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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미국영화

힐빌리의 노래

by 똥이아빠 2021. 5. 6.

힐빌리의 노래

 

성공한 사업가의 불우한 과거 이야기가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 영화의 원저인 회고록의 성공이 영화를 만든 것이고, 영화는 다시 책의 흥행에 도움을 주며, 이는 주인공의 존재를 돋보이게 만든다.

J.D 밴스는 예일대 법대에 다니는 재원이다. 그는 지금 인생에서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대형 로펌에서 면접을 봐야 하고, 장학금으로 부족해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 면접 시간도 빠듯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J.D 밴스의 상황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다. 엄마는 약물중독으로 입원해야 하는데, 고집을 부리고, 가난한 누나는 밴스에게 의지한다. 

백인 하층민의 가족인 밴스의 가족은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대를 이어 가난하게 살아간다. 가난은 늪에 빠진 것처럼 헤어나기 어렵다. 엄마는 간호사로 일하는데, 학생 때는 공부를 잘 했지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사다리를 올라가는데 실패한다. 게다가 열여덟 살에 임신하고, 밴스의 누나와 밴스를 낳는다. 밴스의 엄마가 약물중독이 된데는 어렸을 때의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

밴스의 할머니 역시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다. 어린 딸(밴스의 엄마)은 아버지의 폭력을 보았고,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런 시간들이 그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았고,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약물중독자가 되고만 것이다. 물론, 모든 가정폭력의 희생자들이 그런 건 아니어서, 밴스의 엄마를 옹호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밴스의 엄마는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여전히 젊은 나이였고 - 열여덟 살에 딸을 낳았으니 당연하다 - 밴스는 그런 엄마를 성인이 되어서야 이해한다. 어린 밴스를 올바른 삶으로 이끈 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똑똑한 J.D 밴스가 바보같은 친구들과 어울려 인생을 망치게 될까 걱정하며,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J.D 밴스는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 하는 편이다. 그는 해병대에 자원했고, 실력이 있어서 예일대 법대에 진학한다. 문제는 학비인데, 장학금을 받고, 일하면서 어렵게 학비를 마련한다.

J.D를 아꼈던 할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시고, J.D를 바른 길로 이끌었던 할머니는 그가 해병대에 입대해 군인으로 복무할 때 돌아가셨다. 그는 가난하고 불행한 가족들 사이에서 살았지만, 어릴 때는 가족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고,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누나 그리고 사촌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J.D 밴스는 가난의 늪에서 빠져나왔고, 미국 최고의 대학을 졸업했으며, 그곳에서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다. 그렇게 자신의 실력과 행운과 노력으로 가난과 불행에서 벗어난 J.D 밴스의 이야기는 감동과 교훈을 준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이런 고난 극복 서사를 다루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로 윌 스미스 주연의 '행복을 찾아서'가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심지어 흑인이다. 의료기 영업사원에서 주식중개인으로 전직하면서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또 다른 '아메리칸 드림'을 말한다. 

실화는 아니지만 '힐빌리의 노래'와 비슷한 영화로 '길버트 그레이프'가 있다. 아버지의 자살로 충격을 받아 침대에서만 생활하다보니 너무 뚱뚱해서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 지적장애가 있는 동생, 백인이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어린시절을 행복하게 지내지 못하는 그레이프 집안의 아이들... 이들의 삶은 현실보다 훨씬 비참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도 미국 백인 미혼모와 아이의 삶이 눈물겹게 드러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월트 디즈니 월드' 근처의 월세(실제로는 매주 집세를 내야 한다)집에서 사는 핼리와 무니는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모녀다. 매주 집세를 마련해야 하고, 먹고 살 돈을 벌어야 한다. 핼리는 딸 무니를 끔찍히 사랑하고 아끼지만, 현실은 고통스럽다. 빈곤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해도 현실과 영화는 다르다. 가난은 기회를 뺐는다. 기회가 없으면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악순환이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이야기는 누구나 좋아한다. 감동 서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서사는 또한 영웅서사이기도 하다. 영웅은 어릴 때 부모 또는 둘 가운데 하나를 잃거나 집을 떠나 세상의 고난을 온몸으로 겪으며 괴물(세상의 온갖 고난)과 만나 결투를 하고, 승리한 다음, 공주를 구출해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고대의 영웅서사이면서 한편으로 인간의 보편성 삶을 상징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의 삶에서 나의 과거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도 어릴 때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종종 보면서 자랐다. 부모가 싸우면, 자식들은 트라우마가 생긴다. 삶은 불행하고 우울하다. 가난은 그 자체로 숨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서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건 마치 내가 하늘을 날아야 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는 도시빈민으로 살았고, 나는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랐으며, 거기에 자연의 재난까지 겹쳐서 우리는 살던 집을 잃고 서울 변두리 산동네로 이사했다. 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곧바로 소년노동자가 되어 공장을 전전했다. 그러다 건설노동자가 되어 전국을 떠돌았고, 우연히 노점에서 책 파는 형을 만나고, 그 형을 통해 독서회를 알게 되고, 그 독서회에서 만난 선배가 검정고시를 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곧바로 나도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주 느리고 힘들게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 공부를 하고, 공사장 노동자에서 헌책 노점상으로, 헌책방 점원으로,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와서 다시 공장 노동자로, 독서회의 어른께서 도와주셔서 잡지사 기자로, 다시 공장 노동자로, 프리랜서로 전전하며 좌충우돌의 삶을 살았다.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하는 건,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지만 술, 담배를 배우지 않았고, 껄렁거리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았으며, 책을 꾸준히 읽었고, 검정고시로 학력을 만들었고, 지금도 방통대를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J.D 밴스만큼 머리가 좋지 않아서 사회적 성공은 하지 못했지만,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뛰어난 인물은 김대중 전대통령, 노무현 전대통령, 문재인 현대통령,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꼽을 수 있겠다. 이들은 모두 역경을 딛고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로 만드는 데 온힘을 기울이고 일정한 성과를 만든 분들이니 아낌없는 존경의 마음을 보내도 좋은 분들이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이 일어나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J.D 밴스도 그런 꿈을 이룬 사람 가운데 한 명이겠지만, 그는 백인이라는 점이 일정부분 사회적 점수를 얻고 들어간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에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의 성공이 백인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면, J.D 밴스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도 들여다 보고 응원해야 한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단지 개인의 노력과 재능으로 성공하는 삶보다는, 사회가 구조적으로 차별과 가난을 만들지 않도록 제도적 마련과 지원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 하지 않을까. 물론 사회가 완벽할 수 없으니 J.D 밴스 같은 사람은 꾸준히 나올 것이고, 우리 사회에서도 예전처럼 개천에서 용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건 사회의 구조가 더 공고하고 고착되었음을 뜻한다. 부익부 빈익빈이 구조화하고, 계급, 계층이 단절적으로 고착화되면 가난한 집 아이는 자라서도 가난하게 살아갈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사회를 유연하게 만드는 것, 계층간 이동이 자유롭고, 재능과 능력이 있으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제도와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몇몇의 특수한 성공 이야기를 보며 감동하는 것보다는 누구나 노력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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