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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을 옹호하는 건 좋지만 - 천정환 글에 대한 다른 시각

by 똥이아빠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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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을 옹호하는 건 좋지만 - 천정환 글에 대한 다른 시각
 
지난 1월 26일 경향신문 '정동칼럼'에 '민주노총의 쓸모'라는 제목으로 성균관대 천정환 교수의 글이 실렸다. 그의 글을 읽고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어 천정환이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는 부분에 대한 보충 설명 또는 비판할 의도로 이 글을 쓴다.
 
먼저, 천정환 글의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기업과 언론이 민주노총을 '귀족노조', '종북단체' 프레임을 씌운 건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한국 전체 노동조합 조직률은 11%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권에서 민주노총 김명환, 양경수 위원장이 구속되는 등 사이가 좋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에서 민주노총을 공안 정국의 제물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노동조합은 헌법상 가장 중요한 기본 권리의 응결체다.
-민주노총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결사체로 중요한 존재 의미가 있다.
-민주노총 사람들을 봤을 때, 그들이 귀족처럼 보이지 않았다.
 
천정환이 '민주노총'을 변호하고, 민주노총이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존재이며,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그가 한 말은 대개 옳고, 나도 동의하며 지지하는데, 그가 모르거나, 빠뜨렸거나,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거나, '민주노총'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하는 여러 이유로 그의 글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언급한다.
 
