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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불릿 트레인

by 똥이아빠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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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릿 트레인

 

 
일본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마리아비틀'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마리아비틀'은 작가의 '킬러 시리즈' 가운데 2편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그래스호퍼', '마리아비틀', '악스'를 일컬어 '킬러 시리즈' 3부작으로 부르고, 장르소설이자 하드보일드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원작 소설을 아직 읽지 않았으므로(죄송, 빠른 시간에 읽고 리뷰 쓰겠습니다) 영화만 보자면, 원작 소설이 가진 영화적 장치(시나리오, 서사, 트릭, 반전, 캐릭터)가 매우 훌륭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도쿄에서 모리오카까지 가는 신칸센에는 몇 명인지 알 수 없는 킬러들이 타고 있다. 겨우 2시간 30분. 누군가는 보스의 아들과 천만 달러의 돈가방을 지켜야 하고, 누군가는 돈가방을 몰래 빼내야 하며, 누군가는 그들을 죽여야 하고, 서로를 죽이는 임무를 맡았지만, 정작 자신이 누군가에게 당할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한 채 각자 임무를 완수하려 한다.
 
등장 인물이 많아서 주인공을 특정하기 어렵지만, 영화에서는 레이디버그(브레드 피트)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처음에 나오는 인물 순서로 보면, 누군가 아들을 죽이려 해서 범인을 잡으러 기차를 탄 기무라, 동료 살인청부업자 카버 대신 기차를 타게 된 레이디버그, 어린 소녀이자 무서운 킬러 프린스, '백의 사신'의 요청으로 '백의 사신'의 아들과 돈가방을 목적지까지 데리고 가는 쌍동이 형제 레몬과 텐저린, 레이디버그를 죽이려는 울프, 나무독뱀을 쓰는 호넷, 기무라의 아버지, 백의 사신 등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열차 안에 있는 킬러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로 설정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기무라의 아버지가 기차에 탑승하고,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백의 사신'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킬러들은 살기 위해서라도 서로 힘을 모아 '백의 사신' 일당과 맞서야 하는 상황.
 
영화는 원작 소설에서 진짜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다루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으로 일관한다. 소설을 영화로 만들려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데, 영화의 특징을 살리려면 아무래도 눈요기가 확실한 액션 쪽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다보니 원작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 즉 '선과 악'에 관한 깊이 있는 질문을 영화에서는 던지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자본으로 만들다보니 소설의 등장인물이 일본인에서 서양인으로 바뀐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왜색(일본의 색채)을 의도적으로 강하게 드러낸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모양새가 되었다.
일본의 색채를 드러내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드러내되 너무 노골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보여주면 될 것을, 대놓고 일본을 강조하는 게 오히려 미장센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영화의 미장센을 놓고 보자면, 이 영화는 원작 소설에서 보여주는 하드코어, 하드보일드한 연출을 기조로 하면서, 의외로 밝고 코믹한 설정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이것도 나쁘지 않지만, 아예 처음부터 느와르로 연출을 했다면 어땠을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킬 빌'을 예로 들 수 있는데, '킬 빌'은 일본과 중국 특히 일본의 문화와 풍경을 많이 가져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드보일드, 느와르 미장센을 고수했기 때문에 작품성을 인정받은 경우다.
이 영화도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깊은 우울함, 잔혹함, 비정함, 사악함을 밀고 나갔다면 소설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성 즉 '선과 악'에 관한 질문을 관객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영화의 분위기가 지금처럼 밝고 경쾌하기 때문에 폭력, 죽음, 살인, 사악함, 비열함 등이 희화화되고, 깊이가 없는 풍경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인공 브레드 피트가 일부러 한국까지 날아와 영화를 홍보했고, '빵형'을 몹시 좋아하는 한국 관객들이지만, 이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고, 당연히 '왜색'에 그 원인이 크다고 생각했다. 다른 면으로는 심각한 내용에 가벼운 연출이 문제인데, 특히 뒤로 가면서 연출과 이야기의 개연성이 약하고, 과장이 심하다.
이 영화를 깔끔하게 연출하려면, 기차를 탈선시키지 않고, 기차 안에서 모든 인물의 운명이 결정되어야 하며, 기차가 액션을 보여서는 안 된다. 기차의 충돌과 탈선은 과장되고 터무니 없는 액션이며, 이는 관객에게 더 많은 걸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온 무리한 연출이었다.
내가 감독이고, 이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쓴다면, 첫번째 시놉시스는 '열차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다'가 될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꽤 많은 사람이 살아남는다. 그건 관객의 눈치를 본 것이며, 화끈하지만 '착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감독의 '선한 의도'일 수는 있지만, 진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즉, 데이비드 리치 감독(브레드 피트의 거의 모든 영화에서 대역을 맡았던 인물로도 유명하다)은 그저 유쾌한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한 줄 시놉시스는 '킬러들이 열차에서 만나 싸우지만 거의 모두 살아남는다'가 되었는데, 그건 투자자와 관객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이나 영화를 읽거나 보고 나면, 저절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예를 들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올드보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같은 작품은, 평론가들이 그 작품이 훌륭하다고 말해서 훌륭한 작품이 아니라, 그 작품을 영화관에서 보고 나오면서 곧바로 다시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고, 뭔가 마음 저 깊은 곳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마구 튀어나오려는 충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좋은 영화다.
반면, '불릿 트레인'은 그런 충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건 여러 요인이 있는데, 인물의 서사가 핍진하지 않거나, 서사가 중층 구조로 이루어 있지 않거나, 영화(주제)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이 극중 인물에게 몰입한 경우, 인물을 향해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그 자체로 하고 싶은 말이 생긴다. 영화의 서사가 중층 구조일 때, 관객은 그 서사를 이해하려고 생각한다. 생각하면 질문이 생기고, 질문에 답하려는 자신을 발견한다. 또한 영화 자체가 가진 주제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질 때, 관객은 그 질문을 곰곰 생각하고, 나름의 답을 찾으려 한다.
불릿 트레인은 그런 점에서 충분한 감동을 주지 못하고, 인물의 개성, 서사의 중층 구조, 핍진성에서 많은 부족함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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