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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하얀 전쟁

by 똥이아빠 2011.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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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전쟁 - 10점
/네오센스


하얀 전쟁-그 죽음의 기록

 

하얀 전쟁을 보기 전에 나는 안정효의 장편소설 전쟁과 도시를 읽었고 하얀 전쟁도 읽었다이 두 제목은 서로 다른 제목의 같은 소설이었다전쟁과 도시는 실천문학사에서하얀 전쟁은 고려원에서 출간이 되었다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안정효라는 번역가가 이렇게 소설을 잘쓰는 줄은 정말 몰랐다는 것이었다예전에 단 한번도 안정효씨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고 또안정효씨가 소설가라는 것조차 몰랐던 나의 무지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번 읽기 시작한 그의 소설 속으로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모름지기 소설이라면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읽는 재미가 없다면 실패한 것이 아닐까그런 점에서 하얀 전쟁은 재미있게 읽혔다.

안정효씨의 박식함과 다양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언어들이 소설의 구석구석을 빛내고 있었고 이미 지나간 시대의 독백이 아닌잊혀지기를 강요당하는 상처가 그 쓰린 흉터를 드러내는듯 했다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서 베트남민족해방전쟁은 우리에게 다시 악몽으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 ‘따이한과 베트콩의 전투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들었던 그 때, ‘백마부대’‘맹호부대’‘백골부대의 용사들에 대해 자랑스러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칭송하던 시절이 있었다우리 군인들은 신의 아들처럼 총알을 맞아도 죽지 않는다고 했고 베트콩을 사살하여 훈장을 가슴에 달고 돌아오는 노래를 불렀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그러나한쪽 팔이 없는시퍼런 쇠갈고리를 내밀고 가게집 문을 부서져라 열어제끼던 상이군인이 있었다다리를 절며 망태기를 메고 종이를 주으러 다니던 넝마주이도 있었다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승객들을 협박반위협반으로 물건을 강매하던 그 상이군인들그들이 월남 얘기를 할 때면 왠지모를 슬픔과 향수가 느껴졌다우리는 지는 것에 대해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또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베트콩은 사람이 아니었고 그저 죽어야만 하는 그 어떤 것이었다.

우리는 이십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잊기를 강요당했다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이며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반성할 여유도 갖지 못했고 반성할 생각도 없었다모두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지만 오직 권력을 가진 자들만이 이 음모에서 자유롭고자 했다.

제국주의의 용병젊은 목숨을 바쳐가며 외화를 벌어야 했던 이 가난하고가난해서 파렴치한 조국이아니 정권이 선택한 길은 제국주의의 용병이었다제국주의자들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살인을 청부하고 우리는 반공이라는 미명으로 자기를 합리화하고 치장했다온 나라가 반공으로 미쳐날뛰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마치 하일 히틀러를 외치듯 파시즘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던 60년대냉전의 시대.

그 어렵고 힘든 시대에 베트남 민중들은 제국주의와 가열차게 싸우고 있었다조금도 타협하지 않고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민족과 통일을 위해 풀잎처럼 목숨을 버렸다당시의 남한 정권처럼 자고 새면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는 남베트남의 제국주의괴뢰군사정권그 속에서 민중들은 분노하고 있었고 오직 맨 손으로 제국주의의 고엽제와 소이탄 속을 뛰어다녔다.

우리는 이제 그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정직하게 듣고 있다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모든 속죄의 유예기간이 지나버린 뒤이지만 이제라도 지나간 역사를 바로 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는 것에 위안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승리였다고 떠들었던 바로 그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과연 자랑스러운 승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던가훈장을 목에 걸고월급을 모아 집을 사고사람들에게 무용담을 말하고그랬던가그들은 살아돌아와 말했다. ‘빨갱이를 몇 놈이나 죽였는지 아느냐.

하지만 그들도 축복받은 땅베트남에서 죽은 전우들을 기억할 것이다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에 미군들이 주었던 살렘껌을 먹어보았을 것이다미군들이 우리나라의 예쁜 처녀들을 옆구리에 차고 히히덕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베트남에 가서 우리 젊은이들은 어떻게 행동했던가그들도 예전에 우리나라에 주둔했던 미군들처럼 베트남 처녀들을 옆구리에 차고 베트남 어린이들에게 시레이션을 나누어주었을 것이다.

우리는 제국주의에 강간 당하고 다시 가난한 베트남을 강간했다힘있는 자만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순결을 지키기 위해 죽어간 베트남 민중들은 마침내 승리했고 강간을 강간으로 갚으려던 우리는 비참하게 지고 말았다힘만으로는 진정한 승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상식을 배워야 한다정작 제국주의자들은 자신이 패배한 기억을 되살려 그 피해망상을 극복할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패배를 상업성으로 되돌려 많은 돈까지 벌었다그리고 패배의 기억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휴머니즘의 이름으로.

하지만 우리는 어떠했던가침묵을 강요 당하고, ‘반공의 이름으로 양심의 소리는 언제나 테러를 당했다권력의 강요와 집단의 논리 속에서 한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총체적인 삶을 무시당하고 전쟁의 도구가 되어 밀림으로 들어갔다뚜렷한 대상을 찾을 수 없는 적을 찾아 밀림을 헤매이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아무런 명목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보이지 않는 적증오와 적대감을 갖을 수 없는 대상 앞에서 총칼을 들이대야 하는 모순부조리함그래서 밀림은 공포의 대상이었고 두려움의 장소였다.

개인적인 증오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이 부조리함대의명분도 없고 그저 살육을 위한 살육만이 존재하는 전쟁터에서 제국주의의 용병인 한국의 젊은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살아남기 위해 광기에 젖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지내야 했던 시간동안 이성이 자리잡을 여유가 없었다이성이란 부조리한 상황과 불합리한 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다하지만 그런 이성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오직 생존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곳이 전쟁터이다.

치열하고 극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의 이성과 감정은 변화한다전쟁이라는 극적인 상황가장 실존적이고 개인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공간그래서 모든 것이 자신과 관계있는죽음과 삶의 경계선인간이 결코 평범하게 겪을 수 없는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젊은이들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심리적정신적 갈등은 온전히 그들에게 돌아가는 고통이다.

어떠한 대의명분도 개인의 고통과 갈등을 이해하지 못하며 할 수도 없다그리고 해결할 수는 더욱 없다전쟁은 외부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그 상처는 개인의 내부에서 생기는 것이다.


하얀전쟁
감독 정지영 (1992 / 한국)
출연 안성기,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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