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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출판/새로나온책

일광유년

by 똥이아빠 2022.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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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유년
 
옌롄커 장편소설. 이 소설을 읽고 앞으로 10년 안에 옌롄커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노벨문학상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중국에서 모옌에 이어 옌롄커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중국문학은 세계문학의 주류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지 않을까.
특히 모옌과는 다르게 옌롄커의 작품은 중국사회를 매우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어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모옌이 받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된다. 중국 정부가 옌롄커 작품을 승인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중국공산당과 옌롄커는 서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노벨문학상 여부는 매우 상징적 사건이 된다.
 
이 소설은 두 번 읽게 된다. 앞부분에서 독자는 조금 어리둥절하게 되는데, 끝까지 읽고 나면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뒤부터 다시 읽게 된다. 그런 구조로 작품의 얼개를 짰다. 쉬운 예를 들면, 영화 '박하사탕'이 '나 돌아갈래'로 시작해서 점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인데, 이 소설이 바로 그렇다. 모두 5장으로 구성한 이 소설은 주인공 쓰마란과 란쓰스를 중심으로 산싱촌(三姓村) 사람들의 약 40년에 걸친 대하드라마를 그리고 있다.
산싱촌은 란, 두, 쓰마를 쓰는 세 성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허난성 서쪽 바러우산맥 골짜기에 있는 산골 마을이다. 공산당의 영향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한 탓에 이 산골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방식으로 생존한다.
 
40년
산싱촌 사람들은 마흔 살을 넘기지 못한다. 마흔 살을 넘겨 사는 걸 최고의 소원으로 생각할 정도로, 이 마을 사람들의 수명은 짧다. 이유는 모른다. 중국 정부는 알고 있지만 마을 주민들에게는 알려주지 않는다. 
마흔 살이면 한창 인생의 꽃을 피우는 나이인데, 이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우리는 모두 죽지만, 마흔 살에 죽는 것과 여든 살에 죽는 건 사뭇 다르다.
게다가 그 죽음은 반드시 예고를 한다. 목구멍이 막히고, 목이 아픈 증상이 나타난다. 이 증상이 나타나면 짧게는 며칠에서 길어도 몇 달 안에 반드시 죽는다. 마을 주민의 소원은 쉰살, 예순살, 일흔살, 여든살까지 사는 것이다.
마을 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려면 촌장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데, 촌장은 주민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주거 이전의 자유'가 없다. 중국 정부의 방침이면서, 산싱촌 주민들의 암묵적 규칙이기도 하다. 산싱촌 사람들은 이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면서도 이 모진 운명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한다.
 
농지와 수로
마을 촌장 쓰마샤오샤오는 마을 주민들이 일찍 죽는 원인을 농토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발상인데, 그들이 먹는 옥수수, 유채 같은 식물을 재배하는 땅이 오염되었다면, 땅을 뒤집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쓰마샤오샤오는 마을 공동 소유의 농지를 전부 뒤집어서 아래 흙을 위로 올리는 공사를 시작하는데, 각종 도구와 수레 등을 구입하려고 도시에 있는 교화원에 가서 허벅지 피부를 잘라 판매한다. 
촌장의 명령과 독려로 마을 주민들은 땅을 뒤집는 대공사를 시작하지만, 마을 주민의 힘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공사였다. 촌장은 다른 지역에서 토지 정리 공사를 하고 있는 현의 주임 루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읍소한다.
겨우 주 주임의 마음을 돌려 마을의 농토를 뒤집어 엎고, 새로 정리하는 공사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란쓰스가 처녀를 루 주임에게 받치는 일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주인공 쓰마란과 란쓰스에게 심각한 문제가 된다.
어린 쓰마란이 스무 살이 넘어 촌장이 되자, 쓰마란은 아버지가 했던 땅 뒤집기가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으로 마을 주민의 생명을 연장하는 방안을 고민하다, 멀리 있는 다른 마을에서 수로를 파 깨끗한 물을 산싱촌으로 끌어오기로 결심한다. 주민들이 단명하는 이유가 오염된 물을 마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수로를 파는 일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걸 주민들에게 알리고 설득한다.
땅을 뒤집는 공사나 수로를 파는 공사는 촌장이 마을 주민을 위해 결정한 사업이지만, 겉으로는 주민의 목숨을 연장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이 사업을 통해 촌장의 권력을 강화하고, 촌장의 권위와 권력을 휘두르는 동력이 된다.
 
