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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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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이아빠 2021.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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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 or High Water

Hell or High Water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세번 째 다시 봤다. 멋진 영화. 오랜만에 훌륭한 영화를 봤다. 그것도 개봉하는 날.  별 네 개 반.

사실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 데이비드 메켄지는 그리 유명한 감독은 아니다. 이 영화는 그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테일러 쉐리단은 바로 전작이 '시카리오'였다. 현재 헐리우드에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진 사람의 작품이다.

훌륭한 시나리오와 연출 그리고 뛰어난 배우들의 조합은 의외로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어서, 이렇게 멋진 영화가 나오기 드문 것이다.

이 영화에 관해서는 이미 이동진 평론가가 진행하는 '무비썸'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참고해도 되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낀 점도 비슷했다.

 

이 영화의 제목은 한국에서 'Lost in Dust'이지만 원래 제목은 'Hell or High Water'다. 한국 개봉 제목도 잘 지었고, 원래 제목도 좋다. 한국 개봉 제목은 영화에서 나오는 음악의 가사 일부다.

영화음악 역시 훌륭하다. 미국 남부 텍사스와 어울리는 컨트리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나는 이 영화를 메가박스의 M2관에서 봤는데, 메가박스의 다른 곳보다 사운드 디자인이 훌륭한 곳이어서 음악의 감동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어떤 곳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동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넓은 화면과 훌륭한 사운드가 있는 곳에서 보면, 같은 영화라도 느낌이 달라진다.

 

영화의 무대는 미국 남부 텍사스다. 황량하게 보이는 드넓은 땅과 하늘, 바람과 구름, 사막처럼 보이는 황무지 등이 텍사스 외진 지역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 역시 황량하고 쓸쓸하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나는 영화가 비극적이고 슬플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전에 어떤 정보도 없이 영화를 봤기 때문에 오히려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첫 장면의 황량함은 곧이어 복면을 쓴 두 남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긴장이 고조된다. 텍사스의 지역은행을 터는 두 명의 은행강도. 그리고 그들이 가져간 돈은 몇 군데의 은행에서 고작 7천 달러 정도의 잔돈.

은행에서도, FBI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로 좀도둑 같은 이들의 범행은 그러나 지역 보안관 마커스 해밀턴이 뒤를 쫓기 시작하면서 추격전으로 바뀐다. 두 명의 범인은 형제였고, 범죄의 증거는 완벽하게 처리하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인다.

 

이 영화는 남부 텍사스를 무대로, 이제는 사라진 '은행강도'라는 고전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카우보이 형제의 이야기지만, 영화의 본질은 중반 이후가 되어서야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형제가 은행을 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석유자본과 그 앞잡이 은행의 농간 때문이었다. 형제가 살고 있는 농장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석유자본은 은행을 앞세워 그 농장을 헐값에 매입하려 한다.

형제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은행에서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대출받았고, 그 돈을 갚지 못하면 농장은 은행의 손을 거쳐 석유자본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두 명의 은행강도가 '나쁜놈'인줄 알았던 관객은 뒤로 가면서 형제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가난한 형제가 집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이 유일하게 은행을 터는 일이라는 것을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형제가 행동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형식적으로는 은행강도 형제와 그 뒤를 쫓는 보안관의 이야기다. 영화는 우울하고 쓸쓸하면서도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는 장면들도 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장면도 나온다.

형 태너는 감옥에서 10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동생 토비는 아내와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고, 엄마는 몇 주 전 병으로 사망했다. 두 사람이 은행을 털기까지 이미 두 사람은 깊은 대화를 나눈 시간이 있었다. 남편이 아들 손에 죽고, 두 아들이 감옥에 있는 동안 엄마는 생계를 위해 농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대출금 상환을 하지 않으면 농장은 곧바로 은행으로 소유권이 이전되며, 은행은 유전을 개발하는 회사에 그 땅을 이윤을 남겨 팔아넘길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형제는 대출금을 갚을 돈을 마련하는 유일한 방법이 은행을 터는 거라고 판단한다. 지역 은행을 선택하고, 헌돈으로, 액수가 적은 지폐로만 골라서 가져가는 방식까지 꼼꼼하게 계획하고, 범행에 썼던 차는 곧바로 땅에 묻어 증거를 은폐한다. 은행에서 탈취한 돈은 카지노에서 칩으로 바꾼 다음, 다시 환전해 은행에 입금하는 것으로 일련의 과정을 끝낸다.

 

태너가 감옥에 간 것도 불행한 가족사 때문이다. 태너와 토비의 아버지는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이었고,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인 건 태너였다. 이 사건으로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결국 농장이 은행에 넘어가기 일보직전까지 간 것도 이런 집안의 비극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토비는 결혼했지만 이혼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농장에서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토비는 농장을 아들과 딸에게 물려주려 하고, 그걸 위해 형과 함께 일련의 계획을 세운 것이다. 토비가 아들을 만나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짧은 시간은 아버지와 아들의 깊은 정을 느끼는 한편, 그동안 애틋한 정을 나누지 못한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서로 깊이 사랑하지만, 겉으로는 무심한 척 하는 건 태너와 토비도 마찬가지다. 태너는 형제의 어릴 때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 사진 속 어린 동생을 끔찍이도 아꼈던 형 태너는, 동생과 동생의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자기 목숨을 버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는 두 형제를 '정의의 용사'로 묘사하지 않는다. 비록 금융자본에 희생되는 가난한 서민이지만, 형 태너는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살해한 범죄자이고, 미국의 상징이랄 수 있는 '은행'을 턴 강도이며, 범행 과정에서 살인을 했고, 도망하는 과정에서도 레인저를 죽은 살인범이다. 영화는 형제 가운데 형 태너를 레인저가 사살하는 것으로 타협한다.

퇴직한 레인저 해밀턴은 동생 토비가 공범이라는 심증을 강하게 갖고 있지만, 증거가 없다. 태너의 총에 죽은 동료 레인저 파커의 복수는 자기 손으로 했으니 여한은 없지만, 범인들의 범행 동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해밀턴은 토비를 찾아가 이유를 말해 달라고 하지만, 토비는 '대를 이어온 가난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자기 자식에게는 절대 가난을 물려주지 않을 거'라고 대답한다.

 

서서히 몰락하고 있는 미국의 중산층의 피폐한 삶과 미국의 좋았던 시기로 알려진 '서부개척시기'를 맞물려 놓고, 금융자본에 의해 가난으로 내몰린 카우보이가 총을 들고 은행을 털어 복수하는 이야기를 그린 것은 미국 역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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