢰했다. 그렇게 두 번째 설계도를 받았을 때, 첫번째보다는 디자인으로만 보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오히려 우리가 처음부터 원했던 '단순함'이라는 원칙에 가까워서 설계에 동의했다.

 

 

첫번째 설계도가 입체적이고 다양한 면과 높낮이로 구성되어 있어 재미있는 건축임에는 틀림없다. 반면 두번째 설계도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직사각형의 박스 그대로였다. 건물 자체도 특징이 없고, 무덤덤하며, 개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건물이 단단해 보이고, 오래 봐도 질리지 않으며 화려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지 않는 것이 또한 장점이기도 하다.

설계도에 따르면, 건물 앞에서 보면 이층이고, 뒤에서 보면 일층으로 보인다. 즉 뒷부분의 절반이 땅에 묻혀 있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집들과는 다르게 1층에 침실을 몰아서 배치했다. 잠은 모두 1층에서 자도록 한 것이다.

낮에 주로 생활하는 공간인 거실, 주방, 서재는 2층에 만들었다.

보통의 단독주택은 1층이 거실과 주방, 서재 등이 있고 침실이 2층에 있는 것과는 반대의 개념이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잘했다는 확신이 섰다. 여름에는 1층이 시원하고, 겨울에는 1층이 더 따뜻하다.

뒷쪽이 땅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반면 2층이 여름에는 조금 더운 것이 단점이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니다.

 

단순해 보이는 건축 디자인이지만 꽤 실력 있는 건축가의 작품답게 감각적인 부분이 있었다. 반면 생활하면서 불편한 부분도 나중에 눈에 들어왔다.

설계도보다는 이 모형을 보면 꽤 마음에 든다. 그들이 쓰는 용어로 '미니멀'하고, '모던'하며, '심플'하지 않은가. 단순 소박한 외형이지만 저 모형대로 집을 지으려면 보통의 주택 건축비용보다 1.5배가 더 들어가야 했다.

건축 공법이 그렇고, 건축 자재가 그렇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도 꽤 좋은 재료를 썼기 때문에 건축비는 우리 예상보다 많이 나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가운데 약 30% 정도는 시공업자(회사)의 이윤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실제 건축비는 훨씬 적게 들어가도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처음 집을 짓는 입장이어서 건축가와 건축업자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건축에 관한 지식이 많다면 모르되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집을 짓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돈을 충분히 지불하면서 사기를 당하거나 속을 끓이지는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다행이라고 할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노출콘크리트지만, 다음에 내가 다시 짓는다 해도 노출콘크리트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만큼 건축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는 돋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건축 디자인은 내가 직접 해보고 싶다. 그동안 단독주택에서 살아보니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점이 불편한지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집을 두 번 지을 수 있는 행운이 오기를 바라지만, 설령 불가능하다 해도 종이 위에라도 열심히 내가 꿈꾸는 집을 그려보고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