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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소설을 읽다

파문 - 장남수

by 똥이아빠 2023.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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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 - 장남수
 
작가의 창작은 경험에 바탕한다. 픽션이라고 해서 '순수한 창작'일 거라는 짐작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호러, 공포,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스티븐 킹의 작품 대부분도 스티븐 킹의 경험이 조금씩은 들어 있고, 작품의 작가의 아주 작은 경험을 씨앗으로 자란다.
인간의 상상력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아무리 새로운 상상을 하더라도 그 상상은 반드시 과거에 존재했던 경험에 근거한다는 뜻이다. 작가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은 욕구와 함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동시에 존재하며, 그 두 세계를 얼마나 절충, 타협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세계가 형성된다.
장르 소설이 작가의 상상을 더 많이 주입한 창작이라면, 현실을 더 강렬하게 반영한 소설이 '사회 소설'로 불리는 리얼리즘 소설이다. 1980년대 전두환 독재와 노태우 정권 때 민주화 투쟁과 함께 노동운동이 폭발했다. 그와 함께 노동문학도 꽃을 피웠는데, 이때 노동문학은 현실의 노동현실과 새로운 사회를 향한 의지가 결합한 '낭만적 노동문학'이었다.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이 쇠락한 원인은 역설적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절대 빈곤이 사라지며, 국가의 부가 커지면서 노동자 개인의 삶이 나아지면서였다. 여기에 국가 경영에 실패한 김영삼 정권이 구제금융 사태를 불러왔고,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한국은 '신자유주의' 체제로 재편되는 한편,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은 씁쓸한 퇴장을 하게 된다.
세월이 흘렀고, 지금 1970년대와 80년대 노동운동과 노동문학을 기억하는 사람은 최소한 50대 후반 이후의 중늙은이들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야만적이었으며, 폭력이 난무하고, 인권이 존재하지 않던 비참한 시절이었다.
자본의 착취라는 본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현재의 노동자들은 예전과 다른 생각,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건 자본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은 착취의 이미지를 감추고, 혁신, 자기개발, 첨단, 능력과 같은 가면으로 대중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다른 쪽에서는 끝없는 경쟁, 고용 불안,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개별 노동자를 착취하고, 그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며, 최소한의 임금으로 살아가도록 강제한다. 60년을 산 중늙은이가 이런 말을 하면, 청년들은 '꼰대'라고 말한다.
 
이 작품집 '파문'을 쓴 작가 장남수는 원풍모방 노동자로 일했다. 2000년 이후 고등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는 최대 82%까지 올라갔다가 지금은 75% 정도로 낮아졌는데, 1970년대만 해도 대학진학률은 20%를 조금 넘었다. 즉 열 명 가운데 두 명만이 대학에 갔고, 여덟 명은 사회로 나와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장남수도 그때 수많은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라 노동자가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그가 발표한 첫 소설 작품집에는 그의 과거 경험이 파편처럼 박혀 있는 걸 발견한다. 그건 오래 된 상처이기도 하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자부심이기도 하며,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막심 고리키도 어릴 때부터 세상을 전전하며 온갖 허드렛일을 했다. 그는 사회가 자신의 '대학'이라고 말했고, 사회의 밑바닥, 가난 속에서 피땀 흘리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살아가며 배우고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고, '어머니' 같은 위대한 작품이 탄생했다.
 
나이 들면서 변하는 사람과 성장하는 사람이 있다. 둘은 분명 다른데, 변하는 사람은 나이만 먹는 사람이다. 외모가 달라지고, 사는 형편이 더 나아지거나 못하게 되어도 그 사람의 내면은 성장하지 않고, 일정한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결국 시대의 변화, 흐름에 따라가지 못해 퇴화, 퇴행하는 사람이다.
성장하는 사람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끊임없이 노력하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과거 10대, 20대 때 노동자였던 사람 가운데 시간이 흘러 여전히 노동자로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 변함 없는 노동자로 생활하는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해서 과거의 자신보다 조금씩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성장하는 사람'이다.
장남수는 소년 노동자로 공장에서 일하는 10대부터 스스로 성장하려 노력한 사람이다. 다른 공장보다 노동자로 생활하기 좋은 환경이었던 원풍모방에서 노동조합은 그에게 학교였다. 노동조합 사무실에 있던 많은 책을 읽으며 스스로 공부했고, 노조회보에 글을 썼다.
그는 나중에 더 나이 들어 검정고시를 보고, 성공회 대학교를 졸업했다. 학력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끊임 없이 공부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고, 과거의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서다.
 
그가 쓴 첫 소설집을 읽었다. 나는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살았고, 작가가 겪었던 일도 미미하지만 경험했으며, 작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동질감과 동료애를 갖고 있다. 그의 소설은 낯설지 않고, 낡았지만 익숙한 가재도구를 만지는 느낌이다.
작가는 작품에서 지금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금이 있기까지 언니(물들인 날), 엄마(엄마의 빛, 그기 머라꼬), 기찬(파문)의 삶에서 과거의 흔적이 묻어날 뿐아니라 과거가 현재를 지배한다. 나와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 (집의 조건), (가이드)에서도 집과 여행의 밝은 면보다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의 처지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는 모진 세월을 살았고, 자신을 둘러싼 폭력에 저항하며 좀 더 강하고 날카로운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작가는 분노보다는 포용을 선택했다. 작품에서 언니와 화해하는 나, 엄마에게 깊은 연민을 갖는 나, 여행가이드의 처지를 알고 다만 얼마의 수고비라도 남들 모르게 찔러주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가 따뜻한 마음을 가졌음을 알게 된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그 길을 멀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제야 작가로 가야 할 길을 바로 찾았다는 생각을 한다. 첫 작품집을 낸 장남수 작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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