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다/미국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

by 똥이아빠 2022. 6. 6.
728x90
데어 윌 비 블러드
 
10년 전,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어제 다시 보면서, 처음 보는 영화처럼 낯설었고, 세부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150분 넘는 긴 영화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주인공인 대니얼 플레인뷰를 연기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모든 장면에서 분위기를 압도했다.
거의 모든 영화는 한 번 보고 다시 볼 마음이 들지 않거나,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지만, 소수의 영화는 두 번 이상 보게 되거나, 볼 수밖에 없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도 한 번 봐서는 작품의 진가를 느끼기 어렵다. 이건 영화를 보고, 느끼고, 읽는 게 서툰 나 같은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이번에 다시 보면서, 처음 봤을 때 몰랐던, 보이지 않던, 느끼지 못했던 이야기가 꽤 많았고, 처음 봤을 때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건, 이 영화를 처음 보던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달라졌음을 말한다. 즉, 같은 영화를 시간 간격을 두고 보면, 감각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그 달라진 차이만큼 '지금의 나'는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원작은 미국 작가 업튼 싱클레어가 쓴 소설 '오일(Oil!)'이다. 소설이 1927년에 발표되었는데,이때는 미국이 '대공황'시대여서 경제적 파탄으로 사람들이 빌딩 꼭대기에서 비처럼 떨어졌다고 말하는 시기였다.
업튼 싱클레어의 '오일(Oil!)'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그는 이미 1906년 발표한 '정글'에서도 시카고 도축공장의 위생 실태와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통렬하게 그렸고, '정글'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이 많이 팔리고, '정글'의 내용에서 도축공장의 위생 실태가 너무 끔찍하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시민들은 대통령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백악관으로 편지를 보내 목소리를 높였고, 언론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도했다.
결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전국의 도축장 위생 점검을 하는 한편, 노동 환경도 함께 점검했다. 그 결과, '육류검사법'과 '청결식품 의약법'이 의회를 통과하고, '미국식품의약안전청(FDA)'이 탄생하는 결정적 역할을 소설 '정글'이 한다.
'정글'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은 이민자들로, 매우 값싼 임금을 받으며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한다. 업튼 싱클레어의 의도는, 시카고 도축장 같은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을 드러내고, 그런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자각하고, 노동운동을 통해 현실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계급적 자각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려 했다.
한국에서 처음 '정글'을 번역할 때는 뒷부분을 아예 번역하지 않고 출간했는데, 그 이유는 주인공 저기스 러드키스가 사회주의자로 진화하는 내용이었고, 도축공장 자본가의 노동착취, 공장의 중간 간부인 반장이 저지르는 범죄, 노동자들 사이의 반목, 자본가들이 벌이는 추악한 암투와 경쟁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번역자는 판단했다. 시간이 지나 '정글'은 완역본으로 다시 출간했다.
 
업튼 싱클레어는 미국에서 보기 드문 사회주의 작가로, '정글', '오일' 같은 작품은 자본주의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오일'에서도 19세기 중반부터 시작한 미국의 석유 산업에 관한 내용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업튼 싱클레어 이전에, 미국 석유재벌 록펠러의 회사 '스탠다드 오일'의 기업 범죄를 치밀하게 다룬 탐사 보도가 있었다.
아이다 타벨은 저널리스트로, 록펠러와 스탠다드 오일이 저지른 기업 범죄를 추적해 '맥클루어 매거진'에 연재했다. 1902년부터 1904년까지 연재한 이 글은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가 미국 정유 산업을 약 95%까지 독점하게 되는 과정을 근거 자료를 제시하면서 폭로한다. 이 글의 내용은 이 영화를 분석하는데 매우 중요하며,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당시 미국 정유업계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아이다 타벨의 탐사 보도가 나오고, 미국 정부는 록펠러의 독점적 지위가 위험하다고 판단해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를 조사한다. 결국 미국 대법원은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해체를 명령한다.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는 이후 몇 개의 회사로 나뉜다.
 
업튼 싱클레어의 '오일'은 이런 과정에서 탄생한다. 즉 아이다 타벨이 탐사 보도를 하던 1902년부터 1904년까지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의 비열한 기업 운영이 세상에 드러나고, 업튼 싱클레어는 마침 자기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석유를 찾아 일확천금을 노리는 개인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시기는 여전히 석유 산업의 초기여서 마치 미국의 '황금광 시대'처럼, 개인도 석유를 발견하고, 시추하면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될 수 있는 시기였다. 석유가 중요한 자원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때만 해도 석유를 대량 소비할 산업이 없었고, 포드 자동차가 석유를 정제한 휘발유를 연료로 쓰기 시작할 때였다.
이 영화에서는 미국의 주류 정유업체인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뒷부분에 '유니온 오일'이 잠깐 등장하는데, '유니온 오일'도 나중에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에서 떨어져 나온 '셰브론'에게 굴욕적으로 인수당한다.
즉, 이 영화는 석유 대자본의 거대한 서사가 아닌, 석유를 매개로 한 개인의 욕망과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을 긁어모은 한 자본가의 실패한 삶을 보여주고 있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미국 정유 산업의 문제와 자본의 독점, 자본주의의 폐해에 관한 내용이 상당히 많은 걸 알아야 한다.
 
