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클럽
잭(나레이터)의 분열적 상황은 '개인적 기질'이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그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일 확률이 높다. 그가 살아가는 사회 - 현대 자본주의 체제 - 가 그(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인)에게 가하는 압력은 개인의 존재를 왜곡한다.
평범한 사람은 생존을 위해 임금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선택을 강요당하고, 자신의 꿈과 재능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우리는 잭이 바라는 그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현재 잭은 보험회사의 사고심사관으로 일하고 있고, 그는 이 일로 월급을 받으며 먹고 산다. 그의 삶은 매우 불규칙해서, 낮과 밤이 바뀌고, 공간이 몇 시간마다 달라진다. 공간 이동으로 시간은 뒤죽박죽 되고, 그는 불면증에 시달린다.
이런 상황은 매우 카프카적이다. 카프카는 결국 벌레가 되지만, 잭은 자신의 자아를 분열시킨다. 현재의 삶이 고통스러운데,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때,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선택을 한다. 고통스럽지만 죽기 직전까지 그 상황에 눌린 채 저항하지 못하고 발버둥 치는 것과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
수 많은 사람 - 정확히는 '노동자' -이 자기가 일하던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사고, 직업병, 산재 등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달라도 본질에서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잭의 경우, 다른 임상실험에서 보이는 '다중인격'이 아닌, 스스로 자아를 분리한다는 점에서, 아주 어릴 때부터 심한 학대를 당한 경우가 아니라, 성인이 된 이후의 삶에서 자신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통제하지 못한 결과로 보여진다. 그래서 어릴 때의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닌, 구조적 문제라고 본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어린 시절이 행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잭은 현재 누구도 만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친밀한 관계를 맺는 가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의 과거, 어린시절이 그에게 끼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잭이 분리한 자아는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이어서 이것은 명백한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현대판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잭은 견디기 힘든 상황을 극복하려고 새로운 인격체를 만든다. 이 과정은 잭 자신이 인지하거나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일어나는데, 우리는 이걸 '정신분열'이라고 말한다.
잭이 타일러 더든을 만났을 때,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는 더 이상 현실을 견디기 어렵다고 느낀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을 것이다. 그가 의사에게 힘들다고 하소연해도 의사는 암화자, 중독환자들 모임에 가면 당신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 수 있다고 말할 뿐이다. 잭은 불행한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면서 함께 울고, 위로하고, 위로 받으며 잠을 푹 잘 수 있게 되지만, 그건 일시적 현상일 뿐, 잭은 결국 자아의 분열을 막지 못한다.
잭이 환자들 모임에서 만난 말리를 사랑하는 건, 잭이 아닌, 타일러 더든이고, 더든의 남성적 모습은 허약한 잭과는 다른, 잘 생기고, 자신감이 넘치며, 훌륭한 리더이자 여성에게 인기 있고, 심지어 섹스도 잘 하는 완벽한 남성의 모습이다. 잭은 타일러 더든을 보면서 질투하고, 경쟁심을 갖는다.
잭은 말리를 타일러 더든에게 뺐기고도 아무 말 못 한다. 그런 잭이 타일러 더든의 부탁으로 태어나 처음 주먹질을 한다. 타일러 더든은 잭에게 자신을 힘껏 때려보라고 말하고, 망설이던 잭은 타일러 더든을 때린다. 이렇게 서로 치고박고 주먹질을 하며 한바탕 뒹굴고 나서, 두 사람은 더 가까워진 걸 느낀다.
두 사람이 밤마다 외진 골목에서 치고박는 싸움을 벌이자 밤을 어슬렁거리던 사람들 - 물론 남자들이다 -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이들은 '순수하게' 육체를 강타하는 싸움을 벌이며 육체의 고통, 아픔을 느끼면서 살아있음을 자각한다.
수많은 남자들에게 존재의 자각이 필요했던 건, 이들의 삶이 마치 고인 물속에 잠겨 고통스러워하는 상태에서 깨어나, 세포 하나하나가 소리 지르며 각성하는 계기로 '폭력'이라는 수단을 체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존재의 자각이 반드시 폭력적 체험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남성들에게 '폭력'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이다.
'폭력'은 원시적 감각을 일깨우고, 현실에서 일탈하는 경험이며, 수컷이라는 감각을 각성하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이들은 '폭력'을 통해 수컷의 동질적 연대를 느끼고, 고립과 외로움에서 벗어나 피로 맺어지는 의형제의 희열을 만끽한다. 서로의 몸을 가격하고, 피부가 찢기고, 뼈가 부러지고, 피가 난무하는 격투의 현장은 고대 로마의 격투사들이 맞붙어 서로 죽이는 전투의 현현이며, 원시의 사냥터에서 동물을 사냥하던 본능의 발현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할 수 있는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기에, 이들 남성들, 수컷들의 아드레날린은 끓어오르는 것이다.
이들, 폭력을 숭배하는 '파이트 클럽'의 남성들은 자기들끼리의 원시적 축제를 넘어서 폭력을 억압하고, 폭력을 처벌하고, 폭력을 배제하려는 사회를 향해 전쟁을 선포한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 수컷들에게 '폭력'은 자연스러운 배설 행위이자 신성한 축제이며, 억압된 영혼을 해방하는 카타르시스인데, 사회는 폭력을 극도로 억압한다. 즉, 남성, 수컷들의 세계는 사회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으며, 남성성을 거세하고, 남성을 배제하는 사회로 인해, 잭이 앓는 것처럼 온갖 질병을 앓게 된다고 믿게 된 것이다.
보통, 자본주의 체제에서 남성은 상대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건 남성지배구조와 자본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혼동인데, 자본의 착취는 남녀를 가리지 않지만, 우연히(?) 자본주의 구조와 남성지배구조가 마치 샴쌍둥이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 착각일 뿐이다.
현상적으로 현 체제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남성 역시 자본의 지배체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으며, 선택의 기회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파이트 클럽'의 남자들은 그런 억압의 체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 한다.
잭은 타일러 더든과 친구가 되었지만, '파이트 클럽'이 만들어지고, 타일러 더든이 '리더'가 되면서, 수많은 남자들이 타일러 더든을 '위대한 지도자'로 받들어 그를 추종하자 질투와 시기가 폭발한다. 여기에, 타일러 더든이 남자들을 추동해 자본주의 사회를 끝장내야 한다고 선동하며, 폭탄으로 도시를 파괴하자고 했을 때, 잭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과격하고, 끝을 모르고 파괴적 행동을 하는 타일러 더든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잭이 타일러 더든의 행방을 쫓아 수많은 대도시를 방문하지만, 타일러 더든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리고 우연히, 전국 곳곳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수히 많은 '파이트 클럽'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타일러 더든'이 바로 '잭' 자신이라는 말을 듣는다. 마침내 잭은 자신의 분열된 자아를 자각한 것이다.
잭은 자기가 통제하지 못하는 분열된 자아를 없애려고 스스로 총을 쏴 죽음에 이른다. 이 직접적 죽음의 경험, 진짜 죽는다는 강렬한 경험만이 자신의 분열된 자아를 통합할 수 있다고 판단한 잭의 생각은 옳았다. 그는 죽음을 각오한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었고,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