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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유럽영화

[영화] 토니 에드만

by 똥이아빠 2017.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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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니 에드만

무려 160분이 넘는 긴 상영 시간이지만, 이렇다 할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 소소한 일상을 다룬 영화. 그럼에도 이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관계의 중요성' 때문이다.
청소년불가 영화인 이유가 영화에서 아주 짧은 성기노출과 누드 때문이라면 그건 '심의위원'이라는 멍청이들이 스스로 병신 인증을 한 것이고, 차라리 나이가 어린 사람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관계'의 중요성과 의미를 충분히 깨닫지 못할 것이니,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변명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그렇다고 '청소년불가'의 변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르는 코미디라고 해도,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하다.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고, 등장인물들 사이도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웃음이 있고, 따뜻함이 있고, 사랑이 있다면, 우리의 일상이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와 딸이 있다. 아버지는 심장병이 있어 가슴에 심장 검사를 하는 기계를 달고 다닌다. 몸도 비대한 편이고, 직장에도 다니지 않고, 더 늙으신 어머니를 돌봐드려야 한다. 그는 외모도 지저분하고 스스로를 잘 가꾸지 않는 하층민처럼 보인다. 게다가 아내와는 이혼하고 혼자 사는데, 이혼한 아내와 새로운 남편과는 친구처럼 지낸다. 
반면, 딸 이네스는 대기업에 다니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직장여성으로, 중요한 프로젝트를 위해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 와 있다. 그 전에 아내의 집에서 딸을 만난 아버지 빈프리트는 딸과의 거리를 좁혀보고 싶은 생각을 갖는다.

추레한 차림으로 딸이 일하고 있는 부쿠레슈티를 찾아온 빈프리트는 딸의 삶에 뛰어들어 모든 것을 망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네스는 그런 아버지의 행동을 잘 참으며 받아주기도 하고, 아버지의 행동을 돕기도 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네스의 태도를 보면, 직장에서는 냉정하고 분명한 중견사원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 자신의 삶은 빈곤하고 피곤하다. 아버지는 그런 이네스의 삶을 바라보면서, 잘 나가는 직장인이기 보다는, 자신의 삶에 보다 충실하기를 바란다.

이 영화가 '관계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고 한 것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 뿐 아니라, 이네스가 일하는 회사와 거래회사 사이의 사람들의 관계, 이네스와 그의 비서(여성), 이네스와 애인이면서 직장 동료인 팀과의 관계, 이네스와 회사 사장의 관계, 아버지인 빈프리트와 이혼한 아내와의 관계, 빈프리트가 만나는 이네스의 직장동료들과 거래회사 사람들과의 관계 등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맺기와 헤어지기'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첫장면에서 택배기사와 만나서 택배를 받는 장면이 그렇게 길고도 스릴 있는 것은, 빈프리트의 인물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해도, 그가 사람과 만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카메라가 흔들린다. 흔들리는 카메라에 비치는 피사체(인물)는 그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뚜렷한 확신을 갖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만나면서 감정은 흔들리고, 좋거나, 싫거나, 피곤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순간들을 갖게 된다. 그럴 때마다 카메라는 흔들리고, 관객은 흔들리는 카메라 속의 인물이 어떤 감정에 놓여 있는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네스의 입장에서 아버지는 엄마와 이혼하고 노쇠한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중늙은이에 불과하다. 전문지식도 없고, 부자도 아니며,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네스는 분명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고, 뜬금없는 농담을 던져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아버지처럼, 이네스 역시 약간의 '또라이'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다.
딱 한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 사람의 집에 쳐들어간 빈프리트는 갑자기 피아노를 치고, 이네스는 아버지의 강요로 노래를 하는데, 마지 못해 하는 것 치고는 꽤 열심히, 잘 한다. 이네스는 아버지가 마땅치 않지만, 그렇다고 미워하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와는 어쩔 수 없는 세대의 간격이 놓여 있고, 그것은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지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미덕이 있다.

'토니 에드만'은 아버지 빈프리트가 만들어 낸 가상 인물이다. 그는 가발을 쓰고, 의치를 끼고, 불가리아의 전통 인형 옷을 입기도 한다. 그는 이네스가 일을 하는 현장에 나타나 다른 사람으로 행세하며 이네스와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이네스는 일이 너무 많아 날마다 바쁘고, 일이 아닌 일로 사람을 만나거나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아버지는 그런 딸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바람은 서로 달라서 일치할 가능성은 없지만, 이네스는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영화 내용과 관계없이, 주인공 이네스 역의 신드라 휠러의 이미지는 상당히 매력 있다. 유능한 커리어우먼으로 보이는 외모에 매력적인 인상이 돋보였다. 영화에서 누드로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두 여성의 누드는 전혀 외설적이지도, 섹스어필하지도 않고 그저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인다. 그만큼 연출도, 연기도 훌륭하다는 증거다.

이 영화는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분명하게 갈릴 만 하다. 영화는 평범한 일상을 다루고 있고, 심심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2시간 40분이 넘는 긴 상영시간은 지루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꽤 잘만들었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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