미국 자본주의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일부 기업이 거대하게 몸집을 키우고, 작은 기업을 인수, 합병하며 대재벌로 성장하는 과정은 의외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20세기 초기에 미국 자본주의는 JP 모건(철도, 금융), 록펠러(석유, 철도, 금융), 카네기(강철, 제련) 같은 자본가들이 '사회진화론'을 바탕으로 열등한 기업은 도태하고, 우수한 기업이 더 크게 성장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주장했다.
록펠러가 소유한 '스탠더드 오일 컴퍼니'를 비판한 책은 아이다 타벨이 쓴 '스탠다드 오일의 역사'가 나왔고, JP 모건이 소유한 은행의 부정을 폭로한 책은 루이스 브랜다이스가 쓴 '타인의 돈'이 이때 나왔다. 금융계의 다른 쪽에서는 유대 자본인 '골드만삭스'와 '리먼브러더스'가 있다.
 
20세기 초부터 미국의 거대 자본가들은 미국 정부의 내각 구성과 대통령 선거에 깊이 개입했고,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89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도 이미 대통령 선거 때 거액의 후원금을 냈고, 대기업의 임원들이 정부 요직에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루즈벨트 대통령도 JP 모건, 록펠러, 카네기 등에게 200만 달러 이상을 받은 내용이 알려졌지만, 루즈벨트는 이 정치자금을 돌려준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돌려주지 않았다.
미국 사회가 자본의 손아귀에 틀어잡히기 시작한 건 '남북전쟁'부터라고 알려졌다. 이때 이미 '모건'은 정부를 상대로 사기에 가까운 거래를 통해 거액의 자산을 불리기 시작했고, 19세기 중반 '황금광 시대'가 시작되고 곧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금값이 남군, 북군의 승리에 따라 크게 오르내리는 현상을 통해 '모건'은 금 투기를 해서 다시 큰 돈을 벌게 된다. 심지어 전쟁의 승패도 자본의 이익을 위해 조작했을 거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자본, 특히 극소수 자본가의 힘은 대단했다.
 
영화 제목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는 성경(구약) 출애굽기 7장 19절에 나오는 내용으로,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는 구절에서 가져왔다. 이 내용은 '출애굽기'의 시작으로, 애굽(이집트)의 왕 바론이 유대인들이 빠져나가는 걸 막으려 하자, 여호와가 모세에게 바론 왕이 보는 곳에서 지팡이를 휘두르라고 말한다. 모세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뱀으로 변하고, 뱀이 된 지팡이를 다시 휘두르자 나일 강물이 피로 변하고, 강, 운하, 연못, 호수가 모두 피로 변하고, 나무(그릇)과 돌(그릇) 안에 피가 고인다.
 
