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20
1988년과 1989년 사이에 찍은 사진. 이 사진을 찍을 무렵, 중편소설 '하루'를 쓰고 있었다. 목표는 '제1회 전태일문학상'. 이 무렵, 구로공단에 있는 도금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공장에 들어가기 직전에 새로운 공부모임을 시작했다. 독서회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공부모임이었고, 다섯 명 정도가 모여 일주일에 한 번 집중적으로 토론을 했다. 일주일 내내 책을 읽어서 목표한 내용을 다 읽고 이해하고 가야 했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책을 읽어갈 수는 있었지만 내용까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주로 경제학 관련 책들이었는데, '서양경제학논고', '한국농업의 이해', '변증법의 이해' 등등... 저 사진 속 책들을 보면, 소설책은 거의 없고, 대부분 사회과학 책인 걸 볼 수 있다. 끈으로 묶인 책들은..
2011. 11. 13.
1980년대-11
김영록 선생님의 모습. 84년 10월에 전역을 하고, 다시 독서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김영록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김영록 선생님은 당시 한양아파트에 살고 계셨고, 헌책방에 우연히 들렀다가 독서회가 있다는 말씀을 듣고, 또 선생님께서도 흥미를 갖고 계셔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독서회에 참석하시기 시작하셨는데, 그때가 83년 후반이거나 84년 초인 걸로 알고 있다. 김영록 선생님을 만난 것은 여러가지로 큰 행운이었다. 그때는 선생님, 스승님으로 모실만한, 본배우고 가르침을 구할만한 어른이 주변에 없었는데, 김영록 선생님께서 우리의 스승님이 되어주셨다.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하시고, 세계 곳곳을 여행한 경험, 일제 강점기에 이미 대학공부를 하셨을만큼 지식인이었던 선생님께서 독서회에 참석하시자 독서회는 마치 날..
2011. 11. 1.
1980년대-10
휴가 나와서 들른 씨앗글방에서 동무들을 만나다. 1982년 12월. 휴가를 나와도, 부대에 있어도 20대 때는 삶이 무거웠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도 삶이 무겁고, 우울하고, 나를 둘러싼 상황이 암울했다. 게다가 어리석기까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건 책읽기였다. 하숙집에서도, 집에서도, 부대에서도 늘 책을 읽었다. 새책을 살 여유가 없었기에, 헌책방에서 가져오거나 구입한 책들을 쌓아두고 닥치는대로 읽었다.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현실을 잠시 떠날 수 있고,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의 거의 모든 것은 책에서 배웠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겠다. 이 당시-70,80년대-가장 대중적인 책은 '문고본'이었다. 삼중당 문고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을유문고며, 심지어 ..
2011. 11. 1.
1980년대-09
흔치 않은 훈련 사진. 팀스피리트인지 동계훈련인지...일병 말, 상병 초쯤 되지 않았을까. 우리 부대는 전방 바로 뒤에 있는 포병부대라 훈련이 많았다. 평균 두 달에 한 번 정도. 일주일에 한 번 비상훈련은 아예 치지 않고도, 대대적인 훈련이 두 달에 한 번씩이다. 훈련이 싫다기 보다는, 훈련을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귀찮고 힘든 것이 싫다. 훈련도 대충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이 발생하는 시간-싸이렌이 울린다-부터 전쟁이 발생한 것으로 실제 상황처럼 일처리를 하게 된다. 부대에서 보직에 따라 소각할 서류, 물품의 분류와 관리부터 시작해 완전군장 준비, 군수행정에 필요한 서류 준비, 각종 현황판, 지도, 비밀문건 등 확보...전쟁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두꺼운 나무상자에 서류를 넣고, 트럭에..
2011. 11. 1.
1980년대-08
나에게는 귀하고 뜻깊은 사진이다. 병장을 달고 훈련을 나가서 찍은 사진인데, 왼쪽의 인물은 나와 같은날 입대한 동기이자 군번이 3번 차이가 나고, 훈련소부터 쭉 함께 있었던, 그뿐 아니라, 나의 대부이자, 빛과 같은 존재였으며, 여전히 그리운 동무이기도 하다. 의무대에 있던 동기는, 사람이 너무 선하고 밝아서 그를 보고 있으며 마치 밝은 빛이 뿜어져나오는 듯 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 많은 사람 속에서도 빛나고, 사람을 끌어들이고, 늘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 동무와 비교하면 나는 늘 어둡고 우울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내가 그를 발견했을 때, 그에게서 나와는 전혀 다른, 빛과 따뜻함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동갑에 동기였지만 그는 나의 롤모델이었으며,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2011. 11. 1.
1980년대-07
군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건 운이 좋은 경우다. 그때가 1980년대임을 생각한다면. 취사장 뒤쪽 공터에서 동기들이 모여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재경이, 나, 대욱이, 규정이, 종식이, 기영이, 그리고 9월군번 고참인 이경영. 뜬금없이 이경영이 쌀바가지를 들고 서 있는 게 이상할지 모르지만, 고참이었던 이경영은 우리들과 상당히 친했다. 고참 가운데 '좋은 사람'이었던 이경영은 재주도 많았고, 사람도 좋았다. 이 사진에는 빠졌지만, 다음 사진에 나올 인물이 동기인 용수. 재경이는 고향인 안중에서 유지가 되었고, 대욱이는 고향인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규정이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고, 종식이는 경찰이 되어 지금은 꽤 계급이 높다고 들었다. 기영이는 양평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다. 내가 이장을..
2011. 10. 31.
1980년대-02
군에 입대하기 전의 사진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1982년 이전이 되겠다. 이 비밀조직원 또는 독립군 같은 포즈는 뭘까? 저 손에 들린 걸 알아보는 사람은 나이가 있는 사람이다. 흔히 '가리방'이라고 부르던, 등사기에서 쓰던 기름종이다. 철필로 긁어 써야 해서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인데, 이 작업을 하면서 가운데 손가락 첫마디에 굵은 굳은살이 박혔다. 독서회 소식지를 만들었는데, 기획, 편집, 제작을 혼자 맡아서 하다보니 재미도 있고 좋은 경험도 했다. 기억으로는 7-8호 정도를 만든 것 같은데, 80년대 중반에 모두 태워버렸다. 그 당시에 군대에서 전역하고 새로운 형태의 공부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함께 공부하던 선배들이 조직활동으로 수배당하곤 해서, 나까지 보안에 신경을 써야 했다. 결국, 날..
2011.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