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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1883 - 미국 미니시리즈

by 똥이아빠 202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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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 - 미국 미니시리즈
 
우연히 발견했지만, 알고보니 엄청 유명한 미니시리즈 '옐로우스톤'의 프리퀄. '옐로우스톤'이 메인이지만, 이 작품 '1883'을 먼저 보길 잘 했다. 미국 역사의 흐름대로 보자면, '1883', '1923' 그리고 '옐로우스톤' 순서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이 시리즈를 보기로 작정한 가장 큰 이유는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 바로 테일러 쉐리던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계에 널리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이 개봉했을 때 꽤 충격받은 기억이 있다. 연출도 좋았지만, 시나리오가 처음부터 끝까지 극한 상황을 밀어부치는 힘이 놀라웠고, 드라마의 사실성, 서사의 핍진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에 관한 예전 글은 https://marupress.tistory.com/2828 에서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시작으로 '로스트 인 더스트(https://marupress.tistory.com/2812)'와 '윈드 리버(https://marupress.tistory.com/2426)'까지 해마다 놀라운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 세 작품을 묶어 '국경 3부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역은 주로 텍사스주인데, 작가 테일러 쉐리던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가 태어나 자란 고향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 그의 작품에서 장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람은 어디에든 살지만, 사람이 사는 지역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자연 환경의 영향을 받아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향이 결정된다. 사람은 늘 자신이 주체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한다는 걸 의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하며 살아간다.
테일러 쉐리던은 텍사스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70년에 태어났으니 이제 53세가 된다.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텍사스 주립대학에 입학해 연기 공부를 하지만 워낙 가난해서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배우가 되었으나 이름을 드러내지 못하고, 뉴욕과 로스엔젤레스에서 단역 배우를 하거나, 심지어 노숙 생활까지 한다.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을 이름 없이 보내며 고생하다 배우를 포기하고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로 마음 먹고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를 쓴다. 이 작품 하나로 테일러 쉐리던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그의 전성기가 시작한다. 그의 나이는 40대 중반이고,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의 노력으로 꿈을 이룬 것이다.
 
위의 세 작품이 2015, 2016, 2017년 해마다 터지면서 그가 쓴 시나리오는 흥행 보증수표가 되었고, 이 세 작품에 이은 새로운 작품이 바로 텔레비전 미니시리즈인 '옐로우 스톤'이었다. '옐로우 스톤'은 2018년 1부를 시작으로 2023년 현재 5부를 제작하고 있는 대하 장편 시리즈이며, 미국인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다.
'옐로우 스톤'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1883'은 2021년에 개봉했고, 모두 10부작으로 제작했으며, 이후 제작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두번째 프리퀄인 '1923'도 있는데, 시즌 1(8부작), 시즌 2(8부작)으로 구성한 것까지 확인했다.
테일러 쉐리던은 '1883'을 '10시간짜리 영화'라고 말했는데, 10부작을 다 보고나니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보통 2시간으로 끝나는 영화와는 사뭇 다른, 장대한 대하드라마를 본 느낌이고, 1883년 당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 겪었던 고난과 그곳에서 뿌리 내리고 살아온 원주민의 삶을 보다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1883년이면 미국이 영국과 전쟁을 벌이고 독립한지 100년이 되는 해인데, 여전히 미국 중서부 지역은 문명이 도착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였다. 물론 기차 선로가 놓이고, 1869년에 이미 대륙 횡단철도를 개통해 기차가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나오는 배경은 철도가 지나가는 경로와는 달라서, 온전히 말, 마차만으로 대륙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과거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발달한 운송수단은 강을 따라 움직이는 수송선이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이주민들 역시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와 기차를 타고 포트워스에 도착한다. 이때는 댈러스가 지금같은 대도시가 아니었고, 댈러스와 포트워스는 거의 같은 곳에 있어서 중서부 내륙으로 들어가는 출발점이 되는 곳이었다.
 
여담이지만, 1883년에 조선의 고종은 미국으로 외교사절단 보빙사를 파견한다. 이들은 1883년, 뉴욕에서 미국 21대 대통령 체스터 A 아서와 회담을 했다. 조선에서 고종은 1883년, 태극기를 조선의 '국기'로 공식 선포했다. 미국은 동부에서 서부로 이주민들이 진출하는 한편, 미국 군대는 여전히 아시아에서 각종 통상과 전쟁에 개입해 큰 이익을 보고 있었다.
 