모든 것이 피로 변하는 세상, 잔혹하고 악랄한 세상을 뜻한다. 록펠러가 미국 오일 산업의 약 95%를 독과점하는 과정에서 개인도 석유를 발견하고, 시추하며 돈을 벌게 된다. 주인공 대니얼 플레인뷰는 처음부터 석유 사업에 뛰어든 사람은 아니다. 그는 금은을 캐는 사람으로, '골드러쉬', '황금광 시대'의 끝자락에서 무모할 정도로 단순하고 강한 집념을 가진 인물이다.
은맥을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석유를 발견하고, 그는 석유 시추사업이 돈을 벌 수 있다고 판단하고, 곧바로 석유 시추사업으로 전향한다. 대니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석유가 나오는 땅 주인을 찾아가 땅을 매입하고, 마을 주민을 설득해서 석유 시추를 하는데, 그의 사업은 크게 성공한다.
다만, 대니얼이 성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간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대니얼이 부리는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이 시추공을 파다 죽고, 그 노동자의 자식인 갓난 아이를 자식처럼 키운다. 가족이 없는-있어도 교류가 끊긴-대니얼은 일꾼의 아이를 자식처럼 키운다. 이때 대니얼의 마음은 두 가지로 나뉜다. 아버지를 잃은 갓난 아이를 진심으로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과, 갓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사업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도구로 여기는 마음이 그것이다.
대니얼의 이 복합적이고 이중적인 생각은 나중에 본심이 드러나면서 그가 추악한 자본가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친자식은 아니었지만, 자식과의 관계를 파탄낸 것처럼, 그가 석유를 끌어올릴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사이비 목회자'인 일라이 선데이를 알게 된다. 일라이는 '제3계시교'라는 종교를 이끄는 교주로, 젊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수완이 뛰어난 인물이다.
대니얼이 매입한 땅 주인의 아들인 일라이는 대니얼이 터무니 없이 싸게 땅을 매입했다고 생각하며, 자기 땅에서 석유가 나오자 어떻게든 대니얼에게 이윤의 일부를 뺐으려 한다. 일라이는 대니얼의 일꾼들이 교회에 오도록 요구하고, 헌금을 강요하며, 대중을 신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과격하면서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인물로, 한국의 사이비 목사들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대니얼은 이복동생이라며 찾아온 '헨리'가 실제로는 이복동생이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를 살해한다. 처음에는 헨리가 말하는 내용이 과거 사실과 맞았기에 이복동생이라는 말을 믿었으나, 과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헨리가 전혀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그가 이복동생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총으로 위협하며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헨리는 대니얼의 진짜 이복동생의 친구였고, 진짜 이복동생은 이미 죽은 뒤였다.
대니얼이 헨리는 죽인 건 배신당했다는 마음에서 생긴 분노였는데,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헨리를 끝내 죽인건, 분노와 함께 헨리가 다른 곳에서 자기 이름을 팔면서 또 다른 사기를 치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십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대니얼은 백만장자가 되어 거대한 성 같은 저택에서 산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혼자이며, 외롭고 희망 없는 나날을 살고 있다. 그는 술에 쩔어 폐인이 되었고, 돈만 많은 쓰레기로 변해 있었다. 
어려서 사고를 당해 귀가 들리지 않는 아들이 찾아와 멕시코로 가서 석유 시추사업을 하겠다고 말하자, 대니얼은 아들의 말을 비웃는다. 아들이 경쟁자가 되고, 십여 년 동안 한번도 찾아오지 않은 섭섭함과 원망이 터져나오며, 친아들이 아니고, 고아를 주워다 기른 거라고, 내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아이를 이용한 거라고 말한다. 이때 대니얼은 술에 취했고, 그가 하는 말이 진심인지, 위악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대니얼의 아들은 대니얼의 말에 오히려 안심하며, '당신이 내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말하고 떠난다. 친자식은 아니지만, 자식과의 관계를 파탄낸 것은 대니얼 자신이었다. 그가 모든 관계를 파탄내고 오로지 석유 사업에만 몰두하는건 오로지 탐욕 때문이다. 그에게 핏줄, 혈연, 가족도 돈을 벌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철저하고 일관된 자본가의 원형을 대니얼이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일라이가 찾아와 석유가 나오는 땅을 알려줄테니 매입하라고 말하며 10만 달러를 달라고 말한다. 이때 일라이의 말에 의하면, 미국은 대공황 상황이었다. 대공황은 1929년에 시작해 193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경제 침체기인데, 이때 오히려 미국 거대자본은 부를 축적하고 독점을 강화했다.
일라이가 사이비 종교를 이끌고, 그가 사기꾼이라는 걸 간파한 대니얼은 일라이를 모욕하고 끝내 그를 살해한다. 즉, 자본(가)이 종교(목사)를 살해한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 체제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신(종교)보다 돈(물질)이 우선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일라이를 살해한 대니얼은 '다 끝났다'고 말한다. 이 말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 직전에 한 말과 같다. 예수는 '다 이루었다'라고 했지만, 대니얼이 한 말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대니얼이 일라이를 살해하면서 '내가 제3계시교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자신이 곧 신이라는 뜻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가는 신과 같은 존재다. 다만 그 신과 같은 자본가도 자신의 탐욕으로 스스로 무너진다는 걸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인간성이 사라진 대니얼은 오로지 탐욕만 남은 자본의 허깨비이며, 그가 이룬건 자본의 탑일뿐, 그 주변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도,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친구도, 애인도, 자식도, 아내도 없는 대니얼의 모습은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인간성'의 상실을 확인한다.
 
 
 

 

반응형

'영화를 보다 > 미국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퍼스트 리폼드  (0) 2022.12.22
더 카드카운터  (1) 2022.12.18
아메리칸 지골로  (1) 2022.12.02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0) 2022.08.01
트루 그릿-더 브레이브  (0) 2022.07.10
캐시 트럭  (0) 2022.06.03
우리 아버지  (0) 2022.05.30
미저리  (0) 2022.05.04
황혼에서 새벽까지  (0) 2022.05.01
저수지의 개들 또는 창고의 개들  (0) 2022.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