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음악3

한국 팝의 고고학 - 1970 한국 팝의 고고학 - 1970 1970년을 기억하는 건 쉽지 않다. 기억은 파편으로 남았고, 나는 그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는 열 살이었고, 마포의 기찻길 아래, 루핑을 얹은 판잣집에서 살았다. 국민학교 2학년 무렵이었고,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읽다가 한글을 깨쳤다. 집앞으로 문안(사대문 안쪽)에서 흘러나온 개천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흑백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가진 집이 하나였다. 우리집에는 배터리를 고무줄로 묶은 금성 라디오가 유일한 가전제품이었다.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연속극이 나오고, '전설따라 삼천리'가 나왔다. 우리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무서운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동네 꼬마들은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유행가'를 알고 있었다. 우리들은 동요를 부르지 않.. 2022. 11. 29.
한국 팝의 고고학 1960 한국 팝의 고고학 - 1960 10대의 어느 한 때, 오래된 트로트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이난영, 고복수, 남인수, 현인, 김종구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하염없이 들으며 마음이 좀 슬펐던 기억이 있다. 그땐 몰랐지만 아마도 '자기 연민'이 아니었을까. 소년 노동자로 살면서 나는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무지렁이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공장노동자, 건설노동자로 10대, 1970년대를 보냈고, 그때 라디오에서는 나훈아, 남진, 김추자, 최헌, 송창식, 어니언스, 패티김, 이은하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비록 몇 달이었지만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음악에 몰두했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국민학교 다닐 때 동무들과 유행가를 부르며 마을을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던 추억이 있다. 라디오, 텔레비전에서 .. 2022. 6. 26.
한국 팝의 고고학 1970 한국 팝의 고고학 - 1970 1970년을 기억하는 건 쉽지 않다. 기억은 파편으로 남았고, 나는 그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는 열 살이었고, 마포의 기찻길 아래, 루핑을 얹은 판잣집에서 살았다. 국민학교 2학년 무렵이었고,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읽다가 한글을 깨쳤다. 집앞으로 문안(사대문 안쪽)에서 흘러나온 개천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흑백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가진 집이 하나였다. 우리집에는 배터리를 고무줄로 묶은 금성 라디오가 유일한 가전제품이었다.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연속극이 나오고, '전설따라 삼천리'가 나왔다. 우리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무서운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 동네 꼬마들은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유행가'를 알고 있었다. 우리들은 동요를 부르지 않.. 2022. 5. 2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