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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출판/새로나온책

연월일 - 옌롄커 중편집

by 똥이아빠 2022.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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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옌롄커 중편집
 
연월일
바러우 산맥에 기대 사는 산골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흉작이 들어서다. 비가 내리지 않아 작물이 모두 타죽고, 땅이 갈라져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면서, 주민들은 바러우 산맥을 넘어 흉년을 피할 도시로 떠났다.
셴할아버지는 혼자 마을에 남아 어떻게든 옥수수를 지키려 한다. 눈 먼 개와 셴할아버지는 텅 빈 마을에서 식량을 구하려는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쥐구멍을 파내 쥐들이 모아 놓은 옥수수 알갱이를 찾아 먹다가, 옥수수 알갱이를 으깨 쥐를 잡아 먹으며 옥수수를 지키는 셴할아버지는, 중국 민중의 현현이자, 중국 인민의 영웅적 모습을 상징한다.
농민에게 자연은 극복할 수 없는 절대 존재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자연의 이치에 맞는 삶을 살아온 중국 농민들은 자연 앞에 겸손하고, 모든 삶의 근거와 존재와 뿌리를 자연에 맡기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셴할아버지처럼 닥쳐오는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쉽게 굴복하지 않고, 농민의 자존심을 잃지 않으며, 인간의 존엄을 굳게 세우는 영웅 같은 인물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이는 마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청새치를 잡아 돌아오는 길에 상어떼를 만나 사투를 벌이다 결국 청새치는 뼈만 남기고 노인은 지쳐 돌아오는데, 노인의 사투와 불굴의 의지가 인간의 존재 이유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내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셴할아버지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의 목숨도, 옥수수 한 자루의 생명도. 생명은 고귀하고 위대하기에,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생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건 생명을 지키고,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옥수수 한 알을 지키는 일이 온 생명을 지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중국 농민 뿐 아니라, 세계의 농민이라면 본질에서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다만 중국은 드넓은 대륙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고, 빈곤에 찌든 농민의 삶이 수천 년을 이어오면서, 대륙에서 겪을 수 있는 지역적, 물리적 경험을 축적해 왔고, 이런 경험들이 중국 농민의 삶을 규정하고 지배했다.
자연 재해 앞에서 불굴의 의지를 보이는 셴할아버지는 중국 인민의 보여주었던 조상(영웅)의 상징이며, 중국 인민이 바라는 이상적인 농민의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 중국은 이런 '진짜' 농민이 사라졌다. 사회주의 중국의 치하에서 '진짜 농민'이 사라졌을 수 있고, 농업 생산성의 발달로 흉년을 고통스럽게 넘기지 않아도 되어, 불굴의 의지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일 수 있다.
옌롄커가 그리는 셴할아버지 같은 '진짜 농민'은 이미 과거의 인물이고, 역사가 된 이야기다. 셴할아버지는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공산주의 체제에서 태어난 농민도 아니다. 중국 농민은 수천 년을 어떤 체제나 지배권력의 간섭에 지배당하지 않았다는 걸 옌롄커는 말한다.
중국 농민은 그 자체로 역사이자 인민이다. 오래 전부터 중국 왕조는 중국 인민을 지배했다고 착각했듯이, 중국공산당도 중국 인민을 통치하고 계도한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중국 인민은 물과 같아서, 권력과 지배자의 형태를 따라 흐를 뿐, 단 한번도 지배당한 적이 없었다.
 
