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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

by 똥이아빠 2022.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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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서 새벽까지
 
무려 26년 전인 1996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한국에서는 1998년에 개봉했다. 연출은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했으나, 시나리오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썼다. 두 사람은 2007년에 '그라인드 하우스'에서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각각 한편씩 연출한 영화 '플래닛 테러'와 '데스 프루프'로 다시 만난다.
범죄 스릴러, 뱀파이어, 좀비 슬래셔 호러 영화인데, 장르라고 말하기 어려운 장난 가득한 코미디 영화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각본을 쓰고, 주인공 가운데 한 명으로 출연도 하는데, 함께 출연하는 배우가 조지 클루니다.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가 공식 데뷔작이다. 이 영화 이전에는 TV시리즈 'ER'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데뷔작으로는 작품성이 뛰어나진 않지만, 유명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의 감독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에서 조지 클루니를 꼭 출연시키고 싶었으나, 조지 클루니가 거절했다. 그 일로 쿠엔틴 타란티노는 조지 클루니에 대한 감정과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쿠엔틴을 설득해서 두 사람이 주인공으로 이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 음악이 상당히 훌륭한데, 음악을 고른 것도 쿠엔틴 타란티노였다. 음악 때문에 일부러 헤드폰을 끼고 영화를 보는데, 어지간히 좋은 스피커가 아니면 음악의 풍성함을 느끼기 어려워서 헤드폰이 더 낫다. 영화 시작하고 곧바로 한 술집 종업원과 텍사스 레인저스의 대화가 나오고, 탈옥범이자 은행강도, 살인범으로 쫓기는 게코 형제가 이들을 죽이는데, 술집 종업원이 불길에 휩싸인 채 총을 쏘는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폭소가 터졌다. 순간, '내가 싸이코패스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터무니 없이 과장한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연출이 이런 충격적 상황을 오히려 코미디로 만들고 있다는 걸 느꼈다.
즉,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장면은, 그것이 '실제'라고 느낄 때다. 폭력이 현실에 가까울수록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되고, 턱없이 과장하고 부풀린 폭력은 두려움보다 웃음을 만든다. 이 영화가 '슬래셔 영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공포를 느끼기보다 '어처구니 없는 웃음'이 나오는 까닭이다.
 
게코 형제는 캠핑카를 몰고 멕시코로 가던 제이콥 목사 가족을 인질로 잡고 멕시코 국경을 넘는다. 게코 형제는 멕시코의 한 술집-티티 트위스터-에서 다음 날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한 멕시코 갱들을 기다리기로 하는데, 벌거벗은 미녀들의 춤과 흥겨운 음악이 넘치는 초반 분위기는 좋았지만, 영화는 지금까지와 달리 전혀 다른 장르로 돌변한다.
술집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피를 흘리는 동생 게코를 보면서 무희가 갑자기 뱀파이어로 변해 사람들을 공격한다. 피 냄새를 맡은 뱀파이어들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영화는 이때부터 뱀파이어와 싸워 살아남는 서바이벌 호러 영화로 바뀐다.
영화의 서사는 매우 단순하고 간단하다. 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갇혔던 게코 형제가 탈주하면서 경찰과 시민을 살해하고 은행에서 돈을 탈취해 달아난다. 선량한 시민의 캠핑카에 올라타 이들을 인질로 멕시코 국경을 넘고, 멕시코의 한 술집에 들렀다가 그곳이 뱀파이어 소굴이라는 걸 몰랐고, 뱀파이어들에게 공격당하면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다.
 
관객은 영화 마지막 장면, 타이틀이 올라가는 순간,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알게 된다. 한밤중에 술집(젖꼭지를 돌리는 클럽)에 들어가 다음 날 아침까지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영화 제목과 술집 간판에 붙어 있는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해가 뜨고, 눈부신 햇살이 술집 벽을 통해 내부로 들어오자 뱀파이어들은 힘을 쓰지 못한다. 햇빛은 뱀파이어를 죽이고, 뱀파이어의 소굴을 파괴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술집을 떠나고, 카메라가 멀어지면서 술집을 돌아나갈 때, 술집 뒤쪽으로 무수히 많은 트럭, 캠핑카가 녹슨 채 버려진 풍경이 나타나고, 술집 뒤쪽의 모습이 마야 문명 때 세운 제단이라는 걸 알게 된다.
즉, 이 술집은 마야 문명 때, 스페인의 침략으로 죽은 멕시코인들의 원한이 서린 장소였다. 이들은 멕시코로 들어오는 모든 이방인을 적으로 여기고, 그들을 살해한다. 스페인(백인)은 멕시코 사람에게는 악마, 악귀, 뱀파이어, 사탄과 같았다. 그들이 금을 뺐으려 죽인 멕시코인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에서 옮겨온 온갖 세균으로 면역성이 없던 멕시코인들은 질병에 걸려 더 많이 죽었다.
즉, 이들 멕시코 술집의 뱀파이어들은 그렇게 죽은 멕시코인의 영혼이며, 외부의 침입자인 백인(이방인)에게 복수하는 상징적 존재들이다. 영화는 코미디 형식이지만, 각본을 쓴 쿠엔틴이 의도했는지, 연출한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마야 문명의 제단을 드러냄으로써 이것이 단지 코미디로만 보긴 어려운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여러 나라는 지금도 주로 백인 국가에 지배당하거나 종속된 상태이며, 이들은 15세기 이후 외세의 침략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백인 국가들과 미국의 자본은 중남미, 남미 국가를 식민지로 만들거나, 원자재 갈취, 정치적 탄압 같은 여러 형태로 그 나라의 독립과 민주주의, 경제 발전을 방해하고, 민중을 가난과 정치적 혼란에 빠뜨렸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메시지가 나오지 않지만, 꼭 한 장면, 마지막에 나오는 마야 문명의 신전을 보면서, 뱀파이어로 변한 멕시코인들이 오히려 측은하게 여겨졌다. 그들은 여전히 피해자이며, 고통당하는 사람들이다. 영화에서는 이들 뱀파이어로 변한 멕시코인들이 백인들의 공격과 햇빛에 모두 파괴되는데, 이것은 여전히 외세의 힘이 강력함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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