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다/미국영화

콜럼버스에서 건축물의 의미

by 똥이아빠 2023. 3. 22.
728x90

콜럼버스에서 건축물의 의미

진과 케이시는 우연히 만난다. 두 사람은 담배를 피우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이 영화는 '건축물'이 매우 중요한 모티프로 작동하고 있는데, 첫 장면이 '밀러 하우스' 내부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밀러 하우스(Miller House)' 길 건너편에 '제일 교회(First Christian Church)'가 있고, '밀러 하우스' 바로 옆에 케이시가 일하는 '클레오 로저스 기념 군립도서관(Cleo Rogers Memorial County Library)'이 있다. 즉, 이 유명한 세 건물이 삼각형을 이루며 매우 가까운 곳에 모여 있어서, 케이시는 잠시 쉬는 시간에 도서관 앞에 나와 '제일 교회' 건물을 바라본다.
'밀러 하우스'는 에로 사리넨이 1957년 지은 건물로, 50년대 미국 모더니즘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어디를 봐도 정확한 직선으로 구성된 선과 면이 보이고, 내부는 흰색을 전체 배경으로, 작은 직사각형의 책장과 문 등을 각기 다른 색으로 디자인해서 몬드리안 효과를 내고 있다. 다만, 이 건물 내부에서 바닥에 깔린 양탄자는 옥의 티로 보인다. 건물 내부 인테리어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색과 디자인을 하고 있다.
건축가 에로 사리넨과 인테리어 디자이너 알렉산더 지라드가 밀러 부부를 위해 지은 건물인데, 2008년, 제니아 밀러가 사망하면서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이 관리를 맡아 시민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한 건물이다. 여기서 '콜럼버스'의 지리적 조건도 흥미롭다. 미국에는 같은 지명이 여러 곳에 있는데, '콜롬버스'는 오하이오주의 대도시가 가장 유명하다. 영화에 배경이 되는 '콜롬버스'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서남쪽으로 약 3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도시다. 북쪽으로 가장 큰 도시는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이고, 남쪽으로는 켄터키주 '루이빌', 동쪽으로 오하이오주 '신시내티'가 있다. 여기 '콜롬버스'에 사는 청년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도시로 떠나는데, 뉴욕, 로스엔젤레스처럼 대륙의 끝으로 가거나 그나마 가까운 시카고로 간다.



'콜롬버스'는 인구 5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면 단위 지역으로, 시카고에서 시작해 남쪽 끝 앨라배마주의 바닷가 도시 모빌에서 끝나는 65번 고속도로가 그나마 큰 도로인 한적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이 작은 도시가 '건축의 메카'라고 불리는 건, 미국 건축 역사에서 의미 있는 건축물이 여럿 모여 있기 때문이다.
첫 장면에 나온 '밀러 하우스'도 그렇고, 케이시가 담배를 피며 바라보는 '제일 교회(First Christian Church)'는 우리가 생각하는 뾰족한 첨탑 건물이 아닌, 바우하우스 영향을 받은 모던한 건축물이다. 이 교회는 '콜럼버스'에서 사업하며 돈을 번 어윈 밀러(밀러 하우스의 건축주이기도 하다)가 핀란드 출신의 건축가 엘리엘 사리넨에게 의뢰해 설계한 건물로, 1942년에 지었다. 이 교회는 미국에서 종교 건축물로는 최초로 모더니즘 형식으로 지은 특징과 의미가 있어서 케이시가 건축을 공부하게 된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케이시가 바라보는 교회는 정문으로, 그리 크게 보이지 않지만, 이 건물은 매우 큰 건물이다. 정면 입구 위에 흰색 타일처럼 보이는 콘크리트 벽면 사이로 눈에 잘 띄지 않는 가느다란 십자가가 보인다. 건물 앞면의 전체를 보면, 현관과 그 위에 십자가가 건물의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에 있어, 비대칭을 이룬다. 이 비대칭은 보는 사람의 대칭 감각을 자극해, 긴장감을 일으키고, 불균형 속의 균형, 비대칭 속의 조화를 이루는 놀라운 예술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현관 정면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에 거대한 탑이 직선으로 높게 솟았는데, 중세 교회의 첨탑을 현대의 모더니즘으로 재해석한 건물이다. 이 탑의 높이를 위압적이지 않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정문 왼쪽에 서 있는 거대한 나무다. 오른쪽의 첨탑이 인간이 만든 건물이라면, 왼쪽의 나무는 자연이 만든 생명으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 이걸 의도했다면 참으로 놀라운 디자인이다 - 공간을 이루고 있다.




