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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한국영화

[영화] 가려진 시간

by 똥이아빠 2017. 1. 9.


[영화] 가려진 시간

SF멜로라는 색다른 장르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직전에 본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와 비슷한 느낌이 있다. 이 영화도 시간여행이 중요한 모티브인데, 여기서 '시간'은 두 주인공이 겪는 서로 다른 공간 속의 시간이다.
두 개의 공간과 두 개의 시간은 또 다시 평행우주론이나 다중우주론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건 '죽은 세계'의 은유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첫번째 사건 이후 실종된 세 명의 아이들은 모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된다. 영화는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멈춘 다음, 그 멈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성민의 삶을 보여주는데, 세상이 멈춘 채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이 죽어 있거나 자신이 죽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명백히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소통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살아남은 수린만이 유일하게 성민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성민은 시간이 흘러-무려 15년-이제 어른이 된 채 나타난다는 것, 죽었다고 알려진 성민을 봤다는 것만으로 아버지와 경찰, 마을 주민들은 수린을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 등을 볼 때, 수린은 죽은 성민의 넋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승을 떠나 구천에서 15년의 시간을 떠돌던 성민의 넋은 일시적으로 봉인이 풀려 이승으로 내려오고, 그동안 보고 싶었던 수린을 만나러 온다. 하지만 이승에서의 시간은 불과 며칠의 시간에 불과하다. 구천의 시간이 이승보다 매우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것은 물리적인 이유라기보다는 '기억'의 흐름 때문일 것이다. 기억이 빠르게 지워지는 것을 시간의 흐름으로 바꿔놨을 뿐이다.
성민이 죽지 않고, 또 다른 공간에 갇혀 있었다면, 그 공간에서의 시간은 지구의 시간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민은 정상적인 공간에 있을 때와 똑같은 시간의 흐름으로 느끼고 있었을 수있지만, 사실 그 멈춘 공간 자체는 매우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다만, 모든 움직임이 멈춰 있다는 것 때문에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있다고 느낄 뿐이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수린과 성민이 헤어진다는 것보다는, 다시 만나지만 그 만남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때문일 것이고, 성민이 겪은 멈춘 시공간에서 보낸 시간 때문일 것이다. 성민이 멈춘 공간에서 15년을 보내는 것은 금기된 봉인을 해제한 벌을 받기 때문이다. 그 금기가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결국 성민은 멈춘 시간 속에서 홀로 15년 동안 벌을 받는 것인데, 그 외로움과 적막함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영화 '링'에서 사다코가 무서운 것은 그 영혼이 아니라, 우물에 갇혀 몇 년 동안 살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때다. 그것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잊혀진 채 오랜 세월 홀로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저주이고 말할 수 없는 고통임을 알게 된다.
시간여행을 하는 영화는 많은데, 이 영화는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분리를 통해 두 사람의 애틋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서로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상황을 시공간의 분리를 통해 그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결국 각자의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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