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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2010년

2010년-마을을 둘러보다

by 똥이아빠 2012.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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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겨울날씨로는 드물게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햇살이 따뜻한 날이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제법 많이 내려 도로의 아스팔트만 검게 보이고 산이며 논이며 밭은 여전히 하얀 들판이다.

어제부터 시작된 두통이 너무 심해서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고 잠을 잤다. 오후에 똥이가 택견을 가고, 집안으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와서 조금 더웠다. 신선한 바람을 맞으려고 문을 조금 열어놓으니 상쾌한 겨울 바람이 들어와 정신이 조금 맑아지는듯 하다.

심하진 않지만 두통이 계속되고, 햇살은 눈부시게 따가워서 카메라를 들고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마을은 조용하다. 노인들은 마을회관 노인정에 모여 있고, 느티나무 아래 컨테이너 도서관에는 젊은 엄마들과 어린이들이 모여 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아궁이나 나무 보일러를 때는 집에서는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나무 타는 냄새가 향긋하다.

마을을 둘러 싼 병풍같은 산에는 하얗게 눈이 덮여 있고, 마을은 남향으로 앉아 햇살이 밝게 비치는 곳에 집들이 나란히 햇볕을 받으며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개울은 그늘진 곳에는 얼음이 덮여 있고, 해가 비치는 곳은 얼음이 다 녹아서 물 내려가는 것이 보인다. 겨울의 계곡은 물이 거의 바싹 말라있기 마련인데, 올해는 눈이 많이 내려서 겨울 계곡으로는 유난히 물이 많이 내려가고 있다.

여기 저기 마을 사진을 찍고, 어디를 갈까 하다 문득 외따로 떨어진 집이 생각났다. 그 집은 마을에서도 한 가구만 산 아래 뚝 떨어져 있었는데, 그 집 주인이 작가로 알려진 사람이다. 우연히 책을 읽다 그 작가가 누구인지를 알아냈다.

80년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 전두환을 찬양했던 독재에 부역했던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우리 마을에 들어와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이상하기도 했다.

작가의 집은 차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산길 그대로의 외길에 그늘진 곳이어서 요즘처럼 눈이 많이 내리면 차가 드나들지 못했다. 이 마을에 들어와서 딱 한 번 그 집 앞을 가 본 적이 있었는데,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진 않았지만 워낙 외진 곳이고, 산 속이어서 마을 사람들도 거의 찾지 않는 집이었다.

왜 그 집을 가고 싶었는지 딱히 이유는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도 아니고, 그곳에 가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발길이 자연스럽게 향했다고 해야 할까, 딱히 이유가 있다면 그 작가를 만나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정도는 마을 이장으로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포장 도로인 산길로 가는 길은 멀리 돌아가는 길이어서 바로 산 밑에서 길이 없는 곳으로 올라갔다. 눈이 쌓여 있어서 눈밟는 소리가 뽀드득거렸고, 여기저기에 고라니 발자국, 꿩 발자국, 멧돼지 발자국 들이 보였다.

오후 4시에 이미 그 집은 짙은 그늘이 드리웠고, 북향집이어서 처마에 고드름이 길게 드리워 있었다. 남향집과 북향집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었다. 집앞에 차가 있기에 집에 사람이 있나보다 하고 올라가서 계세요하고 부르니 대답이 없다.

헌데, 언뜻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조금 더 다가가니 뜻밖의 사람이 거기 있었다. 옆 마을에 살고 있는 작가의 따님이었다. 중학생이 그 친구가 이 시간에 여기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공부하러 왔단다. , 이 집의 주인이 작가여서 글쓰기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이 잠겨 있고, 집 주인은 출타하고 없어서 한 시간 가량을 밖에서 떨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없어서 연락도 하지 못하고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 휴대전화를 빌려주어 그 작가와 통화를 하도록 했다. ‘작가라는 사람은 저녁에나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단다. 오늘 이 시간에 약속을 해놓고, 아무런 연락도 없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긴 그 작가라는 인간이 몹시 미웠다.

이 산골짜기 추운 곳에서 중학생 아이가 추위와 무서움과 외로움에 오들오들 떨고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작가인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가 났다. 그 아이를 데리고 내려와 컨테이너 도서관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왜 내 발길이 그 집을 향해 갔는지 생각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어떤 느낌이 있었을까.



2010년 2월 중순.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며칠 전 내린 눈은 녹지 않고, 개울에도 얼음이 두껍게 얼었다.


산에도 여전히 눈이 쌓여 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시골의 겨울은 한가하다.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고, 도시처럼 시끄러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이런 조용한 평화가 좋다.


마을 주위로 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아늑하다.


잣나무 숲.


건너편에서 바라 본 마을. 남향이어서 따뜻하고 아늑하다. 한겨울에도 햇볕만 있으면 난방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따뜻할 정도다.


북향에 있는 외따로 떨어진 집. 고드름이 대단하다.


북향이어서, 눈도 녹지 않고, 이렇게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다.


중미산 올라가는 방향.


시골의 겨울은 고즈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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