'제일 교회' 맞은 편에 케이시가 일하는 '클레오 로저스 기념 군립도서관(Cleo Rogers Memorial County Library)'이 있는데, 이 건축물은 중국계 미국인 I. M. 페이가 설계한 건물이다. 붉은 벽돌 건물로 역시 모던하게 지은 이 건물을 설계한 I. M. 페이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독특한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건축가다. 
바우하우스를 설립한 발터 그로피우스에게 하버드 대학에서 직접 건축을 배운 건축가로, 현대 모더니즘의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건축가로는 최고의 영예인 '프리츠커상'을 비롯해 AIA 금메달, RIBA 로얄 금메달 등을 모두 받은 대단한 건축가가 이렇게 소박한 작은 도서관을 설계한 것도 특별하고 놀라운데, 여기가 시골이라는 점이 더욱 대단하다.
'클레오 로저스'는 1905년에 태어나 1964년 사망한 도서관 사서 '클레오 로저스'의 이름에서 온 것으로, 클레오 로저스는 이 도서관에서 28년 동안 사서로 일했고, 그 뒤로도 9년을 더 보조 사서로 일한 여성 사서로 알려졌다.
도서관 광장에 있는 손 모양의 대형 조형물은 헨리 무어의 작품 '거대한 아치(Large Arch)'다. 1898년, 영국 탄광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헨리 무어는 예술에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닫고 일찍부터 미술 공부를 시작한다. 그는 암울한 시대를 살았지만 운 좋게 살아남았고, 1946년, 전쟁이 끝난 직후 미국에서 전시회를 열어 대중과 평단의 인정을 받는다.
그의 작품은 추상조형으로 부를 수 있는데, 이 도서관 광장에 서 있는 조형작품은 1963년에 만들기 시작해 1969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진과 케이시가 만나는 시점은 영화가 시작하고 25분이 지나서다. 우연이긴 하지만, 케이시가 일하는 도서관과 진이 묵고 있는 숙소 '인 앳 어윈 가든스(Inn at Irwin Gardens)'가 바로 붙어 있어서 두 사람의 만남이 자연스럽다. 게다가 바로 전날, 케이시는 엄마가 일하는 병원으로 마중갔다 우연히 병원으로 들어가는 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진은 케이시를 보진 못하지만, 진이 동양인이고, 콜럼버스를 방문해 건축 강연을 할 이교수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이교수와 관련 있는 인물이라고 추측했을 건 충분히 알 수 있다.
진이 묵는 '인 앳 어윈 가든스'는 콜럼버스에서 사업을 하던 조셉 어윈이 빅토리아 양식으로 1864년 완공한 건물이다. 지금보다는 훨씬 작게 지었는데, 1890년 확장 공사를 하면서 집의 규모가 커졌다. 가족이 늘면서 4대가 한 집에 살기를 바라는 어윈의 뜻대로 건물을 확장하면서 리모델링 했다. 조셉 어윈은 콜럼버스에서 사업을 하며 은행도 설립했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어윈 유니온 뱅크'를 만든 사람이다. 1870년대 '어윈 유니언 뱅크(Irwin Union Bank & Trust)를 설립했고, 많은 돈을 벌면서 집을 늘린 걸 알 수 있다.
1910년, 매사추세츠에서 활동하던 건축가 헨리 필립스가 지금의 형태로 리모델링했는데, 이때 1864년에 지은 주택의 형태는 많이 사라졌다. 호화로웠던 빅토리아 양식을 대부분 제거하고, 좀 더 날렵한 에드워드 시대 스타일로 바꿨으며, 이탈리아 대리석, 프랑스와 웨일즈에서 수입한 타일, 영국에서 수입한 참나무 등을 사용한 고급 주택이다. 지금은 진이 묵는 것처럼, 숙박시설로 쓰이고 있다.



