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 #2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작품. 2024년 11월 개봉이니 최신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영화는 시드니 루멧 감독의 데뷔작이면서, 고전 걸작 영화인 '12인의 성난 사람들'이다. 두 영화 모두 법정 영화이면서 12명의 배심원이 등장하고, 처음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유죄라고 판단했던 용의자에 대한 판단이 한 사람의 배심원이 제기한 의문으로 시작해 판단이 달라지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얼핏 보면 두 영화는 매우 비슷한데, 영화의 알레고리는 사뭇 다르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는 배심원 가운데 누구도 용의자와 관련 있는 인물은 없다. 다만, 배심원 가운데 8번 배심원이 처음부터 용의자가 무죄라고 판단하고, 유죄를 의심한다. '배심원 #2'에서는 제목처럼 2번 배심원이 유죄 평결이 절대 다수인 상황에서 이의를 제기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1957년에 개봉한 흑백 영화이고, '배심원 #2'는 2024년에 개봉한 영화로 무려 67년의 간극이 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 등장하는 12명의 배심원은 모두 '백인 남성'으로 구성된 걸 볼 수 있는데, 1950대 미국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반면 '배심원 #2'에는 오히려 백인 남성이 소수자로 등장한다. 여성, 흑인, 아시아인이 고르게 등장하고, 배심원장도 경험이 많은 여성이 맡는다.
두 영화는 매우 비슷한 형식을 보여주지만, 주제는 사뭇 다르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배심원이 고민하는 단 한 가지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을 때는 피고에게 유리하게 판결해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로 정의할 수 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피고는 18살 멕시코인 청년이다. 즉, 백인 주류 사회에서 백인들이 유색인종이자 가난한 나라에서 온 청년을 단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고, 그들의 선택에 따라 18살 청년은 죽거나 살거나를 선택당하게 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피고인 청년은 잠깐 모습을 드러낼 뿐, 그의 존재는 흉기로 아버지를 살해한 용의자로만 그려지고, 다른 행적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배심원 #2'에서 피고인은 비가 내리는 늦은 밤, 술집에서 싸우고 먼저 나간 여자 친구를 뒤따라가 살해한 남자 친구이면서, 과거에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른 품행이 나쁜 청년으로 그려진다.
'배심원 #2'에서 배심원들은 재판에 참여하며 피고인의 과거를 듣는다. 담당 검사는 다가온 선거를 통해 다시 선출되기를 바라고 있어, 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검사는 피고인이 여자 친구를 살해한 정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술집에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이 싸우고 나가는 장면을 지켜보았고, 어떤 손님은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놓은 증거가 있어, 유죄의 근거가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피고의 변호인(국선변호인이다)은 검찰이 구체적, 물적 증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며, 오로지 정황 증거만으로 피고를 살인범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항변한다.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현대 법정에서 물적 증거가 없이 오로지 정황 증거만으로 살인 행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사례가 있다. 한국에서도 물증 없이 정황 증거만으로 살인 범죄를 판결하고 유죄를 선고한 재판이 있었는데, 그때의 정황은 '상식'을 가진 평범한 시민이라면 100%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정황 증거라서 가능했다.
반면 '배심원 #2'에서의 정황 증거는 매우 모호하다. 폭우가 퍼붓는 저녁 시간에 비를 맞으며 술집에서 나간 여성이 도로를 걸어가고 있었고, 그날 밤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이틀 뒤 도로 옆 개울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또한 그 여성이 술집 밖으로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의 남자 친구가 여성을 따라 나가는 걸 많은 사람이 보았고, 밖에서 두 남녀가 싸우는 장면, 여성이 길을 따라 걷는 장면, 남성 역시 그 뒤를 따라가는 장면이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이 정황만으로도 검사는 피고인을 살인범으로 단정한다. 배심원 모두 물적 증거가 없어도 정황 증거만으로 피고인을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배심원 #2'가 '12인의 성난 사람들'과 다른 지점은 배심원 가운데 한 사람이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있을 거라고 보이는 내용이 있어서다. 2번 배심원 '저스틴'은 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출산을 며칠 남기지 않은 만삭의 임산부 아내와 살고 있다. 그는 한때 알콜중독 상태였고, 중독에서 벗어나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는데, 그가 배심원으로 참여한 사건이 일어난 날, 같은 장소의 술집에서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술을 주문하고 앉아 있었으며, 여성과 남성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술집을 나와 빗속을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과정에서, 그는 운전하다 둔탁한 충격을 받고 차를 멈추지만, 사슴과 부딪쳤다고 생각하며 찌그러진 자동차를 수리한다. 그의 아내에게도 사슴과 부닥쳤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저스틴'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기 차에 부닥친 '무엇'인가가 사슴이 아니라, 술집에서 먼저 나간 여성이 아닐까 의심하고, 죄책감을 갖는다. 하지만 저스틴은 자기 눈으로 여성이 차에 치었거나, 자기가 여성을 쳤다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았기에, 의심을 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한다.
