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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만화를 읽다

자살도

by 똥이아빠 2022.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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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도

 

'홀리랜드'의 작가 코우지 모리의 작품. 열일곱 권으로 완간. 한국에서는 '아일랜드'로 번역 출판. 전작인 '홀리랜드'도 주인공을 비롯해 등장인물과 배경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사회에서 일탈된 '비정상'의 인간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 개개인이 비정상이라는 뜻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발생하고, '홀리랜드'나 이 만화의 주인공들도 사회의 경쟁과 구조 속에서 발생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홀리랜드'에서는 주로 학교의 불량배들과 따돌림과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등장했다. 기존의 시스템에서 '불량배'들은 도태된 인간들을 말한다. 학교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을 만드는 곳이고, 그곳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은 '불량품'이라고 낙인찍힌다. 즉, 청소년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감성은 억압당하고, 획일화된 프로그램 안에 갇히게 됨으로써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큰 그림으로 보면 체제의 희생자들이다. 억압기제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탈하거나 폭발하는 것인데, 가해자는 자신들보다 더 약한 존재를 괴롭힘으로써 억압의 스트레스 강도를 낮추려한다. 따라서 학교폭력의 피해자는 이중의 고통을 받으며 억압의 강도가 커지기 때문에 스스로를 죽이던가, 다른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자살도'에서는 수많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한 인간들이다. 그들이 살던 사회는 경쟁과 억압이 일상화된 사회이며, 누군가를 끊임없이 짓밟고 올라서지 못하면 짓밟혀 가라앉게 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려서부터 일방 폭력(가정폭력, 성폭력)에 노출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자아가 형성되기 전부터 심각한 폭력에 시달린 사람들이라 일방적 피해자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회에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가해자들의 논리에 시달린다.

자살도에 버려진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행운아들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들에게 생존의 이유도, 생존의 열정도 없다는 점에서, 그들이 살아있다는 건 오히려 불행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자살미수자들을 무인도에 버리는데, 그곳에서 자살을 하든, 서로를 죽이든, 아니면 섬에서 굶어죽든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명백히 국가가 저지르는 범죄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져야할 의무가 있음에도 무인도에 유기하는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자살자들은 섬에 내리는 즉시 모두 자살을 해야 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결국 자살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섬에 버려진 사람들은 무정부 상태에 놓여진 무리이고, 그들은 스스로 처음부터 새로운 삶의 기준을 만들어가야 한다. 누군가 앞장서야 하고, 각자 역할을 해야하며, 서로 돕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자살은 혼자 결정하면 되지만, 살기 위해서는 협동하고, 의논하고, 노동하고,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적응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정부가 예상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섬에 버려지는 상황을 그린 작품은 '배틀로얄'이나 '파리대왕'처럼 극단적 상황을 보여주는 내용이 있지만, 이 만화는 상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주인공 '세이'는 작가의 전작인 '홀리랜드'에서 주인공 '유우'와 비슷하다. 세이도 어떤 이유에선지 자살을 시도하지만 살아남는데, '유우'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 '세이'처럼 되었을 것이다. 세이는 의지도 약하고, 마음도 여린 사람인데, '자살도'에 들어와 오히려 삶의 의지가 강해지고, 자신의 능력을 발견한다. '유우'가 스스로 연습한 복싱을 통해 집안에서 바깥으로 나가게 되고, 결국 강자가 되는 것과 비슷한 구도를 갖고 있다. '자살도'에서는 크게 두 집단이 대립하는데, 이는 인류의 발전단계에서 씨족-부족의 단계에서 발생하는 전투와 약탈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전투와 약탈은 식량과 노예의 확보가 목적이다. 무인도에 버려진 이들도 인류의 초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이들의 대립은 일정한 생산성이 확보될 때까지 계속된다.

초기에는 식량 확보에 급급했던 자살자들은 조금씩 먹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그들이 살아남아야 하는 근본적인 의문에 관한 해답을 얻는다. 그것은 알고보면 매우 쉬운 내용이지만, 그들에게는 놀라운 깨달음이었고, 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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