케이시는 지역 언론사를 방문해 뉴스룸 보조 지원서와 인턴쉽 지원서를 제출한다. 케이시가 방문한 지역 언론사는 '더 리퍼블릭(The Republic)으로 1872년, 아이작 T 브라운이 주간 신문으로 창간했다. 창간할 때의 모토는 '우리는 신문을 바르톨로뮤 카운티 주민의 대변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정치적 고려와 관계없이 지역사회의 이익을 위한 모든 조치를 옹호할 것'으로 밝혔다.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지역 신문으로 출발한 '더 리퍼블릭'은 이후 대를 이어 로버트 브라운, 제프리 브라운으로 이어지면서 점차 회사 규모를 키웠다. 2015년 브라운 가문은 텍사스의 대형 언론사 AIM 미디어 텍사스에 회사를 매각했다.
'더 리퍼블릭'의 건물은 1971년에 새로 짓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설계회사 SOM(Skidmore, Owings & Merrill)이 설계했다. SOM은 이 건물 말고도 콜럼버스 시청 건물도 설계해서 이 영화 후반에 등장한다. SOM은 한국에서 '63빌딩'과 부산 '엘시티'를 설계했다.



케이시는 인턴쉽 지원서를 내고 돌아가려다 길에서 우연히 진을 만난다. 케이시와 진이 찾은 두번째 건물이 과거에 '어윈 유니언 은행'이었던 '어윈 콘퍼런스 센터'다. '어윈 유니언 은행'은 1954년 완공했는데, 이 은행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에로 사리넨은 '제일 교회'와 '밀러 하우스'를 설계한 엘리엘 사리넨의 아들이다.
아버지 엘리엘이 '제일 교회'를 종교 건물로는 최초로 모더니즘 양식으로 지은 것처럼, 에로 사리넨도 '어윈 유니언 뱅크'를 지을 때, 건물 전체의 벽면을 통유리를 사용해 당시로는 파격의 형태로 지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건축물 대부분은 5번가를 중심으로 가까이 모여 있다. 진이 묵는 '인 앳 어윈 가든스' 옆에 '클레오 로저스 기념 군립도서관'이 있고, 그 옆에 '밀러 하우스'가 있으며, '밀러 하우스' 길 건너 바로 '제일 교회'가 있고, '밀러 하우스'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어윈 유니언 뱅크'가 있다. 즉, 오래 전부터 5번가는 콜럼버스의 중심가였던 걸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다시 제임스 스튜어트 폴셱이 설계한 건물을 보러 간다. 영화에서는 정확한 건물 명칭이 나오지 않는데, 지역 병원의 정신과 병동을 잇는 다리인 이 건물은 'Columbus Regional Hospital Mental Health Services'다. 이 장면에서 진은 자기가 알고 있는 폴셱의 건축 철학에 관해 케이시에게 설명한다. 건축을 모른다던 진이 오히려 건축에 관심이 많고, 아는 것도 많은 케이시에게 설명하는데, 이 장면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폴셱처럼 미국의 최고 건축가를 케이시가 모르고 있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고,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진의 말을 듣는데, 그렇다면 케이시는 이제 막 건축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케이시가 세번째 좋아하는 건물은 '제일 재정 은행(First Financial Bank) 건물로, 2006년 완공한 건물이다. 건축 설계는 데보라 버크(Deborah Berke)가 했고, 현대 모더니즘 건물로, 콜롬버스 건축물의 역사를 이어가는 뛰어난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다.
늦은 밤, 진과 함께 여기를 찾은 케이시는 이 건물을 보면서 위안과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 건물을 발견하면서 케이시는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고,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를 찾아보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콜롬버스'가 별 볼일 없는 작은 소도시가 아니라, 대단한 건축물이 많은 멋진 도시라는 걸 깨닫는다.
케이시는 콜롬버스를 방문한 데보라 버크를 만나고, 뉴헤이븐으로 오라는 말을 듣는다. 그곳에서 지역 대학에 다니며, 예일대학교에서 청강도 하고, 뉴욕에 있는 데보라 버크의 건축설계회사에서 인턴을 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케이시는 엄마와 함께 콜롬버스에서 살겠다며 떠나지 않았다.



