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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1980년대

1980년대-06

by 똥이아빠 201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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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대 배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사수가 전역을 했다. 
졸지에 끈 떨어진 강아지가 되어 구박덩어리가 되었는데, 직속 고참(지금은 '선임'이라고 하나보다)이 없는 설움을 그때부터 당했다. 논산훈련소 23연대. 훈련을 마치고 후반기교육도 없이 곧바로 춘천101보로 왔다. 그곳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팔려가길 기다렸는데, 주특기가 좋은 놈들은 일찍 보직 좋은 곳으로 팔려나가고, 나처럼 주특기도 없는 훈련병들은 마지막까지 남았다.
결국 일주일을 꽉 채우고, 트럭에 실려 깊은 산길을 구불구불 넘어 자대에 도착했다. 이때까지도 여전히 주특기는 받지 못한 상태. 자대로 출발하면서 급하게 받은 주특기가 960. 군수행정병이었다.
처음 소집 통지서를 받아 모인 원광공전 운동장부터 함께 온 동기는 딱 한 명. 그 친구는 의무대로 가고, 나는 군수과가 있는 본부포대로 갔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포병으로 배속받아서 전역할 때까지 포를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다. 우리 부대는 105밀리와 155밀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알파, 브라보, 챠리에 배속된 친구들은 훈련 때마다 무거운 포를 움직이느라 엄청나게 고생했다.
저 사진 속 인물들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지만 세월이 가면 모두 추억으로 남는 것. 다만 여전히, 우리나라 군대는 갈 곳이 못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나쁜 전통을 그대로 물려받은 우리 군대는 구타와 욕설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이다. 과연 그것이 옳은가? 그렇게 구타와 욕설을 하지 않으면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가? 그런 군대라면 오히려 존속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군대에서 계급은 단지 명령체계를 세우기 위한 수단일 뿐, 계급이 곧 권력이거나 계급이 '인권'을 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래서도 안 된다. 군대의 복종은 '애국심'에서 우러나는 자발성에 기초해야 하며, 그것은 상호 평등과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속한 4월 군번의 수가 많아서, 우리 대대에서 4월 군번의 위치는 좀 독특해졌다. 3월, 심지어는 2월 군번까지 맞먹게 되고, 5월 군번은 확실하게 잡았다. 2월과 3월 군번의 고참 수가 너무 적어서 그들도 어떻게 할 수 없었고, 5월 군번도 수가 적었다.
우리 4월 군번은 4월 1일부터 4월 30일 군번까지 대대에서 거의 모든 보직을 고르게 차지하고 있었고, 이것은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작용했다.
우리가 졸병일 때는 거의 매일 집합과 구타를 당했지만, 우리가 고참일 때는 그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요즘도 군대내 폭행과 자살, 탈영 사건을 보게 되는데, 나는 오히려 내가 근무했던 부대가 상당히 신사적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신사적이라고 해도 정도가 조금 덜 한 것일 뿐이다. 나도 고막이 터진 적도 있었고, 쪼인트(정강이)와 엉덩이에 시퍼런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은, 군대에 가지 않은 남자들을 증오한다. 한나라당과 정부 각료들 가운데 상당수가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몹시 비호감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군대 조직의 비민주성에는 절대 반대하지만, 군대의 순기능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군대는 그 순기능이 많아져, 스스로 가고 싶은 군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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