피부, 인육 장사, 아동 살해
옌롄커의 소설은 원초적 충격이 있다. 모옌의 소설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모옌이 신화적, 서사적 충격이라면 옌롄커의 작품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적나라한 충격이다. 산싱촌 사람들은 마을 공사를 하기 전에 필요한 도구와 식량을 구입하는 방법으로 교화원에서 허벅지 피부를 잘라 판다. 화상 환자를 위해 피부 이식을 해야 하는 교화원에서는 피부를 팔고 싶은 사람들이 반가운데, 이때 피부 이식에 필요한 돈은 환자와 환자 가족이 부담한다. 따라서 돈 많은 환자에게 비싸게 피부를 잘라 팔 수 있다면 큰돈을 만지게 된다.
마을의 촌장들은 솔선수범하여 자기 허벅지 피부를 잘라 팔아 마을 기금으로 내놓는다. 마을 주민들도 성인 남성이라면 거의 모두 허벅지 피부를 잘라 팔아 마을 기금으로 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마을 기금으로 내지 않고, 그 돈을 들고 도시로 나가 장사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한다.
남자들이 허벅지 피부를 팔아 돈을 벌 때, 여자들은 큰 도시로 나가 몸을 팔아 돈을 번다. 주로 과부나 젊은 여성이 대상으로, 이들은 마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촌장의 명령을 들어야 한다.
란쓰스가 도시로 나가 인육장사를 하는 과정과 그 결과는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마오샤오샤오 촌장이 주도한 땅 뒤집기 공사 이후 오히려 옥수수 농사가 실패하고, 여기에 메뚜기떼가 습격하면서 흉년이 든다. 마을에서는 가지고 있는 곡식을 아껴먹지만, 식량이 다 떨어지자 촌장은 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을 산속으로 데려가 유기한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산 채로 까마귀에게 뜯어먹히고, 마을 주민들은 까마귀를 잡아 식량으로 먹는다.
 
촌장
세 명의 성씨가 살아가는 산싱촌은 촌장이 절대 권력을 휘두른다. 두싱, 쓰마란, 란바이수이, 쓰마샤오샤오 등 촌장을 지내는 사람들은 마을 주민들이 마흔 살을 넘게 살 수 있는 방안을 내놓는다. 농사 짓는 땅을 뒤집거나, 먼 마을에서 깨끗한 물을 끌어온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그걸 실천에 옮기기 위해 스스로 허벅지 피부를 교화원에 판다.
권력자라고 뒤로 빠지거나, 말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산싱촌의 촌장은 자기가 가진 권력의 권한과 의무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과 마을 주민의 재산, 노동력을 전부 동원해서 마을의 숙원사업을 진행하지만, 문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다는 점이다. 산싱촌 사람들은 주민 모두의 운명을 걸고 엄청난 규모의 사업을 진행하지만, 그들이 하는 사업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기를 쓸수록 문제가 더 커지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
 
쓰마란, 란쓰스
이 소설에서 쓰마란과 란쓰스는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사이였고, 결혼을 약속했다. 아기 때 쓰마란은 란쓰스의 엄마 젖을 란쓰스와 같이 먹었고, 어려서 서로의 벗은 몸을 보여주었으며, 혼인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쓰마란은 마침내 촌장이 되고, 그의 아버지가 추진했던 수로 공사를 계속하기로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쓰마란은 교화원에서 허벅지 피부를 팔고, 란쓰스는 도시로 나가 인육장사를 한다. 
쓰마란은 란쓰스를 좋아하지만, 아내는 두주추이를 맞았다. 세 사람의 관계는 애증으로 얽혔고, 이들은 불과 서른 중후반에 인연의 끈을 놓는다. 그 짧은 시간에 산싱촌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인간의 삶에서도 극단을 치닫고, 격렬하게 타오른다.
마을 주민들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집단으로 유기한 다음, 다시 격렬한 방사를 통해 다음 해 거의 모든 여성이 임신하고 출산한다. 아이들도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삶과 죽음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걸 어릴 때부터 온몸으로 느끼고, 체득한다.
 
중국 문학은 본질적으로 대륙의 물리적 크기와 다양성으로 다른 나라, 민족이 흉내내기 어려운 토대를 가지고 있다. 모옌의 소설에서도 잘 드러나고, 옌롄커의 소설에서도 보이는 특징은 이들이 중국 대륙의 물리적 환경과 조건을 작품에 잘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땅과 강, 산맥이 만들어내는 서사가 있으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연과 외세에 맞서 투쟁하는 상황은 거대한 역사이면서 생존의 기록이다. 중국은 오랜 역사를 이어오면서 대륙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중국의 고전은 중국 문학의 거름이며, 중국 민중의 삶은 그 자체로 역사이기에, 중국 작가들은 민중의 삶을 왜곡하지 않고 올바르게 기록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모옌이 중국의 전통, 신화, 역사를 바탕으로 민중의 삶을 긍정한다면, 옌롄커는 중국 민중의 삶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그들의 내면에 숨은 욕망과 탐욕, 삶의 의지를 찾아낸다.
옌롄커는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쓸 수밖에 없는 글'을 쓰는 작가로 알려졌다. 즉, 마음에서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글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허난성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어렵게 공부했고, 공산당원이긴 해도, 그가 중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고향의 가난한 주민들이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시선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옌롄커는 중국의 현실을 비관,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중국과 중국인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고, 작가가 해야 하는 역사적 의무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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