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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7.28 화성
편집자/잡글모음2018.07.28 20:30

뜨겁고 후텁지근하고, 후끈거리는 낮시간이 지나고,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해, 마치 고양이를 피해 쥐구멍으로 달아나는 생쥐처럼, 날카롭게 박히는 햇살을 피해 집안에서도 그늘진 곳을 골라 낮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조금 쉴 수 있었다. 달궈진 공기는 숨을 쉴 때마다 폐를 녹일 듯 후끈거렸고, 한증막에 들어앉은 듯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루에도 몇번씩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로 샤워를 해야 겨우 뜨거운 하루를 견딜 수 있을 정도였다. 찬물을 머리부터 쏟아붓는 샤워기 아래에서, 이렇게라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열기가 식고, 조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도시에서는 밤이 깊어도 열기가 계속 뿜어져 나와 열대야로 이어지겠지만, 다행히 내가 사는 시골 마을은 마을 주위로 울창한 숲이 있는 산이어서 해가 지면 온도가 낮아졌다. 마침 보름달이 뜨고, 뉴스에서는 오늘 화성이 지구와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시기로 불과 5천7백만 km가 떨어져 있다고 했다. 그렇다. 지구의 둘레가 불과 4만km인걸 보면, 화성까지의 거리는 100배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렇게 숫자로 표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화성이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름달 아래 선명하게 보이는 작고 동그란 별이 화성이라는 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화성이 오늘은 눈으로 봐도 크게 보일만큼 잘 보였다. 무려 5천7백만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화성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한낮에 40도 가까운 열기에 비하면, 한밤의 시원함은 뜻밖의 선물처럼 반가웠다. 침대에 누워서도 보이는 보름달 아래 붉게 빛나는 화성을 바라보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앞이 밝아지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창문 밖이 하얗게 밝았다. 아침인줄 알았으나 해가 뜬 것은 아니었다. 겨우 눈을 떠보니 밝은 빛 아래 낯선 물체가 들어왔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일어나려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지만 밝은 빛과 투명한 막으로 둘러싸인 것만 보였고, 내가 있는 곳이 낯설었다.
낯선 물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은 윤곽이 분명하지 않은 반투명 물체로, 나를 떠받치고 어딘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투명한 공의 내부에 갇혀 공중에 떠 있었다. 잠시 뒤, 나를 가둔 투명한 공은 어떤 물체의 입구로 들어갔고, 그곳은 움직이는 물체의 내부같았다. 나는 투명한 공 안에서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는데, 내부는 마치 젤리처럼 부드러웠다. 투명한 공을 실은 물체 역시 투명해서 바깥과 내부의 경계를 알 수 없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있는 것처럼 벽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나는 어두운 공간 속에 있었는데, 바로 아래 지구가 보였다. 내가 지구를 떠나 우주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꿈은 아니었고, 환상을 보는 것 같았다. 지구는 빠르게 멀어져갔고, 곧이어 달이 크게 보였다. 달 표면의 곰보자국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고, 달도 곧 빠르게 스쳐지나가면서 이내 작아졌다. 잠시 어둠의 공간에 머물러 있는 듯 했지만 눈앞으로 붉고 커다란 별이 나타났다. 나는 직감으로 그 별이 화성임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왜 화성에 있는지, 어떻게 화성에 도착했는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과학을 좋아하고, 무신론자에, 미신이나 유령 따위도 믿지 않는 이성적 인간이라고 자부하지만, 잠에서 깨어나니 우주 공간에 떠있다는 상황을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나를 싣고 떠다니던 비누방울 같은 투명한 공은 붉은 흙과 돌이 있는 땅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나는 숨을 편하게 쉬고 있었고, 중력도 느끼지 못했다. 붉은 땅을 딛으며 텅 빈 공간을 걸었다. 그곳은 황량한 곳이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낮은 언덕의 바위 아래 작은 동굴이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서니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걸어내려가서 맞닥뜨린 것은 철문이었다. 철문 앞에는 벨이 있고, 벨을 누르자 천정에서 불이 켜지고, 파란 불빛이 내 몸을 위에서 아래로 스캔했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철문이 갈라지듯 열렸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화성의 지하는 마치 지구의 어느 아름다운 계곡을 옮겨온 듯 했다. 녹색의 식물과 나무들, 아름다운 꽃들과 열매,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강과 협곡이 보였다. 강을 따라 작은 방갈로가 늘어서 있고, 허공에는 새들이 날아다녔다. 화성의 지하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이런 풍경은 꿈에도 본 적이 없었다. 이곳이 화성이라고 믿을 수 없었고, 아마 지구의 어디쯤일 거라고 생각했다.