엘리엇 사리넨의 아들 에로 사리넨이 설계한 '노스 크리스천 교회(North Christian Church)'는 콜롬버스의 랜드마크로 알려질 만큼 유명한데, 높이 60미터에 이르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탑도 독특하지만, 교회 내부는 더욱 놀랍다. 기존 전통 교회와는 달리, 내부는 매우 단순하고, 육면체의 천정 속에 다시 육면체의 공간이 있고, 가운데도 역시 육면체의 불투명 유리를 붙여 거대한 보석이 박힌 시각적 효과를 드러낸다.
이 교회는 1964년 준공했다. 에로 사리넨의 마지막 작품이어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진과 케이시는 이 교회 안에서 종교와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케이시는 진에게 '아버지에게 건축은 어떤 의미였을까'를 묻는다. 진은 '모더니즘, 영혼이 깃든 모더니즘'이라고 말하는데, 현대 건축에서 모더니즘은 1919년 '바우하우스'로 시작해 지금까지도 주류 건축철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혼이 깃든 모더니즘'은 '휴머니즘'과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노스 크리스천 교회'에서 다음 장소인 '밀 레이스 공원(Mill Race Park)'까지는 거리가 좀 있는데, 두 사람이 이동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지만, 그 사이에 '더 리퍼블릭'의 건물이 고정된 카메라에 한동안 비추고, 시간이 지나가는 걸 보여준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는데, 이번에는 '밀 레이스 공원'이다. 공원에는 전망대 건물이 있고, 사람들이 계단을 따라 오르내린다. 이 전망대 꼭대기에 오르면 넓은 평야 지대를 볼 수 있다. 
'밀 레이스 공원'은 마이클 밴 바켄버그(Michael Van Valkenburgh)가 설계하고 스탠리 세이토위츠(Stanley Saitowitz)가 구조물을 만들었는데, 미국의 100대 공원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공원이다. 이 공원에는 26미터 높이의 전망대, 지붕이 덮인 다리, 원형 극장 무대, 피크닉 대피소, 낚시 부두, 보트 창고, 농구 코트 등이 있는데, 해마다 홍수로 공원의 약 60%가 물에 잠긴다.



진과 케이시는 언덕에서 전망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공원의 원형 호수 가장자리 벤치에 앉아 대화를 이어간다. 건축을 중심으로 각자의 삶에 대해서도 탐색하는데, 벤치에서 보이는 다리가 'New Brownsville Covered Bridge in Mill Race Park'이다. 이 다리를 건설한 사람은 버질 테일러(Virgil Taylor)로, 다리 입구에 기념패를 붙여 놓았다. 버질 테일러는 1917년에 태어나 2006년에 사망했는데, 밀 레이스 공원과 이 다리를 개축하는데 큰 공헌을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진과 케이시는 이 다리를 건넌다. 케이시는 엄마 이야기를, 진은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케이시의 엄마는 결혼에 여러 번 실패하면서 마약 중독자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지금은 박스 공장, 건물 청소원 등으로 일하며 과거에서 벗어나고 있다. 케이시가 콜럼버스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엄마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보호 본능 때문이다. 
진도 의식이 없는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입장이다. 그는 지금 원고를 번역하고 있는데, 출판사에서는 계속 독촉하고 있고, 갑작스러운 불행 앞에서 난감한 상황이다. 진에게 다른 가족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진의 어머니는 언급되지 않고 있고, 진도 낯선 콜럼버스에 계속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진은 아버지가 이대로 사망하는 것도, 다시 회복하는 것도 딜레마다. 그는 실존적 고민에 빠졌고, 이와 비슷하게 케이시도 갈등한다.



케이시 엄마는, 케이시가 콜럼버스를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길 바란다. 하지만 케이시는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강박이 있고, 자기가 없으면 엄마 혼자 살아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진은 그런 케이시에게 엄마 말대로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케이시는 엄마 핑계를 대고 있지만,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한다.
진은 밤에 혼자 콜럼버스 시청 건물에 가서 건물을 보고, 다음 날 아버지의 제자이자 친구 앨리너와 함께 '밀러 하우스'를 둘러보고, 앨리너의 집에서 간단하게 와인을 마신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될 뻔한 사이였지만 연상의 앨리너가 거절하는 바람에 더 이상 연인으로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오래 전 사랑을 고백한 상대를 다시 만난 진은 다시 갈등하지만, 이번에도 앨리너는 거절한다.
집으로 돌아온 진은 그곳에서 케이시를 만나고, 두 사람은 케이시의 엄마가 일하는 '더 리퍼블릭' 건물 건너편에서 건물 청소를 하는 엄마 친구에게 전화한다. 두 사람은 함께 밤을 지내고, 진은 앨리너와 병원에 가서 아버지를 보지만, 아버지 때문에 이곳에 발이 묶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진과 케이시는 시청 건물 계단에 앉아 현실과 미래를 이야기한다. 케이시는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떠나야 할 운명이고, 진은 떠나고 싶은데 머물러야 한다. 두 사람은 계단에 앉아 밥(빵)을 먹고, '밀러 하우스' 내부를 둘러본다. 그리고 진은 아버지가 서서 바라보던 뒷마당의 풍경을 바라보고, 케이시는 앨리너가 했던 것처럼 진을 찾아다닌다.
콜럼버스 시청 건물도 SOM이 디자인했고, 1981년 완공했다. 건물 정면에서 계단으로 오르는 가장 위쪽에 거대한 구조물이 있는데, 가운데가 약간 떨어져 있어서 긴장감과 함께 예술적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약간의 공간이지만, 구조물이 붙어 있지 않다는 것만으로 건물의 안과 밖은 서로 자유롭게 통하는 공간감과 개방성을 느끼게 된다.