골수
요우스터우는 자기 자식 네 명이 모두 간질병을 앓는 유전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요우스터우의 아내 요우쓰댁은 무책임하게 죽은 남편을 원망하며 세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홀로 키운다.
한 여성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단편이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중국인민, 중국여성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요우스터우의 할아버지도 간질병이 있었고, 이 병은 집안 내력이며 유전되고 있다. 이 말은, 중국 역사에서 남성가부장제, 남성 권력의 지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걸 뜻한다. 즉, 중국 역사의 전통은 남성가부장제, 남성우월주의인데, 이런 제도는 곧 간질병, 유전병처럼 악질이다.
중국 혁명 이후 이런 남성가부장제, 남성우월주의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고, 공산주의의 평등과 인권의 확산, 민주주의의 보편화로 과거 중국의 전통이었던 불행한 제도와 인습은 사라지게 된다. 즉, 요우스터우의 자살은 중국의 바람직하지 않은 전통, 관습을 상징한다.
요우쓰댁은 새로운 중국 인민을 상징한다. 중국 혁명 이후, 혁명 세례를 받으며 새롭게 태어나는 중국 인민은 진보적이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자기 삶을 개척한다.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도, 요우쓰댁은 후손(세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삶을 개척한다.
저능아에다 간질이 있는 세 딸을 시집보내면서 집안의 재산과 곡식이 모두 사라지지만, 요우쓰댁은 후손들이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작품에서는 요우쓰댁이 세 딸과 아들의 간질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남편의 무덤에서 뼈를 파내 그 뼈를 달여 마시도록 하는데, 이는 중국의 전통, 관습의 부정적인 면을 제거하고, 혁명의 삶을 선택하는 것을 상징한다.
아버지의 뼈를 고아 먹은 자식들은 모두 간질병이 낫고, 저능아에서 정상의 인간으로 돌아온다. 인간 요우쓰댁으로 보면 자식을 향한 끝없는 모성을 보여주는 내용이자, 중국 인민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천궁도
루류밍은 이제 막 죽어서 육신에서 혼이 빠져나와 자기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가족과 이웃들이 자기의 육신을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가는 장면을 보며, 그는 쓸쓸한 마음이 든다.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나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한다. 노인이 이끄는 곳은 루류밍이 살아서 살았던 세상과는 완전히 반대인 세상이었다.
루류밍은 산골 빈촌에서 태어났는데, 가뭄이 극심하던 때 태어나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글자도 모르고, 극빈한데다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저는 루류밍은 '무식하고 가난한 농민'이자, 중국 농민 다수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 루류밍이 스물 여덟 살에 이웃 동네에 사는 열 여덟 살 여성 샤오주와 결혼을 하는데, 사기 결혼이나 다름 없었다. 샤오주의 집안도 가난해서, 결혼지참금으로 2천원을 받기로 했으나, 루류밍의 이모는 2천원을 주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루류밍은 결혼하면 어떻게든 2천원을 샤오주에게 갚기로 약속한다. 샤오주는 중국 역사의 상징이다.
루류밍은 고구마를 구워 팔고, 밭에서 채소를 길러 내다 팔며 조금씩 돈을 모은다. 촌장(권력자)의 비리를 눈 감아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촌장이 아내 샤오주에게 돈과 곡식을 주며 아내와 잠자리를 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화를 내지도, 복수를 하지도 못하는 무능하고 한심한 인간 루류밍은 끝까지 아내에게 한 약속을 지키려고 닥치는대로 돈을 번다.
이웃 장씨의 아들이 저지른 죄를 대신 뒤집어 쓰는 조건으로 700위안을 받고 2년 동안 노동교화소에서 노동을 하며 돈을 벌어 샤오주가 면회 오면 모아놓은 돈을 건넨다. 성실하게 복역한 결과, 루류밍은 8개월이나 일찍 퇴소할 수 있었고, 그가 집에 돌아오니 아내 샤오주는 촌장과 함께 그녀의 고향에 새집을 짓는다고 했다.
루류밍은 그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는데, 그가 샤오주를 위해 살았던 삶은 소나 말보다 더 힘들고 괴로운 나날이었다. 오로지 결혼할 때 한 약속을 지키려고 루류밍은 온갖 모욕과 굴욕과 마음의 깊은 상처와 육체의 고통을 견뎠지만, 끝내 자신을 버린 아내 샤오주에 대한 배신감으로 자살을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루류밍이 진짜 목숨을 내던지자, 그동안 루류밍의 고통과 굴욕을 지켜보며, 루류밍이 벌어온 돈을 쓰던 샤오주는 루류밍의 진심을 알게 되고, 그가 자살하게 된 원인이 자기에게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샤오주가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루류밍의 마음을 이해할 때, 루류밍은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다. 중국 민중과 역사가 만나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
결혼은 나의 할아버지와 했으나 진짜 사랑한 사람은 소작인이었던 리좡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할머니의 과거를 두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갈등을 빚는다.
이웃에 사는 리좡 할아버지가 한겨울에 얼어 죽고, 평생 혼자 살았고, 가족도 없는 리좡 할아버지를 위해 나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수의를 가져다 입히고, 장례를 치러준다. 
리좡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할머니는 많이 슬퍼하고 상심해 건강을 잃는다. 그리고 당신이 죽으면 리좡 할아버지 무덤 옆에 묻어달라고 부탁한다. 할머니와 리좡 할아버지는 어떤 관계였을까. 나의 할아버지는 결국 할머니의 유언을 지켜 리좡 할아버지 무덤 옆에 할머니를 묻는다.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리좡 할아버지와 할머니 무덤이 비에 쓸려 망가지고, 나의 아버지는 할머니의 무덤을 개장해 할아버지 옆으로 다시 모신다. 할머니는 평생 할아버지와 살았고, 자식을 낳았으며 원만한 삶을 살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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