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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09] 앙드레 지드-그가 본 공산주의

by 똥이아빠 2011.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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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09] 앙드레 지드-그가 본 공산주의

이 글을 쓴 에니드 스타키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리스어 학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가 영국의 지배에 있을 당시 아일랜드 교육위원이었다. 에니드는 더블린의 알렉센드라 대학과 옥스포드의 소머빌 대학을 다녔고,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도 교육을 받았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여 옥스포드의 최우등상, 파리 대학의 학위, 옥스포드의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문학에 대한 공적으로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저작으로는 랭보, 보들레르 기타 프랑스 작가 연구가 있고 그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 한림원상을 받았다. 1952년 현재 옥스포드 대학의 프랑스문학 강사 및 옥스포드, 소머빌 대학의 평의원이다.

앙드레 지드와 관련해서 위키백과의 링크를 참조하시길.


글의 첫 부분을 보자.
1920년대에 앙드레 지드에게는 일대 변화가 생겼다. 즉 초기 작품에서 보는 바와 같은 고뇌의 내성인으로부터 현재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온화한 철인으로 변모한 것이다. 자기 고뇌 및 동기와 죄악에 관한 모색에서 벗어나서 지드 자신이 궁극의 자기라고 믿었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1920년대라면, 앙드레 지드가 50대에 들어선 나이다. 러시아 혁명이 1917년에 일어났고, 1925년 7월 소설 '위폐범들'의 원고를 마무리하고 그는 아프리카 탐험 여행을 했는데, 불과 1년도 못되어 돌아왔다. 적도 지방 프랑스 영토에서 백인 통치자들이 원주민을 착취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공산주의 연구를 시작하고 소련에 간 것도 이 무렵이었다. 자신은 몰랐지만 그는 기독교 정신이 극히 왕성했던 시절에도 마음 속에서는 변함없는 공산주의자였다고 선언한 일도 있었다. 
1935년 앙드레 지드는 소련 작가 회의에 메시지를 보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각 국가, 각 민족이 조만간 다 걸어가야 할 역사의 대로에서 소련은 영광스러운 선도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련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꿈에 그리기는 했어도 감히 희망할 수 없었던 신사회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성의 영역에 있어서 소련이 좋은 표본을 보여주는 것이 극히 중요합니다. 공산주의 이상은 공산주의의 적이 늘 즐겨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개미굴같은 유토피아가 아님을 소련은 우리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앙드레 지드는 스스로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할 만큼 '자유주의자'의 면모를 일찍부터 보였다. 제도나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그의 기질이 '공산주의'에 호감을 갖게 되는 동기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식민지에서 백인에 의한 원주민 학대를 보며 분노를 느끼고, 모든 억압과 불평등에 분노하는 정의로운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25년부터 친구인 소련의 위대한 작가 막심 고리키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1936년까지 앙드레 지드는 스스로 '공산주의자'라고 여겼지만, '소련기행'을 통해 더 이상 공산주의에 대해 미련을 갖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의 이상은 높게 생각하고 있지만, 현실의 체제인 '소련' 공산주의가 갖는 폐쇄성과 획일성, 심각한 억압 등에 대해 깊은 실망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1951년 앙드레 지드가 막 사망한 이후에 쓰여진 글이어서 그에 대한 최초의 평가가 되겠지만,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앙드레 지드가 가졌던 신념의 일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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