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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만화를 읽다

푸앵 제로

by 똥이아빠 2022.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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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앵 제로
 
20대 청년들이 겪는 불확실한 미래와 불완전한 자아에 대한 불안, 두려움, 좌충우돌하는 심리적 방황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그래픽노블.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자기정체성을 조금씩 발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정우는 프랑스 파리에서 5년 동안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온지 1년이 지났다. 그는 파리에서 만나 알게 된 근정을 만나는데, 근정은 곧 다시 파리로 떠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우는 지난 5년 동안 파리에서 살았던 시간을 회고한다.
정우가 프랑스로 만화공부를 하러 온다. 그는 프랑스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았으며, 파리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로 공부하러 가고 싶었으나 만화공부를 할만한 학교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프랑스로 왔다고 말한다.
정우가 한국을 떠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여자친구였던 은서와의 결별도 있었다. 늘 소극적인 정우의 태도를 마땅치않게 여긴 은서는 정우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프랑스 발상스 미술학교에서 만화 공부를 하지만 정우의 태도는 소극적이고, 배우려는 열망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인 유학생 모임이 파리에서 있었고, 그 자리에 참석한 정우는 민희를 만난다. 불만스러운 학교 생활과 파리에서 민희를 만나게 되면서, 정우는 발랑스를 떠나 파리로 돌아와 자리를 잡는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에도 다니며, 점차 생활인이 되어가던 중, 민희의 사촌형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하고, 그 사고를 계기로 민희는 서울로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정우를 떠난다.
유학생 가운데 예술을 하는 사람들 몇 명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전시회를 기획한다. 이 모임에 사진을 찍는 근정이 새로운 회원으로 들어오고, 정우는 근정에게 마음이 다가간다. 그러다 파리에서 우연히 민희를 다시 만나지만, 두 사람은 사이가 멀어졌음을 확인한다.
정우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학교를 졸업하고, 전시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이 작품은 프랑스 파리를 공간으로, 프랑스로 유학 온 한국의 학생들 중심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국 유학생들이 겪는 소소한 일상과 학교, 공부, 전공, 성취도, 친구들, 이성과의 만남 같은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즉, 공간이 프랑스 파리일 뿐, 이야기는 한국의 어느 도시든, 아니면 어느 나라의 어느 도시에서든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청년의 삶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의미 있다고 주인공 정우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다. 현실의 삶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것은 창작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또 많은 경우 독자의 공감을 얻는데 성공한다.
소설에서, 박태원의 '천변풍경'이나 이상의 '권태' 같은 작품은 작가가 겪은 경험을 거의 왜곡 없이 묘사하고 있으며, 그 자체로 뛰어난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화에서,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은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날것으로 표현한다. '있는 그대로'는 실제 현실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감독)의 눈으로 '재해석'한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독자(관객)는 자기가 보거나 읽는 작품이 실제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현실'은 아니다.
리얼리즘 예술 작품이 가치를 갖는 것은, 현실을 복제 또는 묘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재해석하고, 현실의 껍데기를 깨는 의도가 개입될 때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작가의 1인칭 주관적 시점으로 일관하면서, 작가의 경험에 매몰된 제한적 경험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그래픽노블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 가운데 한국 작가로 앙꼬, 마영신, 권용득, 송아람이나 체스터 브라운의 일련의 작품들은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사회적 보편성과 개인의 특수성을 모두 완성도 높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작품에서 '화자'는 보통 작가 자신으로 표현되지만, 작중 인물은 작가 또는 가공의 인물 가운데서도 극히 일부의 특징을 드러낼 뿐이다. 이런 특징을 반대로 해석하면, 작가 또는 가공의 인물이 가진 극히 일부의 특성을 드러낼 때, 작품은 개성을 갖고, 캐릭터(인물)는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 '푸앵 제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심각한 갈등이나 고민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평범하고 무난하다면 '이야기' 즉 '서사'의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서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서사가 갖는 드라마틱한 구조 때문이다. 즉, '이야기의 매력'이 있어야만 독자(관객)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고대 설화부터 현대의 드라마까지 인간이 만든 모든 서사는 기승전결과 영웅설화, 반전, 복수, 고난의 극복, 내적 갈등과 성장 같은 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런 구조는 다양한 형태로 변주될 뿐이다.
때로 오로지 캐릭터(인물)만의 매력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라도 캐릭터가 맞닥뜨리는 세계는 불완전하다. 
이 작품에서 캐릭터는 독립적이지 못하다. 캐릭터는 거의 모두 주변화되고 있으며, 심지어 주인공인 정우 자신도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어중간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그것을 의도한 것이라면 성공이지만, 캐릭터의 힘이 약한 것이 장점이 되는 경우는 없다. 인물의 개성이 약한 것은 작가의 그림만으로도 알 수 있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배경보다 오히려 선이 모호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들의 시선은 애매하고, 표정은 불분명하다. 따라서 이들이 하는 말은 독자에게 감정적, 감성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 작품(푸앵 제로)은 텀블벅으로 후원을 받아 제작한 작품으로, 그림이 아름다운 수채화 작품이다. 책의 판형도 커서 A4보다 조금 커서 그래픽노블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 다만, 그림은 아름다운데, 인물의 표현은 개성이 약하고, 인물들의 변별성이 부족해서 캐릭터가 충분히 개성을 갖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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