'저스틴'은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이다.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평균 또는 그 이상이며,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좋은 사람이고, 양심에 위배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있다. 그는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해 변호사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고 법적 조언을 얻는다. 배심원의 평결 논의에서는 피고인이 진짜 범인이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는데, 저스틴은 무죄 추정의 원칙과 물적 증거의 불충분한 조건 등을 내세워 피고인이 진짜 범인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스틴의 주장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논리이며, 배심원으로 올바른 태도로 보인다. 다만, 저스틴의 태도는 복합적 층위를 갖는데, 자기의 양심을 속일 수 없다는 내면의 목소리, 진짜 범인은 피고인도, 자신도 아닌 제3자일 수 있다는 판단, 자기가 저지른 범죄 행위를 합리화 하려는 모순적 태도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배심원단이 평결을 쉽게 내리지 못하면서, 재판은 기일이 늘어나고, 지방 검사 선거가 촉박한 상태에서 검사는 최대한 빨리 평결을 판단해 달라고 요청한다. 배심원단은 예외적으로 범행 장소를 답사하고, 배심원단 가운데 형사로 퇴직한 사람은 따로 증거를 수집하면서, 이 살인 사건이 사람 대 사람의 살인 사건이 아니라, 사망한 피해자가 어떤 차에 치인 뒤 유기된 사건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게 된다.
수집된 증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걸 알게 된 저스틴은 갈등한다. 하지만 물적 증거들이 있어도, 그 증거들이 결정적으로 저스틴이 뺑소니를 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으며, 사망한 피해자가 어떤 과정으로 죽게 되었는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피고인은 검사와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과거 행동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여자 친구 사망 사건에 대해서는 절대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피고인의 태도를 보는 관객은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감옥에 갇힌 피고인이 여성을 살해하지 않았다면, 그 여성을 살해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여전히 감옥에 있는 용의자가 1순위이며, 배심원인 저스틴은 자기가 경험한 사건 당일의 경험에 근거해 자신의 범죄를 의심하는 상황이고, 이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는, 완전히 다른 또 다른 사람이 범인일 수 있다. 즉 여성의 살해 사건에서 경우의 수는 세 가지가 되며, 지금 누구도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때 배심원이 해야 할 결정은 사건과 직접 관련 있는 용의자에 국한하므로, 두 가지의 경우 - 저스틴과 전혀 알 수 없는 사건이 있을 거라는 상황 - 는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결국 증거의 헛점을 찾아 용의자가 무죄라는 걸 입증하면서 배심원 사이의 날카로운 공방을 마무리하는 반면, '배심원 #2'에서는 배심원들 사이에서 논쟁이 오가면서도 결국 평결에는 합의한다. 여기서 배심원 저스틴이 갖는 개인적 양심의 문제와 함께 형사재판의 문제점을 함께 드러낸다. 피고인이 유죄 평결을 받는 결정적 이유는, 그가 여자 친구를 살해했다는 완벽한 증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살았던 과거의 행동이 원인이 된다. 즉, 어떤 범죄 용의자가 중요한 사건에서 범인으로 체포되고, 용의자로 지목되었을 때, 그 사건의 직접 증거가 없을 때, 그 사람의 과거 행적이 그의 현재를 규정하게 된다.
