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다/미국영화

다시, 미나리

by 똥이아빠 2021. 3. 14.
728x90

다시, 미나리

 

'미나리'를 두 번 봤다. 처음 볼 때보다 감동이 더 크다. 처음에는 줄거리, 서사의 의미, 인물들의 관계와 생각, 풍경, 음악 등이 눈에 들어왔다면, 두 번째는 그 모든 요소들 가운데서 특히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은 세계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꼽힌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이 영화는 지루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난해하고 느린 영화지만, 한국에서는 의외로 흥행에 성공하는데, 이 난해한 영화를 본 관객이 10만 명이 넘었다는 것이 외국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으니, 한국 관객의 수준이 꽤 높다는 걸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희생'에서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 안드레이는 자기의 집을 불태운다. 그가 자기의 집에 불을 지르는 까닭은 그가 신과 일방으로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알렉산더에게는 늦둥이 아들이 있는데, 실어증이 있다. 그는 아들을 데리고 죽은 나무에 물을 주며 정성을 다하면 죽은 나무도 살아날 수 있다고 말한다.

알렉산더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을 각오한다.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이 다가오고, 세계가 멸망할 위기가 닥치자 알렉산더는 우체부의 말을 듣고 자기 집 파출부인 '마리아'와 동침한다. 이때 우체부는 예수를 인도한 '세례자 요한'의 상징이며, 파출부 '마리아'는 예수를 따르던 '막달라 마리아'를 상징한다. 알렉산더는 3차 세계대전과 지구 멸망을 막는 '예수'의 현현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런 모든 관계와 서사가 알렉산더의 망상일 거라는 암시도 없지 않다.

알렉산더는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 집에 불을 지르는데, 이때 '불'은 '정화'의 상징을 갖는다.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불태워 깨끗하게 만드는 상징으로써 불은 고대부터 현재까지도 은유와 상징으로 작용하는데, 불은 고대부터 신성한 존재이자 신의 현현이며, 불가사의하고 위대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 폐허를 만들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을 키운다는 점에서 혁명이기도 하다. 과거를 불태우는 혁명, 자기 자신을 태워 희생하면서도 그 속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진정한 혁명성이 '불'이다.

불은 '악'으로 상징하는 모든 더러운 것들, 불길한 기운, 악령, 저주, 죽음, 원한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태우고 정화한다. 이창동의 '버닝'에서 '벤'은 불을 지르면서 쾌감을 얻는데, '더러운 것들을 태우면서 뼛속까지 울리는 베이스의 선율'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벤은 낡은 비닐하우스에 불을 지르겠다는 말을 종수에게 하는데, 종수는 벤이 방화범이자 여성들만 노리는 연쇄살인범이라고 판단하고 - 그럴만한 근거는 있지만 확실한 물증은 없는 상태에서 - 벤을 살해하고 그와 그의 차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다.

벤이 쾌락을 느끼기 위해 지르는 불은 사실은 자기가 살해한 여성의 시신까지를 태워 범죄의 증거를 없애려는 행위였다면, 종수가 벤을 살해하고 그의 몸과 자동차를 불로 태우는 것은 '신'의 행위를 대리하는 복수의 행위라는 것이 다르다.

종수의 '불'은 해미의 실종과 벤의 수상한 행동들, 벤이 한 '이미 태웠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인해 해미의 실종은 벤이 해미를 살해한 것으로 연결되면서, '악'을 응징하는 수단으로 '불'을 선택한다. 벤이 했던 말,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과 해미의 시신까지 태웠을 거라는 암시로 분노와 증오의 마음을 담아 해미의 복수로 벤을 살해하고 그를 불태운다.

 

'미나리'에서 채소저장고에 불이 옮겨 붙는 건 할머니의 실수 때문이지만, 할머니는 가족을 위해 선의를 갖고 한 행동이었고 할머니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진다. 이때 제이콥과 모니카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불이 붙는 장면을 발견하고 급하게 수확한 채소를 꺼내려 하지만 결국 몸만 겨우 빠져나온다.

불을 발견하기 직전까지 제이콥과 모니카는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가족보다는 농장과 채소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는 제이콥이 모니카는 못마땅하고, 제이콥은 결코 과거의 병아리 감별사로 인생을 끝내지는 않겠노라고 결심했기 때문에 농장을 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두 사람의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하필 할머니의 실수로 일어난 불이 채소저장고를 태우고, 이 불속을 뛰어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불과 연기 속에서 함께 고통을 겪으며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갈등이 불과 함께 타버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이콥의 피와 땀이 담긴 채소저장고는 불에 탔지만, 그로 인해 가족은 더욱 단단하게 뭉치고, 갈등은 스러지며, 삶의 한 고비와 단계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자신의 실수로 채소저장고가 불에 타자 할머니는 절망과 죄책감으로 가족을 떠나려 한다. 이때 데이빗이 달려가면서 할머니에게 '우리집으로 가요'라고 말한다. 데이빗이 뛸 수 있다는 것은 가족에게 커다란 희망이자 기쁨이다. 할머니는 뇌졸증을 앓지만 데이빗은 건강해지고, 제이콥의 채소 농사는 위기를 겪지만, 할머니가 심은 미나리는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미나리는 제이콥에게 희망이고 삶의 근거가 된다. 미나리와 함께 제이콥의 가족은 낯선 땅 미국에서 미나리처럼 뿌리내리게 될 것을  암시한다.

 

 

 

반응형

'영화를 보다 > 미국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쓰 프루프  (0) 2021.09.20
재키 브라운  (0) 2021.08.20
힐빌리의 노래  (0) 2021.05.06
고잉 인 스타일  (0) 2021.03.20
에린 브로코비치  (0) 2021.03.14
미나리  (0) 2021.03.12
뉴스 오브 더 월드  (0) 2021.02.20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0) 2021.01.25
나이트 스토커  (0) 2021.01.17
탈룰라  (0) 2021.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