  1. 천정환은 '민주노총'을 하나의 단일한 결사체로 인식하고 있다. 즉, '민주노총' 산하의 무수한 산별노조와 단위노조가 있고, 그 사업장에 있는 조합원, 대의원, 조합장, 위원장들의 정치경제 인식이 얼마나 많이 다를 뿐 아니라, 그 수준 또한 천차만별인지 생략하고 있다.
  2. 사람들이 '민주노총'을 '귀족 노조'라고 말하는 건, '민주 노총'의 본부를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민주노총 본부가 상징하는 바 때문에, 민주노총 산하의 대기업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갑질 사건, 정규직 노동조합의 비리 사건,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 수준 등을 두고 '귀족 노조'라는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마냥 '민주노총' 산하 대기업 노동조합은 물론 대개의 단위 노동조합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3. 현재 거의 대부분 '노동조합'은 '경제투쟁'에 매몰되어 있다. 즉, '노동조합'이라는 단위에서 자기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이익 - 임금, 상여금, 각종 수당 등 - 에만 몰두하며, '노동조합'을 이기적 집단으로 한정짓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런 단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훨씬 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정치경제적 전망을 내걸고 사회의 근본 문제를 다뤄야 함에도 그런 의지가 없거나,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
  4. 대기업 노동조합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들 사이의 갑질과 무능, 타락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천정환은 알까 모르겠다. 언론도 보도했지만, 민주노총 산하 대기업 노조에서 노조 간부들이 자기 자식을 같은 회사에 취업시키는 담합행위를 하고, 비정규노동조합과 비정규노종자에 대한 갑질로 행패를 부리는 내용도 있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마르크스의 선언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틀리지 않았음에도, 한국의 노동조합은 오로지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같은 노동자가 더 열악한 노동자를 탄압하고, 가해하며, 갑질에, 깡패가 할 법한 악랄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까.
  5. 민주노총이 이런 문제를 외면하거나, 해결할 능력이 없다면, 그건 그 자체로 '민주노총'의 존재 의의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천정환도 인용한 것처럼, 민주노총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하는 참된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사명인데, 지금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묻는다.
  6. 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천정환의 주장이 원론에서 옳지만, 본질에서 실패한 이유를 말하겠다. 대기업의 노동조합에서 대의원의 권한과 권력은 막강하다. 이들은 단위 사업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선거를 통해 대의원이 되는데, 대의원들 가운데는 자기 본연의 업무(노동자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하기 보다, 노조와 회사 사이에서 정치를 하며, 자기 입지를 다져 대의원을 오래 하거나, 노조위원장 또는 노조 임원으로 계속 활동하면서, 대기업에서 베푸는 온갖 특혜를 누리려는 자들이 적지 않다.
  7. 이것도 문제지만, 이들 단위 노조의 위원장, 대의원, 임원들의 수준이라는 게 너무 형편 없고, 천박해서, 이들이 '민주노총'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보장하는 참된 민주사회를 건설'할 일꾼으로의 능력과 자격이 되는지 매우, 매우 의심스럽다. 나는 이들이 저녁마다 술집에서 술 마신다는 말만 들었지, 이들이 날마다 '선진 노동자'가 되기 위해 공부한다는 말을 단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8. 이들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라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지만, 노동자의 정체성도 없으며,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려는 꿈을 갖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말할 수 없이 천박하고, 멍청한 노동자라는 걸 잘 안다. 어떻게 아느냐고? 그들에게서 직접 들었으니까. 물론, 그들 모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다수(거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매우 천박한 정치경제적 수준에서 벗어날 생각도 없고, 그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게 진짜 문제다.
  9. 대기업에서는 노동조합 위원장에게 대형승용차를 제공한다. 그리고 여러 명목으로 향응을 제공한다. 특히 생산직 노동자 중심의 노조에서, 오래 공장(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어느 날, 위원장, 대의원, 임원으로 선출되고, 이들이 평생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대접을 받기 시작하면서, 자기들이 동료 노동자의 권익과 권리를 대표하고, 크게는 한국 노동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하는 한, 그 '자본주의적 생활'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들어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잃는 건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10. '귀족 노조'라는 말을 듣는 게 억울하다면, 왜 그런 프레임에 갇히게 되었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단지 자본가와 자본가의 개인 언론이 만든 가짜 프레임이라고 짜증만 부릴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이 해야 할 본연의 정체성을 잃은 건 아닌가 묻는다. 그건 앞에서 말했듯, '민주노총 본부'를 말하는 게 아니다. 민주노총 산하 수많은 단위 노동조합의 노동자들이 지금 어떤 사고방식으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11. 외부에서 씌운 '억울한' 프레임을 깨뜨리려면, 결국 자기 극복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이 단결해 한국 자본주의의 공격에 맞서 강력한 투쟁을 벌이고,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노동자의 각성을 향한 치열한 학습과 내부 토론, 새로운 사회를 위한 준비가 있어야 하며, 외부로는 민주노총이 싸워야 할 명확한 대상과 목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절대 다수의 노동자, 시민, 서민, 농민, 자영업자를 동지로 규합해야 한다.
  12. 민주노총이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투쟁의 내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라치기를 없애는 것이며, 모든 노동자는 '하나'라는 명백한 역사적 인식을 대중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자본은 노동자를 파편화하고, 끊임없이 갈라치며,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도록 부추긴다. 가장 손쉬운 미끼가 바로 임금이고, 일자리의 불안정성이다. '민주노총 본부'에서도 이런 치열함이 거의 보이지 않거나 현실 인식이 떨어지는데, 하물며 단위 사업장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인식 수준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13.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총은 조직적으로 '정의당'을 지지했다. 그 결과 0.73% 차이로 수구반동 집단이 지지하는 대통령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역사를 내다볼 줄 모르는 졸렬하고 멍청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 이 결과로, 지금 '민주노총'이 대정부 투쟁을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얼마나 꼴갖지 않은지 천정환은 알고 있을까.
  14. 대중(그들 대부분은 노동자들이다)이 자본과 언론의 프레임에 속아서 민주노총을 '귀족노조'라고 비난하는 걸로 안다면 그건 정말 순진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대중은 민주노총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비난한다. 민주노총의 정체성은 반자본, 반민주 정권 투쟁이며, 이를 위해 노동자의 각성을 위한 올바른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제투쟁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그건 더 근본적인 문제인 반자본, 반민주 정권 투쟁보다 한단계 아래에 있는 가치다.
 
천정환의 글에 대한 반박과 비판으로 글을 썼지만, 예전부터 민주노총에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의 노동운동이 지리멸렬인 이유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노동자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동자는 자신이 기업가 또는 부르주아인걸로 착각하며 산다.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상인 등은 자신을 대표할 조직이 없거나, 사회적 관계에서 힘의 차이가 너무 커 일방 당할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들이다. '민주노총'이 해야 할 일은 노동자 전체의 단결을 위한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현재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의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 
멍청한 노동자가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가? 진심으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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