'배심원 #2'에서도 배심원들은 피고인의 과거 행적을 알게 되고, 그가 반사회적 태도와 행동을 했다는 것만으로 적개심을 갖는다. 이건 실제 범죄와 직접 관련이 없지만, 배심원의 평결에 결정적 단서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모두 묵인하면서도 인정한다. 우리가 '저스틴'의 입장이었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저스틴이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높은 확률로 범죄가 일어났던 그날 밤에 있었던 사고를 자백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용의자는 피해 여성의 남자 친구와 저스틴 두 사람이 될 것이고, 사건은 보다 폭 넓은 시각으로 전개되어, 사건의 실체가 입체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스틴은 오늘 내일 출산할 아내가 있고, 그 전에 이미 저스틴 부부는 쌍동이 아이를 잃었다. 부부에게 지울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과거가 있고, 지금 새로 태어날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나 부부의 지난 슬픔과 괴로움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누구도 저스틴에게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경찰에게 자백하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저스틴은 스스로 자백할 수 있을까? 그런 가운데 지금 체포되어 재판받는 살해 또는 사고로 죽은 여성의 남자 친구가 범인으로 확정되어 평생(무기징역) 감옥에 갇혀 살아야 하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모든 상황은 딜레마다. 피고인 자신이 살해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누구도 믿지 않고, 저스틴은 그날 밤 차에 무언가 부닥치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 물체가 죽은 여성이었는지, 사슴이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백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태도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심지어 피고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확신하고 기소한 검사까지도 마지막 평결에서 전혀 기뻐하지 않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건 검사가 판단하기에도 물적 증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정황 증거로만 살인 범죄의 범인을 확정했다는 걸 인정하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죄책감으로 마음이 불편하다는 걸 드러낸다.
사건의 실체가 모호하고 객관적 증거가 없을 때, 양심은 찔리지만 앙금을 남기며 현실을 외면해야 하는 경우는 누구나 겪는다. 평범한 사람도 하루에 여러 번 거짓말을 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때 거짓말은 의도했거나 악의적으로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소통의 방법으로써의 거짓말이다. 즉, 가족, 동료, 이웃, 지인 등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자연스러운 태도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저스틴이 겪는 갈등은 어쩌면 지나친 기우일 수 있다. 진짜 범인은 죽은 여성의 남자 친구이며, 그는 법의 심판을 받고 자기가 한 행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양심을 가진 사람은 사건이 일어난 날, 바로 그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괴롭고 두려울 수 있다. 그건 피고인이 만에 하나, 진짜 범인이 아닐 때, 죄도 없이 억울하게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교도소에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온전히 누명으로 수 년, 수십 년 감옥에 갇혀 지내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통계가 있고,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는 사람도 많다. 현대의 형사 재판에 모순이 많다는 건 당연하고, 모든 나라에서 인종 차별, 성 차별, 돈과 권력의 여부에 따라 범죄의 유무, 형량의 높낮이가 달라지는 세상이기에,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경찰, 검사, 판사 모두 무고한 사람들이 감옥에 갇힌다는 사실을 안다. 배심원들도 그 사실을 알지만, '때론 진실이 정의가 아니라는 걸 안다'고 말하고, 생각한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정의'를 선택할 가능성은 낮아지고, 심지어 '정의'를 외면하고 다수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선택하는 일도 발생한다. 다수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누군가 '개인'은 무고한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고, 스티븐 킹의 소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처럼, 16년 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며 마침내 탈옥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배심원 #2'에서 저스틴의 집을 찾아온 검사의 얼굴 표정과 저스틴의 표정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지난 사건의 재판, 재판의 종결은 모두 하나의 과정이며,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라고 말하는 아주 짧은 장면이 영화 전체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진실은 알 수 없고, 정의는 구현되지 않을 것이며,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다수의 판단이 옳을 수도, 그릇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어 억울하게 죽어갈 수도 있다. 세상의 모순을 합리화 하자는 게 아니라, 그런 모순과 불합리에서 우리가 애써 노력해야 할 객관적 대안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우리가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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