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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파고 Fargo

by 똥이아빠 2021.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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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 Fargo

 

코엔 형제 작품. 코엔 형제의 작품들은 한 번도 안 볼 수는 있지만, 한 번만 보게 되지 않는다. 잘 만든, 재미있는 영화의 특징이 그렇듯,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면 볼수록 새로운 장면,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가 '명작', '명화', '걸작'이라고 말하는 영화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영화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 작품의 알레고리를 한 번만 보고는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 영화를 여러 번 볼수록 새롭게 해석할 가능성이 많은 작품이 그런 경우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요소는 훌륭한 작품에 모두 들어 있기 마련이다.

코엔 형제의 작품은 '명작', '걸작'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서, 시간을 두고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이상 다시 보게 된다. 데뷔작인 '블러드 심플'에서 이미 코엔 형제는 자신의 영화세계관을 완성했다. 이후 나오는 영화는 모두 데뷔작의 변주라고 할 정도로 데뷔작이 훌륭한데, 이 영화 '파고' 역시 데뷔작인 '블러드 심플'과 매우 닮았다.

'블러드 심플'에서 마티는 아내 애비와 직원 레이의 불륜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을 살해해 달라고 사립탐정에게 의뢰한다. '파고'에서는 제리가 자기 아내를 납치해 달라고 범죄자에게 의뢰한다. 이렇게 시작한 사건은 '나비의 날개짓'이 되어 어마어마하고 거대한 사건으로 커진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구절이 딱 맞는 코엔 형제의 영화 특징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자막으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1987년에 미네소타주에서 발생한 사건이며, 실존 인물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는 내용까지 나오면서, 관객은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이 트릭은 나도 창작할 때 가끔 써먹는 방식인데,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장치가 매우 즐겁고 재미있게 생각된다. 물론 속임을 당하는 독자나 관객은 기분 나쁠 수 있지만, 그건 악의가 아니라, 창작하는 사람이 갖는 일종의 특권이자 즐거움, 장난이라고 보면 좋겠다.

앞에서 관객을 속인 코엔 형제는 영화가 끝나고 타이틀이 올라갈 때, 아주 작게, '창작'이라는 걸 밝힌다. 이 부분을 못 본 관객들이 많은데, 글자가 작기도 하고, 영화 타이틀이 올라갈 때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을 빠져나가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영화는 처음 검은색 바탕에 빛이 비출 때부터, 마지막 타이틀이 완전히 올라가고 극장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봐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영화는 '파고'에서 시작한다. 파고는 미국 중북부 노스다코타주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 약 9만 명, 노스다코타 주의 동쪽 끝, 레드 강 연안에 있는 도시로, 레드강이 노스다코타주와 미네소타주의 경계를 이룬다. 레드 강 건너편에는 미네소타주의 무어헤드가 있다. '파고'는 노스다코타 주 최대의 도시로, 노스다코타 주 동부와 미네소타 주 서부의 상업,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위키백과)

영화에서 '파고'는 처음 시작 부분에서 잠깐 나오는데, 왜 제목을 '파고'라고 했을까. '파고'는 주인공 제리가 납치를 해줄 범인 두 명을 처음 만나는 술집이 있는 곳이다. 노스다코타주의 도시 이름이면서, 'far go'라는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즉 '도를 넘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 이 영화의 주제를 드러낸다.

'파고'는 노스다코타주에 있지만 미네소타주와 주경계선을 맞대고 있어서 지리적으로 묘한 지점이다. 미국 지도를 보면, '파고'의 위치가 왼쪽과 오른쪽 거리가 거의 똑같은 중심에 있는 걸 알 수 있다. 미네소타주는 코엔 형제의 고향이어서 코엔 영화의 무대로 자주 등장하지만, 이 영화에서 한겨울의 미네소타주는 세상이 온통 하얗고 꽁꽁 얼어붙는다.

 

제리(윌리엄 머시)는 노스다코타주 '파고'에서 아내를 납치할 범죄자를 만나지만, 그의 집은 바로 옆 미네소타주의 주도인 미니애폴리스에 있다. 자동차로 거의 5시간은 달려가야 할 먼 - 미국에서는 그 정도 거리를 멀다고 하지는 않겠지만 - 거리까지 가서, 자기가 살고 있는 '미네소타주'를 벗어난 다른 주까지 일부러 찾아간 것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짓이 범죄라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제리는 '파고'에 있는 한 술집에서 낯선 두 남자를 만난다. 제리가 만나기로 한 사람은 한 명이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두 명이 되었다. 첫 대면부터 1시간이나 약속 시간이 엇갈려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제리는 '재미있게 생긴 남자' 칼 쇼왈터와 인사하고, '셉'의 소개로 왔다고 말한다. 칼 쇼왈터(스티브 부세미) 옆에는 표정 없고, 말도 없는 덩지 게이어(피터 스토메어)가 앉아 있다. 