반가워. 내 별에 온 걸 환영해.
나는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소년이었다. 그때, 그 깊은 밤, 중미산 도로에 나타났던 바로 그 소년. 나에게 '내 별에서 봐'라고 말하고 사라졌던 소년이었다. 그의 손에는 장미꽃이 들려있지 않았다.
어떻게 여길...
나는 놀라서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은 여전히 표정없는 얼굴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담배 좀 피우고 본드 좀 빨았다고 아버지 새끼가 여기로 보냈어.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의 말을 듣고는 야구방망이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저씨를 만나기 전에 다른 별을 다니면서 이상한 놈들을 몇 놈 데려왔지. 자칭 왕이라는 새끼, 지식인이라는 새끼, 알콜중독자 새끼, 자본가 새끼, 늙은 노동자, 지리학자 새끼 등등... 다들 바쁘다는 놈들인데, 알고보면 아무 데도 쓸모없는 것들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더군. 저 새끼들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아저씨가 직접 보라구.
소년은 망토를 펄럭이며 앞장 서 걸었다. 방갈로마다 소년이 말한 사람들이 한 명씩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구에서 날아오는 전파를 받아 TV도 보고, 컴퓨터로 게임도 하고, 주방에서 직접 밥도 해먹으며 살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겉으로만 보이는 생활이었다. 밤이 되고-지하공간에도 밤과 낮이 교대로 찾아온다-달이 뜨면, 채찍을 들고, 밧줄을 든 거대한 몸집의 악마들이 그들의 방갈로를 찾았다. 왕이라는 자, 지식인, 알콜중독자, 자본가, 지리학자들은 그 악마들에게 강간당했다. 밧줄에 묶인 채 채찍으로 맞으며 거대한 악마에게 강간당하는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영원히 회개해야 하고, 죄는 용서받을 수 없었다.
나는 저런 새끼들이 진짜 역겨워. 권력만 좇는 놈들, 지식 사기꾼 놈들, 자본가 새끼들, 국회의원 새끼들, 판사 새끼들... 저것들에게 진짜 지옥이 뭔지 보여줘야 했어. 아저씨도 죄를 지으면 저렇게 될 거야. 
나는 속으로 내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 떠올리려 했다. 사람을 죽이진 않았지만, 나도 저들처럼 영원한 고통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엊그제 어떤 아저씨를 만났어.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고 하더군. 씨발, 아저씨들 가운데 그런 사람은 많지 않거든. 자기가 죄를 지었다고 먼저 말하는 아저씨는 요즘 보기 드물어. 그 아저씨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며 울더군. 좀 병신같았어. 사람들이 오히려 그 아저씨에게 미안하다고 하얀 국화꽃을 던지며 울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듯 했어. 나는 그 아저씨에게 물었지. 지금 누가 가장 보고 싶냐고. 아내라고 하더군. 늙고 병든 어머니도 계시지만, 누구보다 아내가 가장 많이 고생했고,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아내는 동지이자 선배였고, 존경하는 사람이었다고. 자기 아내를 그렇게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저씨는 본 적이 없어서 좀 이상했어. 
소년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저절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나는 아직 그를 보내지 않았으므로. 그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그 아저씨를 좀 만날 수 있을까.
아니. 그 아저씨는 좋은 곳으로 갔어. 내가 있던 B-612 행성에서 가까운 곳인데, 그곳에서는 지구가 잘 보여. 하루 두 번 해가 뜨고, 두 번 해가 지는 별이지. 그 아저씨는 첼로를 잘 켜더군. 첼로 소리에 따라 별이 켜지고, 바람이 불고, 장미꽃이 피어날 거야. 그러니 그 아저씨를 찾지 않아도 돼. 아저씨는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게 그 아저씨를 기쁘게 하는 거야.
나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소년을 품에 안았다. 
알았어. 그 아저씨를 잘 부탁해. 나도 그 아저씨가 살고 있는 별을 늘 바라볼께. 그리고 잊지 않을께. 첼로를 켜는 그 별에서는 별이 반짝거리고, 바람이 불고, 장미꽃이 피고 있다는 걸.
나는 다시 투명한 비눗방울을 타고 지구도 돌아왔다. 보름달 아래 작지만 커다란 화성이 빛나고 있었다.


Posted by 똥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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