'1883'은 본편인 '옐로우 스톤'의 주인공 존 더튼에게는 증조 할아버지인 제임스 더튼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더튼 가족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이주민과는 달리, 그의 선조가 일찍 미국으로 이주했고, 미국 남부에서 살다 더 좋고, 넓은 땅을 찾아 중서부로 이주하기로 작정하면서 겪는 이야기인데, 서사를 끌고 나가는 주인공은 제임스 더튼의 딸 엘사 더튼이다.
제임스 더튼이 남부에서 북서부로 이주하려는 이유는 살기에 더 나은 환경을 찾는게 목적이지만, 사실 제임스 더튼은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장교로 복무한 경력이 있고, 북군에 패하고, 노예 해방이 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 놓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 시기, 중서부는 강도들이 횡행하고, 그곳에 살던 원주민(우리가 '인디언'이라고 부르는)과의 마찰, 갈등으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공포와 광기의 땅이었다. 이 드라마에서도 어처구니 없이 죽는 사람이 많이 나오는데, 전혀 과장되 보이지 않고, 그 시대의 불안과 공포, 두려움의 실체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엘사의 고모(존 더튼의 누나)는 씩씩하고 기개 있는 여성이었지만, 남편을 잃고, 동행하던 딸이 강도의 총에 사망하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자살한다. 존 더튼은 그런 누나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고, 삶을 짓누르고, 고통을 강요하는 불운한 시대에 사는 걸 원망할 수밖에 없다.
이주민들은 돈을 모아 전직 '대위'인 브레넌을 경비 책임자로 고용한다. 브레넌은 남북전쟁(1861-1865) 참전 군인이었으며, 그때 대위로 복무한 예비역 군인이다. 이 드라마 전편에서 브레넌의 서사는 꽤 비중이 크고, 그의 삶이 남다른 만큼, 그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 역시 예사롭지 않다.
브레넌은 아내와 딸이 천연두로 사망하자, 삶의 의미를 잃고 자살하려 한다. 그때 그를 살린 건 참전 부하이자 동료인 토마스다. 그는 전쟁이 끝난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북군 군복을 입고 다닌다. 이 드라마에서 거의 유일한 흑인이며, 참전 군인이고, 브레넌 예비역 대위의 전우이자,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로 나온다.
토마스는 드라마 전체를 통해 가족이 보이지 않고, 오로지 브레넌 대위와 함께 하는데, 그는 올곧은 성품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훌륭한 사람이다. 이주민 가운데 남편이 죽고, 어쩔 줄 몰라하는 노에미와 그의 자녀를 돌보며 노에미와 가까워진다. 
브레넌과 토마스가 이주민을 이끌고 북서쪽으로 이동할 계획인데, 가는 방향이 같았던 제임스 더튼 가족이 합류하면서 장대한 서사가 시작한다. 
 
엘사는 이제 열여덟 살이 되는 아가씨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정신을 가진 인물이다. 이건 이 시기의 미국인들이 가진 진취적인 정신을 상징하는데, 흔히 '서부개척시대'라고 불리는 건 오로지 지금 미국인 즉 백인만의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동부에서 서부로 삶의 영역을 확장하던 때였다.
브레넌과 제임스 더튼 가족은 텍사스주의 포트워스에서 출발해 아래 지도처럼 북서 방향으로 올라간다. 이 긴 거리를 오로지 말과 마차만으로 간다고 생각하면, 사람이 죽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이때의 중서부는 자연 그대로이며, 원주민(인디언)이 거주하는 지역을 여러 번 거쳐야 했다.
엘사는 평범한 여성이지만, 이 길고 긴 여행을 통해 빠른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하고, 그만큼 성숙한다. 엘사의 성장을 지켜보는 건 그의 부모 뿐아니라 브레넌도 있는데, 아내와 딸을 잃은 브레넌은 엘사를 딸처럼 생각한다. 이 드라마가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게 단지 슬프지만 않은 까닭은, 짧은 시간 동안 강하고 진한 삶을 경험하면서, 세계와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고, 인식하며,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주민 대열은 결국 가진 걸 거의 다 잃고 '아이다호주'에 정착한다. 이들의 목적지는 서쪽 끝 오리건주였지만, 그 끝까지 가는 사람은 브레넌 뿐이다. 토마스도 노에미와 중간에서 정착하고, 제임스 더튼 가족 역시 옐로우 스톤 서북쪽에 자리 잡는다. 본편인 '옐로우 스톤'이 배경이 되는 이유가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데, '옐로우 스톤'에서는 더튼 가족이 사는 농장이 '몬태나주'로 나온다. 즉, 옐로우 스톤은 '와이오밍주', '아이다호주', '몬태나주'가 서로 경계를 이루는 기묘한 위치에 있다.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 아래 쪽으로 '윈드 리버'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는데, 테일러 쉐리던은 '윈드 리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고, 연출까지 했다. 더튼 가족은 옐로우 스톤의 서북쪽 '웨스트 옐로우 스톤' 지역에 자리잡는다. 이곳은 원주민(인디언)들이 '천국'이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물이 풍부한 좋은 땅이다. 아래 지도에서 A지역이 더튼 가족이 정착한 지역이고, B지역은 이주민들이, C지역은 브레넌이 간 곳이다. 
이렇게 모두 각자 원하는 곳으로 정착하기까지 많은 희생이 따랐고, 살아 남은 사람도 가족을 잃은 슬픔과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며 죽기 직전까지 가는 고통을 겪으며 마침내 살아갈 땅을 얻는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책을 통해 알고 있는 미국 초기 이주민의 삶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의 궤적과 경로를 통해 삶과 죽음,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지금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이 겪은 삶을 재현하며, 그들의 슬픔, 아픔, 두려움, 안타까움을 공감한다.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개인들마다 차이가 있을 뿐, 눈물과 한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개인은 모두 자기 시대를 '개척'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어전히 우리의 삶은 '개척시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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