시작부터 '제리'라는 남자가 얼마나 멍청하고 등신같은 호구인지 알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리는 자기 아내를 납치해 달라고 말하면서, 칼에게 4만 달러를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장인에게 받아 낼 돈은 8만 달러이며, 칼과 자기가 절반씩 나눠 갖는 거라고까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 보통 사람이 자기 아내를 납치해 달라고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겠지만 - 칼에게 줄 돈만 말하고, 가능한 많은 정보를 숨기려 할텐데, 제리는 자기 계획을 마구 떠벌린다. 칼과 게이어는 '제리'가 호구라는 걸 이때 눈치챈다.

 

그렇다면, 제리가 왜 이렇게 기괴하고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려는 걸까? 제리는 자동차 딜러를 하고 있는데, 그 자동차 판매 회사의 사장이 아내의 아버지 즉 장인이다. 장인은 부자이며, 딸은 부자 아버지를 두었지만, 정작 제리 자신은 영업부장으로 일하며 월급을 받는 월급장이일 뿐이다.

그런 제리가 자동차를 담보로 무려 32만 달러를 은행에서 빌렸다. 그도 장인처럼 사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장인은 도와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떻게든 스스로 돈을 만들어 보란듯이 사업을 하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담보대출을 받았는데, 돈을 빌려준 은행에서 자동차의 고유번호가 다르다고, 원본 서류를 다시 보내달라고 한다. 기한 내에 보내지 않으면 대출한 돈을 회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제리는 당연히 서류를 다시 보내겠다고 말하지만, 자신이 가짜 서류를 보냈으므로, 원본 서류라는 건 아예 있지도 않다.

제리가 아내를 납치해 8만 달러를 받겠다는 말은, 멍청해 보이지만 사실 한 수 위의 발언이었음이 드러난다. 제리는 아내가 납치된 이후 장인에게 범인들이 요구한 돈이 무려 1백만 달러라고 거짓말을 하고, 그 돈을 받아서 대출금을 갚고, 남은 돈으로 자기 사업을 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니 제리는 나름 치밀하고 준비가 철저한 인물이었다.

 

칼과 게이어는 제리와 만난 '파고'에서 헤어져 제리의 집이 있는 미니애폴리스로 향한다. 먼 길이어서 중간에 하루 묵고 가야 하는데, '파고'에서 '미니애폴리스'의 딱 중간에 있는 작은 마을이 '브레이너드'다. 칼과 게이어는 브레이너드에서 하루 묵으며 주점에도 들르고, 그곳에서 성매매 여성과 하룻밤을 지낸다.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이들의 행동은 나중에 모두 증거가 되어 이들의 목을 조이기 시작한다.

칼과 게이어는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제리의 집에 침입해 제리의 아내를 납치한 다음, 다시 브레이너드 쪽으로 향한다. 아마도 국경을 넘어 다시 노스다코타주의 '파고'로 갈 계획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이 틀어진 건 공교롭게도 제리가 칼과 게이어에게 준 새차 때문이었다. 새차에 번호판을 달지 않았고, 도로 순찰을 하던 경찰의 눈에 띈 것이다.

교통경찰은 칼에게 운전면허증과 자동차등록증을 보여달라고 말한다. 칼은 비굴하게 웃으며 지갑에서 50달러짜리 지폐를 눈에 잘 띄게 한 다음 경찰에게 내민다. 경찰은 뇌물을 주는 칼의 태도를 단호하게 물리치며 차에서 내리라고 명령한다. 새차를 운전하면서 자동차등록증이 없다는 건 도난차량일 가능성이 높다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이때, 한마디 말 없이 앉아서 담배만 피던 게이어가 갑자기 경찰을 총으로 살해하고, 칼은 황당하지만 경찰의 사체를 치우려는데, 마침 반대편에서 차가 지나가면서 이들의 범죄 현장을 목격한다. 게이어는 차로 목격한 사람들을 쫓아가고, 도망가던 차가 눈길에 미끌어지며 도로 밖으로 굴러 뒤집히고, 게이어는 다시 두 사람을 살해한다.

 

경찰관 마지는 임신을 해서 두 달 뒤에는 아이를 낳을 예정이다. 배가 많이 불러오는데, 아직 출산휴가를 신청하지는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어보인다. 움직이는데 문제 없고, 많이 움직여야 출산할 때 덜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능한 출산 직전까지 업무를 볼 생각을 하고 있는 훌륭한 경찰관이다.

마지는 도시 바깥 도로에서 경찰이 피살당하고, 시민 두 명이 살해당한 현장을 둘러본다. 범인은 경찰을 먼저 살해하고, 목격한 두 사람을 따라가 죽였다는 걸 논리적으로 추리하고, 범인이 덩지가 큰 남성이라는 것도 현장의 발자국으로 추론한다.

