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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소설을 읽다

빌리 서머스 - 스티븐 킹

by 똥이아빠 2022.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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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서머스 - 스티븐 킹
스티븐 킹의 소설을 나름 읽었고, 그의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말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어 원문이 아니어서, 그의 농담과 재치를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말로 번역한 소설만으로도 스티븐 킹의 속내는 어지간히 알아서 짐작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스티븐 킹의 '글쓰기'에 관해 꽤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그의 다른 소설과 달리 '스티븐 킹의 글쓰기'라는 형식에 관해서 특히 잘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그의 소설들에서 소설의 내용 즉 '서사'와 인물에 흥미와 관심을 두었다면, 이 소설은 작가의 글쓰기가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 작품에서 스티븐 킹은 주인공 빌리가 해야 하는 살인청부 암살, 암살 준비 과정에서 위장을 위한 작가의 삶, 작가 흉내를 내려다 진짜 작가처럼 글을 쓰면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빌리, 우연한 사건으로 알게 된 앨리스와의 만남, 암살 이후 벌어지는 진짜 이야기 등 모두 다섯 가지 에피소드를 순차적으로 하나로 묶으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예전에는 거의 느끼지 못했거나, 약하게 느낀 정도였으나 이 작품에서는 스티븐 킹이 소설의 얼개를 짜는 방식이 눈에 훤하게 보였다. 그건 나를 포함한 독자를 완벽하게 속이지 못했다는 뜻이다. 즉, 이 작품의 얼개는 다른 작품보다 인위적이고, 도식적이라는 비판을 할 수 있다.
 
빌리는 우연히 살인청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놨지만, 그가 매우 탁월한 솜씨를 보이면서 점차 몸값이 비싸진다. 그는 이제 살인청부의 세계에서 은퇴를 할 생각이었으나 일감을 주는 닉을 통해 이번 한 번만 하고 은퇴하라는 말을 듣는다. 마지막 한 번이고, 금액이 매우 커서 빌리는 내키지 않지만 일을 맡기로 결정한다.
빌리가 노리는 타겟이 법원 계단에 나타날 때까지 몇 달의 시간이 남아 있어서, 빌리는 그 주변에서 평범한 이웃들과 어울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는 사무용 건물 한 칸을 임대해 그곳에서 글을 쓰고, 먹고 자는 집을 임대해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며 생활인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스티븐 킹은 왜 빌리가 '작가'로 모습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빌리가 '작가'의 모습으로 위장하게 되는 과정과 내용은 어쩌면 필연으로 보인다. 법원이 보이는 사무용 건물을 써야 하는데, 그 빌딩에 입주한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눠야 할 때, 빌리가 다른 전문직으로 일한 적이 없으므로, 가장 만만한 직업이 '작가'라는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렇게 빌리를 '작가'로 위장한 다음, 스티븐 킹은 빌리가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쓰도록 만든다. 그래서 독자는 주인공 빌리가 스스로 쓰는 자전적 이야기를 읽는다. 즉, 작가인 스티븐 킹이 빌리의 과거를 말하지 않고, 작중 인물인 빌리가 직접 자기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형식이다.
 
