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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남미영화

[영화] 로마 ROMA

by 똥이아빠 2018.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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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마 ROMA
이 영화는 그가 만든 '그래비티'보다 흥행이 낮을지 모르지만, 그의 작품-앞으로 만들 작품까지 포함해서-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 아닐까 예상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쉰들러 리스트'가 생각났다. 두 작품은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데-있다면 딱 한 가지, 영화가 흑백이라는 점-왜 '쉰들러 리스트'가 떠올랐는가 생각해보니, 이유를 알 것 같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멋진 영화를 만들면서 세계적인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자신의 검증된 연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반면 스티븐 스필버그는 유명한 흥행감독으로 성공하자, 상을 타고 싶은 욕망으로, 오로지 '예술성 있는 감독'이라는 이름을 얻고 싶어서 '쉰들러 리스트'를 연출했다. 두 사람의 출발점이 처음부터 다르다.
유대인이자 시오니스트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핍박당하는 유대인을 구출한 독일인 쉰들러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아카데미 상을 받았다. 그렇다고 지금 스티븐 스필버그를 '예술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 영화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그저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 아니라, '예술영화'도 잘 만드는 뛰어난 감독임을 보여준다. 이전의 영화들이 대중성과 흥행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적어도 이 영화는 그런 관객의 시선에서 초연하다. 
무려 134분이나 되는 런닝타임은, 대단한 사건이 없는 이 영화가 왜 그렇게 길어야 하는지,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서 더는 줄일 수 없다는 감독의 의지를 반영한다. 그리고 흑백필름은 단지 멋을 부리기가 아니라, 1970년대 멕시코의 시대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훌륭한 수단임을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된다. 이 영화가 컬러필름이었다면 오히려 영화의 몰입과 집중에 방해가 되었을 터이고, 영화의 격도 낮아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흑백필름을 적절하게 쓰면 영화는 더욱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교본같은 영화다.
이야기는 매우 평범하다. 오히려 너무 평범하고 단조로워 지루할 것 같은 내용이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호흡을 이어간다. 멕시코의 한 도시 이름이 '로마'다. 이탈리아의 로마라면 너무 당연하겠지만, 이 영화에서 '로마'는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의 중심부에 있는 한 지역을 말한다. 그러고 보면, 동명이역(이름이 같은 다른 지역)으로 유명한 영화 '파리, 텍사스'가 있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파리'에서 벌어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빔 벤더스 감독의 이 영화 역시 걸작이다. '로마'와 '파리, 텍사스'는 헤어진다는 소재가 같다. 다만 그 방식이 다를 뿐, 가족의 해체, 사랑하는 사람과 결별, 후회, 안타까움 등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다.
텍사스의 로마지역에 사는 한 중산층 가족과 그 집에서 일하는 멕시코 여성 가정부 클레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중산층 가족이지만 이들은 미국인이다. 미국인이 멕시코에서 중산층으로 살아가며 멕시코인을 하녀로 부리고 있다는 것은, 멕시코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을 암시한다. 미국에 종속된 멕시코는 자신들이 분명 멕시코의 주인이면서도 미국의 하인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약자의 처지에 놓여 있다.
미국인 부부는 네 명의 아이가 있다. 집에는 두 명의 가정부가 있고, 남자는 아마도 의사인 듯하고, 여자는 생화학자로 교사로 일하는 것으로 나온다. 넓은 집에 두 대의 차를 보유하고, 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의 삶을 살아가는 이 가족과 가정부 클레오는 주종 관계이면서도 사이가 퍽 좋다. 클레오는 전형적인 멕시칸으로 외모만 봐도 멕시코 사람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멕시코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 집에서 일하는 두 명의 젊은 여성 가정부는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임을 외모부터 보여준다. 조신한 몸가짐, 부지런한 몸놀림, 집안일을 두루 하면서 아이들도 돌보는 유모같은 가정부들이다. 미국인 부부는 두 명의 가정부를 믿고, 아이들까지 맡긴다. 집주인이나 아이들에게서 갑질이나 선민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고, 상식을 갖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느날부터 이 행복한 집안에 균열이 생긴다. 캐나다 퀘벡으로 출장을 떠난다는 남자는 돌아오지 않고, 클레오는 남자친구와 동침하고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서 남성은 무책임하고, 폭력적이다. 어린 자식을 네 명이나 남겨두고 출장 간다고 속이고 집을 떠난 백인 남성은 실제로는 같은 멕시코 시티에서 다른 여자와 살고 있다는 것이 발각된다.
클레오의 남자친구는 클레오가 임신했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도망친다. 남자들은 대책없이 한심하고, 어이없는 속물에다 역겨운 인간들이다. 클레오의 집주인인 백인여성이 '여자는 언제나 혼자였어'라고 말하는 건, 자신의 처지는 물론이고 클레오의 난처한 상황까지 아우르며, 여성 일반의 삶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말이다.
클레오는 임신한 사실을 밝히면서, 자기가 해고될 것을 걱정하지만, 여주인은 그럴 일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집주인으로서의 배려일 수도 있고, 같은 여성으로서 동지적 입장으로 배려하는 것일 수 있다. 덕분에 클레오는 임신하고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는데, 그는 충격적 사건을 겪으면서 결국 아이를 사산한다.
아이들과 여행을 떠난 곳에서 두 아이가 파도에 휩쓸려 죽을 뻔한 상황에서 클레오는 성치 않은 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두 아이를 살린다. 하마터면 클레오도 죽을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모두 살아서 바다 밖으로 나오고, 이때 클레오는 자신의 속마음을 처음으로 드러낸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어요.' 이 말은 한때 사랑했다고 생각했던 남자에게서 받은 심한 마음의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뜻하며, 데모하는 학생을 총으로 쏴죽이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 아버지였던, 한때 사랑했으나 매몰차게 임신한 자신을 버리고 떠난 바로 그 남자라는 것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던, 그래서 그 폭력적인 남자의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던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클레오의 여주인 역시 자신이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심한 충격을 받지만, 네 명의 아이를 키워야 하는 어머니로, 생화학자이자 교사인 지성인으로, 남자의 배신을 결연하게 극복한다. 그녀는 아이들과 클레오에게 새로운 모험을 떠나자고 말하고, 앞으로 함께 더욱 뭉쳐서 잘 살자고 다짐하고 격려한다. 
이 영화는 결국 여성의 이야기이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사랑했던 엄마, 이모, 누나들의 이야기다. 1970년대 초반의 여성이라면 멕시코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들이 놓인 사회적 환경이나 억압은 나라를 떠나 비슷하며, 여성 일반이 겪는 고통의 역사는 인종과 국경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더욱 보편적인 영화이며, 시대를 훌륭하게 반영하고, 여성의 삶을 드러내며, 평범하지만 비범했던 여성들을 기억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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