그리고 살해당한 경찰이 남긴 기록으로 범인들이 '씨애라'를 몰고 있다는 것도 확인하고, 두 명의 목격자를 만난다. 목격자는 당연히 칼과 게이어의 성매매 상대였던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칼과 게이어의 인상착의를 말하면서, '웃기게 생긴 남자'와 '말보로 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두 남자가 향하는 곳이 '트윈시티'라고 알려준다. '트윈시티'는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지명이기도 하지만,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두 개의 시를 한꺼번에 부르는 별칭이기도 하다.

마지는 칼의 전화 통화를 추적해서 칼이 두 사람 - 셉과 제리 - 과 통화한 것을 알아낸다. 마지는 셉을 찾아가는데, 셉은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제리와 잘 아는 사이다. 제리가 험한 일 하는 사람을 구해달라고 말할 정도로 믿는 사람인데, 경찰이 찾아오자 일이 잘못된 걸 눈치채고, 칼을 찾아가 반쯤 죽여놓는다.

 

제리는 장인을 설득해 1백만 달러를 만드는데 성공하지만, 장인은 자기가 돈을 직접 전달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렇게 약속 장소에 제리 대신 장인이 나가고, 칼은 제리가 나오기로 했는데, 왠 늙은이가 나와서 화가 폭발한다. 그리고는 제리의 장인을 총으로 살해한다. 돈가방을 싣고 나오면서 칼은 주차장 관리인도 살해한다. 그리고 드넓은 평야, 눈이 쌓여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평야에 돈가방을 묻고 표시를 해둔다.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마치 아이콘 같은 장면인데, 100만 달러나 되는 돈을 쌓인 눈 아래 묻어두는 것도 웃기지만, 어딘지 알기 쉽게 빨간색 창문닦이로 표시를 해두는 것은 범인인 칼이 워낙 멍청하기도 하지만, 돈에 눈이 먼 인간의 어리석음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얼마나 웃기는지 잘 드러내는 장면이다. 

칼은 제리의 장인이 쏜 총이 얼굴을 빗나가면서 피가 철철 흐르는 상태로 돈을 파묻고, 게이어가 있는 숙소로 돌아온다. 그런데, 표정 없는 게이어가 음식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장면 옆으로 핏자국이 보이고, 쓰러져 있는 제리의 아내 모습이 보인다. 게이어가 제리의 아내를 죽인 것이다. 

칼은 게이어에게 4만 달러를 주고 당장 그곳을 벗어나려 하는데, 게이어는 제리가 준 차 '씨애라'의 차값도 반을 달라고 말한다. 칼은 지금 얼굴에서 흐르는 피가 보이지 않느냐고, 죽을 뻔 하면서 돈을 가져왔다고 성질을 내고 나가지만, 인정사정 없는 게이어는 칼을 뒤따라가 살해한다. 이렇게 칼이 어처구니 없이 죽으면서, 100만 달러가 든 가방의 행방이 갑자기 관객의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한다.

 

마지는 자동차 판매영업소의 제리를 다시 찾아가 잃어버린 차가 없는지 묻는다. 당황한 제리는 찾아보겠다며 나가지만, 곧바로 차를 타고 도주한다. 마지는 제리를 뒤쫓아가다 도난당했다는 '씨애라'를 발견하고, 그 차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 수색하는데, 뒷마당에서 게이어를 발견한다. 게이어는 죽은 칼의 사체를 톱밥을 만드는 기계에 넣어 갈아내고 있었고, 마지는 달아나는 게이어에게 총을 쏴 체포한다. 제리도 곧 체포되어 사건은 끝난다. 

이 과정에서 살해당한 사람은 경찰, 목격자 시민 두 명, 제리의 아내, 제리의 장인, 주차장 관리인, 칼까지 모두 일곱 명이다. 100만 달러 가방의 행방은 칼 이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 눈이 녹는 봄이 되면 누군가 횡재할 것이다.

제리는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계획했을 것이다. 그저 아내를 납치했다 풀어주면 그 과정에서 돈 많은 장인에게 돈을 많이 뜯어낼 수 있고, 그 돈으로 자기 사업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계획했지만, 일은 제리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무려 일곱 명이 죽는 큰사건으로 전개된다.

 

우리 삶도 어느 지점에서 대수롭지 않게 선택한 일이, 나중에 커다란 폭풍이 되어 몰려올 경우가 드물지만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나쁜 결과일수도 있고, 좋은 결과일수도 있다. 결과에 관계 없이, 내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신중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걸 '나비 효과'는 알려준다.

코엔 형제는 우리 삶에서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사소한 행동이라고 여기는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블랙코미디로 보여준다. 제리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았을텐데, 영문도 모르고 살해당한 사람들 - 목격자들, 주차장 관리원 - 은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삶이 단지 우연의 연속이라서,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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