케이시는 늦은 밤, 다시 '제일 재정 은행' 건물을 찾고, 진은 병원에서 의식이 없는 아버지 곁에 앉아 책을 읽는다. 케이시는 떠날 결심을 굳힌다. 잠깐 만났지만 진을 만나고, 진에게서 격려의 말을 들은 것이 케이시가 행동하는데 의미 있는 영향을 끼쳤다는 걸 알 수 있다.
진은 앨리너에게 부탁해 케이시가 뉴헤이븐으로 가서 지역 대학도 다니고, 데보라 버크가 운영하는 건축설계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하도록 도울 것으로 보인다. 케이시는 엄마를 두고 떠나는 것을 망설이고 두려워하지만, 이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필연적 결별도 인정한다.
케이시가 존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앨리너의 차를 타고 떠나면서 '로버트 스튜어트 다리(The Robert Stewart Bridge)가 보이고 타이틀이 올라간다. 이 다리는 북미 최초의 사장교로 진 뮬러(Jean Muller)가 설계한 교량이고, 1999년 완공했다. 처음 다리 이름은 '두번째 다리(Second Street bridge)'였으나 2013년 인디애나 주지사인 마이크 펜스가 전 콜럼버스 시장이었던 로버트 스튜어트(Robert N. Stewart)를 기리기 위해 다리 이름을 '로버트 스튜어트 다리(Robert N. Stewart Bridge)로 바꿨다.
이 교량을 설계한 진 뮬러는 교량 엔지니어로 1925년에 태어나 2005년 사망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교량 엔지니어로 이름을 알렸으며, 1951년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과 프랑스, 캐나다 등에서 수많은 교량을 건설했다. 



남겠다고 했던 케이시는 떠나고, 잠시 머물 생각이었던 진은 남았다. 두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좋은 친구가 되었고, 두 사람을 이어주는 대화의 소재는 건축물, 건축 공간이었으며,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건축물과 달리, 사람의 삶은 자연스럽게 변하고 움직이게 된다는 걸 깨닫는다.
케이시는 건축물을 통해 위안을 받아 스스로 건축 공부를 했으며, 진은 유명한 건축가 아버지를 둔 덕분에 자연스럽게 건축을 이해하는 사람이 된다. 어느 쪽이든 건축물, 건축 공간, 건물과 공간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느끼고, 알게 된 두 사람은 서로를 보다 편하게 이해한다.
케이시와 엄마, 진과 아버지는 서로 애증과 갈등 관계로 보이지만,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헤어짐을 전제하고 있고, 자식 세대인 케이시와 진은 이미 오래 전 세워진 건축물들을 보면서 앞선 세대를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단서를 얻는다.
이 영화에서 건축물과 공간은 케이시와 진에게 부모의 품이기도 하다. 그건 과거의 유산이면서, 현재에도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며, 그 공간에서 쉬고, 편안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들이 보는 건축물은 그리 오래지 않은, 현대의 모더니즘을 보여주는 건물들이며, 모더니즘 세대를 살아온 앞선 세대의 꿈과 희망, 합리적 질서를 받아들이고 공감하면서 케이시와 진은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용기를 갖는다.

 
반응형

'영화를 보다 > 미국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파트1  (0) 2023.07.09
레드 로켓  (0) 2023.06.02
3000년의 기다림  (0) 2023.05.19
탑건 : 매버릭  (0) 2023.04.28
존 윅 4 - 고딕과 매트릭스가 결합한 혼종 판타지  (0) 2023.04.09
더 웨일  (0) 2023.03.04
해리건 씨의 전화기 - 스티븐 킹  (0) 2023.02.16
조지타운  (0) 2023.02.06
가재가 노래하는 곳  (0) 2023.02.04
1883 - 미국 미니시리즈  (0) 2023.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