빌리는 책은 꾸준히 읽는 사람이지만, 글은 한번도 써본 적 없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을 떠올린다. 그리고 아득히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글쓰기는 정신 치료에서 매우 긍정적 효과를 내는 방식이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식은 여럿 있지만, 글쓰기의 힘은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빌리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글을 쓰지만, 그는 자전적 소설을 쓰면서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있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즉, 스티븐 킹은 주인공 빌리를 통해 빌리가 스스로 글을 쓰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려 하고, 그건 성공한다. 
빌리의 과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행했다. 빌리는 아버지 없이 자라는데, 그건 스티븐 킹의 어린 시절과 같다. 엄마는 남자 친구를 자주 바꾸고, 품성이 나쁜 남자 친구를 만나 삶이 시궁창 같으면서도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빌리의 여동생 캐시가 엄마의 남자 친구에게 맞아 죽는 장면을 보았고, 그가 불과 아홉 살에 여동생을 죽인 남자를 총으로 쏴죽인다.
엄마는 술을 마시고, 질 나쁜 남자를 만나 결국 마약가지 하면서, 빌리는 위탁 가정에 맡겨지고, 그는 그곳에서 줄곧 생활하다 해병대 입대한다. 빌리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고, 불행한 기억만이 남았으며, 가족과의 행복, 즐거운 추억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빌리의 자전적 소설은 작품이 거의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그가 쓴 소설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으며, 다만 실존하는 인물의 이름을 바꿨을 뿐이다. 빌리가 자전적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까지는 이해하지만, 글을 써본 적 없는 빌리가 꽤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너무 작위적이지 않을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빌리는 학교도 거의 다니지 않았고,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가 꾸준히 책을 읽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는 늘 책을 갖고 다니며, 시간을 내서 책을 읽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읽고 있던 책은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이었다. 이 책은 박찬욱 감독이 '박쥐'를 만들 때 모티프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빌리가 작품 속에서 자전적 소설을 쓸 때, 그 문장은 스티븐 킹의 문장이 아니라 빌리의 문장이므로 당연히 어설프고 미흡한 내용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연히 만난 앨리스는 빌리가 쓴 소설을 읽고 재미있다고 말하고, 좋아한다. 그건 적어도 빌리가 자기의 지난 삶을 거짓 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문장력이 부족해도 진솔함이 보이는 문장이라면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 책은 400페이지 두 권인데, 1권에서 암살 사건이 끝나면서, 진짜 이야기는 암살이 아니라는 걸 독자는 알게 된다. 그렇다면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2권에서는 암살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는 것도 짐작한다. 빌리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자전적 이야기는 1권에서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에 이어 해병대 입대, 이라크 파병과 전투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가 저격수로 발탁되는 에피소드도 나온다.
2권에서는 이라크에서 벌어진 여러 전투에서 전우들이 적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내용들이 나오는데, 빌리는 어릴 때는 물론, 전쟁 트라우마까지 겪으면서 용케 사회 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우연한 사건으로 스무 살 아가씨 앨리스와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의 만남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서사이자, 빌리의 삶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빌리는 앨리스가 성폭행을 당하고 죽기 직전에 그녀를 구하는데,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앨리스가 참혹하게 죽은 여동생 캐시와 동일시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즉, 앨리스를 지키는 것이 죽은 여동생 캐시를 지키지 못한 자기의 나약함에 대한 보상이라고 무의식에서 반응하는 것이다.
 
계획한대로 암살은 성공했지만, 빌리는 자기에게 일감을 준 사람들의 계획을 따르지 않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혼자만의 탈출 계획을 만들어 탈출한다. 빌리가 암살한 사람은 범죄자로, '죽어 마땅한' 놈이었지만, 그의 죽음 이후 빌리 역시 다른 암살자와 조직의 타겟이 되어 쫓기는 몸이 된다.
자기 목에 6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렸다는 걸 알게 되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래선을 추적해 누가, 왜 자기를 죽이려는지 알아내는 것이 2권에서 중요한 내용으로 전개된다. 이때 이 모든 과정을 우연히 만난 앨리스와 함께 하면서, 빌리와 앨리스의 우정은 깊어지고, 앨리스를 지키려는 빌리의 마음은 오빠나 아버지 같은 심정이 된다.
책 표지에 '하드보일드 누아르 스릴러'라고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살인청부를 하는 빌리는 '나쁜 놈만 죽인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고, '누아르'라고 할 만한 내용은 빌리가 죽인 범죄자와 관련 있는 언론 재벌 클라크와 그의 아들에 관한 내용 뿐이다. 빌리는 '하드보일드'하지도 않고, 작품의 내용은 '스릴러'하고도 거리가 있다.
 
빌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일어난 과거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것이 스티븐 킹이 가장 잘 하는 묘사인데, 그가 우연히 만난 앨리스에게 자기의 모든 걸 주는 과정에서, 스티븐 킹이 늘 보여주는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입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빌리는 아동성폭행, 아동성매매, 여성에 대한 성폭행, 성추행에 관해서는 일말의 용서가 없다. 그의 작품에서 이런 내용이 나오면 반드시 철저하게 응징, 복수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불행한 여성이 자기의 현실을 극복하고, 용기를 갖게 되는 장면, 여성이지만, 세상의 편견과 억압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당당하게 독립하려는 당찬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빌리는 자기의 과거를 스스로 지움으로써, 앨리스가 새롭게 출발하는 삶을 응원한다. 빌리가 쓴 자전적 소설은 빌리의 부재(不在)를 대신하는 그의 실체이며, 앨리스는 빌리가 쓴 소설을 이어받아 자기 이야기를 써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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